예레미야 42장 13절 ~ 12절
O 그러나 만일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가 이 땅에 거하지 아니하리라." 하거나 주 너희 하나님의 음성에 복종하지 아니하고 13)
But if ye say, We will not dwell in this land, neither obey the voice of the LORD your God, 13)
순종함에 있어서 분별함은 가장 먼저 제대로 이루어져야 할 조건이 됩니다. 그런데 분별함은 애매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의 신천지를 애매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님과 같은 것입니다. 주께서는 시드키야와 요하난에게 반복적으로 분명하게 그의 뜻을 전달하시고 순종하면 살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시드키야와 요하난은 그것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는 경우도 이와 같을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애매한 것에 순종하지 못하여 불순종하였다고 책망받지는 않을 것입니다. 불순종은 분명히 드러나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순종하지 않음이 될 것입니다.
여자가 그 뱀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동산 나무들의 열매는 먹을 수 있으나,
동산 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에 관해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그것을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혹 죽을까 함이라.' 하셨느니라." 하더라.
창세기 3장 2절 3절
하와는 하나님의 뜻을 자신이 말할정도로 알고 불순종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예는 지금 우리에게도 나타나서 신천지와 같은 이단이 애매하고 분별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드러나 있는 것과 같고, 코로나 백신도 그 악함이 우리에게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이처럼 순종을 위한 분별은 어린아이조차 분별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순종이란 그럼에도불구하고 자신이라는 우상을 따라 불순종을 택하는 것이 됩니다. 알지못하여 불순종함은 이미 불순종이 아닌 것입니다.
말하기를 "아니하리라. 우리는 이집트 땅으로 가서 전쟁도 보지 아니하고 나팔 소리도 듣지 아니하며 음식으로 주리지도 아니하는 그곳에서 거하리라." 한다면, 14)
Saying, No; but we will go into the land of Egypt, where we shall see no war, nor hear the sound of the trumpet, nor have hunger of bread; and there will we dwell: 14)
너희 유다의 남은 자들아, 이제 주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만일 너희가 이집트로 들어가서 거기서 기거하려고 완강히 뜻을 정한다면, 15)
And now therefore hear the word of the LORD, ye remnant of Judah; Thus saith the LORD of hosts, the God of Israel; If ye wholly set your faces to enter into Egypt, and go to sojourn there; 15)
sojourn ① 묵다 ② 체류하다 ③ 체류
그때는 너희가 두려워하는 칼이 이집트 땅에 있는 너희를 따라잡을 것이요, 너희가 두려워하는 기근이 이집트 땅에 있는 너희를 가까이 추적하리니 너희가 거기서 죽으리라. 16)
Then it shall come to pass, that the sword, which ye feared, shall overtake you there in the land of Egypt, and the famine, whereof ye were afraid, shall follow close after you there in Egypt; and there ye shall die. 16)
그러므로 이집트로 가서 거기서 기거하려고 자기 뜻을 정한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되리니 그들이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죽을 것이요, 내가 그들에게 내릴 재앙으로부터 살아남거나 피하는 자가 아무도 없으리라. 17)
So shall it be with all the men that set their faces to go into Egypt to sojourn there; they shall die by the sword, by the famine, and by the pestilence: and none of them shall remain or escape from the evil that I will bring upon them. 17)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나의 분노와 진노를 예루살렘의 거민들 위에 부었던 것같이, 너희가 이집트에 들어가면 나의 진노를 너희 위에 부으리니 그리하면 너희가 혐오와 놀람과 저주와 질책거리가 될 것이며, 너희가 다시는 이곳을 보지 못하리라. 18)
For thus saith the LORD of hosts, the God of Israel; As mine anger and my fury hath been poured forth upon the inhabitants of Jerusalem; so shall my fury be poured forth upon you, when ye shall enter into Egypt: and ye shall be an execration, and an astonishment, and a curse, and a reproach; and ye shall see this place no more. 18)
execration
증오, 몹시 싫어함
2[U] 저주; 주문(呪文), 저주의 말
3매도; 저주받은 사람[것], 몹시 싫은 것
O 오 너희 유다의 남은 자들아, 주께서 너희에 관하여 말씀하시느리라. 너희는 이집트 땅으로 가지 말라. 너희는 내가 오늘 너희에게 경고한 것을 분명히 알라. 19)
The LORD hath said concerning you, O ye remnant of Judah; Go ye not into Egypt: know certainly that I have admonished you this day. 19)
하나님께서는 요하난과 사람들에게 주의 뜻을 분명히 알라고 반복하여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은 자주 일어나지는 않지만 정말 중요한 순간에 일어날 것이며, 코로나 백신시기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불이익과 위협을 감수하며, 진실을 외쳤던 것입니다. 그들의 반복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이라는 우상을 위하여 그럼에도불구하고 백신을 맞았고 그 댓가는 그들이 치르고 있는 것입니다.
