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래 살인’도 결국 이게 문제였나…이제서야 실태 파악나서는 정부
류영욱 기자(ryu.youngwook@mk.co.kr), 이지안 기자(cup@mk.co.kr)입력 2023. 6. 7. 22:09
은둔형 외톨이 관련법도 없는데
美日은 일찍부터 정부차원 조사
눈까지 가린 또래 살인 피의자 정유정 [사진 = 연합뉴스]
#부산에 거주하는 은둔 청년 A씨(30)는 사실상 사회와 단절된지 14년째다. 어렸을 적 겪었던 가정폭력이 은둔 생활의 계기가 됐다. 심리적 부담감이 해소되지 않았지만 사회로 나오기 위해 ‘니트족(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를 이르는 말)’ 지원 프로그램이라도 신청하려했으나 서류를 구비하는 과정에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사회생활을 해본 적이 없는 그는 서류를 떼는 방법조차 몰랐기 때문이다. 형식상 전화 문의가 가능했지만 이 또한 통화만 하면 몸이 덜덜 떨리는 ‘콜포비아(전화 통화를 기피하는 성향)’ 때문에 쉽지 않았다. A씨는 “차라리 장애등급을 받았으면 한다”며 좌절감을 드러냈다.
부산 20대 또래 살인사건의 피의자 정유정씨가 수년째 외부와 고립된채 살아온 은둔형 외톨이었던 것이 알려지면서 은둔·고립청년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7일 보건복지부는 국내 은둔·고립청년에 대한 실태조사를 이달부터 실시해 올해 말에 그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조사는 이뤄졌지만 정부가 전국 단위로 은둔·고립청년에 대해 조사에 나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주요 선진국에서 문제로 지적돼온 은둔·고립청년은 국내에서는 정책적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었으며, 그 심각성도 외면받아 왔다. 관련 법 역시 전무하다. 지난해 10월 김홍걸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은둔형 외톨이 지원법안’은 8개월째 소관위원회 심사 문턱을 넘지 못하고 계류 중이다.
서울시가 지난 1월 발표한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서울에 사는 고립·은둔 청년은 최대 12만 9000명으로 추산된다. 이는 서울시 청년 인구의 4.5%에 달한다. 전국 단위로 넓히면 약 61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고립 청년’은 정서적 또는 물리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관계 단절이 6개월 이상 지속된 청년을 의미하며, ‘은둔 청년’은 자신의 집이나 방에서 나오지 않아 6개월 이상 사회와 교류가 차단되고, 최근 한 달 내 직업·구직 활동도 없는 청년을 뜻한다.
주요 선진국들도 청년들의 고립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삼고 정부차원의 조사와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히키코모리’로 알려진 일본의 고립청년 문제는 1998년부터 제기될 정도로 뿌리깊다. 일본 정부는 2003년 히키코모리에 대해 정의하고, 2010년부터 첫 실태조사를 시작했다. 2015년 기준 일본 15~39세중 고립청년 비중은 54만1000명인 것으로 추정됐다. 미국도 상황은 비슷하다. 미국은 1년 이상 교육을 받지 못했거나 고용된적 없는 16~24세 청년들을 ‘단절된 청년’으로 분류하고, 관련 법률을 근거로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시범사업을 진행중이다. 프랑스 역시 15~29세 청년중 취업시기가 왔음에도 취업청에 등록하지 않는 46만명 가량중 상당수를 고립청년으로 추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청소년기부터 정부 차원의 체계적 접근과 관리가 고립청년 문제 해결을 위한 조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복지시스템은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형성돼 청년을 복지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며 “대면이든 비대면이든 사회적 관계에서 떨어져나가지 않도록 하는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치료학과 교수는 “학창시절 사회화 교육의 부재한 것이 고립청년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며 “사회적으로 잘 어우러질 수 있는 교육과 함께 심리상담 지원이 같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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