백신에 대한 댓가가 육체의 건강을 잃어버림이라면, 짐승의 표의 댓가는 구원을 잃어버리는 불순종에 이르게 되는 댓가를 치르게 됩니다. 우리도 분명한 순종과 불순종의 갈림길에서 요하난이 겪었던 상황을 우리도 겪게 될 것입니다. 바빌론 군대에게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이 되는 두려움과 우리의 재산과 생명 나의 삶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짐승의 표를 받아야 하는 갈림길입니다.
그 선택은 애매한 것이 아니라 분명한 것이며, 요하난이 선택한 길은 자신의 생각에 합당한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 결과는 주의 말씀대로 안전해보이는 이집트가 가장 위험한 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도 짐승의 표가 합리적인 길처럼 보이지만 사망으로 이르는 길임을 요하난을 통하여 우리는 또한번 경고를 받음이 되는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주 너희 하나님께 보냈을 때 너희 마음을 속이며 말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주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라.
주 우리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모든 것에 따라 우리에게 선포하라. 그리하면 우리가 그것을 행하리라." 하였느니라. 20)
For ye dissembled in your hearts, when ye sent me unto the LORD your God, saying, Pray for us unto the LORD our God; and according unto all that the LORD our God shall say, so declare unto us, and we will do it. 20)
암몬땅으로 도망간 이스마엘은 그가 느다냐를 죽인 범인이지만 위험해보이는 순종의 자리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이스마엘은 살인을 저질렀지만 재앙의 자리에 나서지 않게 되었고, 부당한 일에 사람들을 돕기위해 나섰던 요하난은 재앙의 자리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시대의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자기의 삶을 잘 유지해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스마엘과 같은 사람의 삶은 결국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되어 결국 하나님의 심판의 자리에서 그 책임을 감당하게 됩니다. 반면 요하난은 그의 순종의 기회의 자리에 나온 것입니다. 그가 만약 순종하였다면 이 땅에서도 복을 받고, 주의 뜻에 순종한 삶으로 상급을 받는 자리에까지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억울해보이는 요하난의 재앙의 자리는 축복을 위한 자리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요하난이 순종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이스마엘과 별반 다르지 않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내가 오늘 그 말씀을 너희에게 선포하였으나 너희는 주 너희 하나님의 음성이나 그분이 나를 너희에게 보냈던 어떤 일에도 복종하지 아니하였도다. 21)
And now I have this day declare it to you; but ye have not obeyed the voice of the LORD your God, nor any thing for the which he hath sent me unto you. 21)
그러므로 이제 분명히 알 것은 너희가 가거 기거하고자 하는 곳에서 너희는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의하여 죽으리라라는 것이라. 22)
Now therefore know certainly that ye shall die by the sword, by the famine, and by the pestilence, in the place whither ye desire to go and to sojourn. 22)
주께서 다시 그의 뜻을 확인시켜주시는 모습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순종해야 할 일들은 분명하게 나타날 것이며, 우리의 결정에 따라 우리의 구원의 결과가 바뀌는 것입니다. 매일의 삶에서 우리는 주의 뜻에 순종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순종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분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며, 그것을 잘 모르고 불순종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모르고 불순종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도 그들에게는 그것이 불순종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주는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백신초기에 경고가 주어지기 이전에 접종을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부작용도 매우 심했습니다. 그들은 경고가 주어지기 위한 과정에 있었던 사람들로 하나님과 각자의 심판에서 그것이 불순종으로 여겨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애매한 것으로 논쟁하는 것보다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에 대하여 순종해야 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환란 전 휴거나 환란 통과냐 환란 이후 휴거냐라와 같은 논쟁들의 옳고 그름은 순종의 변수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애매함을 가지고 분리하거나 파를 나누고 논쟁으로 싸움과 미워함을 갖는 것은 분명한 불순종이 됩니다. 이것은 각자가 스스로 분명히 아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죄는 나의 죄가 아닙니다. 그들과 논쟁하는 이유는 그들을 도와준다는 생각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책망하고 논쟁하고 싸우기보다 기다려주는 것이 바람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