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국민의 승리인가 (8)
침몰하는 것은 세월호만이 아니다
다른 나라들의 정치 수준이나 국민 의식도 마찬가지가
아니냐고 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명심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다. 유례가 없으므로 비교할 나라가 없다.
특이 상황과 특이 조건에서는 국민의 자각도 특이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북핵 문제요 이념 문제다.
그것은 나라의 존립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친북을 들먹이면 야당이나 언론은 “철 지난 색깔 논쟁” 이라는 상투적인 한 마디로 입을 막아버린다.
여당조차도 국민들이 듣기 싫어하니 표 떨어진다고 쉬쉬 한다. 어찌 이것이 철 지난 일인가. 북한이 미사일을 펑펑 쏘아대는 이 마당에 지금도 한창 철이다. 총선에서는 이념 논쟁이 오히려 더 쟁점이라야 했다. 이념 논쟁은 자나깨나 후렴처럼 되풀이되는 쟁점이 되어야 한다.
문재인 정권은 미•북의 핵협상 때 한국이 “중재자”로 나섰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것이 미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
핵을 미국 땅에 떨어뜨릴 수는 있어도 그것은 스스로 자멸의 길임을 북한이 더 잘 안다.
북핵의 주적은 당연히 한국 이다. 한국은 당사자 중의 당사자다.
그런데도 한국이 중립국이기나 한 것처럼 중재자라니, 더구나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당시 야당이던 지금의 여당조차 멀거니 쳐다보고만 있었으니, 이런 마비된 대북관이 나라를
무장해제시키고 있다. 그래서 반공이라면 벌떼같이 달려 들면서도 친공은 싹 입 다문다.
통일이 염원이라지만 국토 통일은 국민의 대북관 통일이 먼저다.
전 국민의 일치단결은 핵보다 더 무섭다. 먼저 남한의 국민 의식이 완전한 자유민주주의로 통일 되지 않는 한 남북통일은 대박이 아니라 대재앙이다.
야당은 전 국민의 생명이 걸린 북핵보다는 한 상병의 죽음에 집착하고, 전 국민의 안녕보다 명품백에 국운을 걸고 있다.
북핵에 대한 국민의 정신 무장을 해제시키고 있고
많은 국민들은 피로하다고 이에 동조하고 있다.
로마제국이 왜 쇠망했는지 아는가. 군대의 기강이 해이 되어 갑옷이 무겁다고 벗어 던지면서 망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역이용하여 이 체제의 전복을 획책하는 음모를 국민은 눈을 부릅뜨고 경계해야 한다.
독재시대는 체제 전복이
불가능하므로 민주화 투쟁은 그 자유를 이용하여 자유주의 체제를 전복시키기 위한 술수가 되고 말았다.
자유주의라 하여 자유를 억압하는 자유마저 용납하는 것은 자유주의의 자살행위다.
“민주주의는 자신을 포기하며 자신을 방위할 수 없다” 라고 했다.
자유는 자유를 모독하는 자들을 반드시 징벌한다. 자유를 오용하고 악용하는 자들은 반드시 자유에 복수를 당한다. 자유의 복수는 자유를 빼앗는 것이되고만다.
극성 지지자들의 팬덤이 위험 하다. 정치적 팬덤은 우상화의 바로 전 단계이기 때문이다.
우상화의 모델은 멀리 있지 않다. 주체사상에 광희하는 북한 사람을 흉볼 것도 없다.
남한 주민도 저런 체제에서는 꼭 저렇게 될 것이다.
동족의 유전자이기 때문이다.
침몰하는 것은 다 조짐이 있다. 그 조짐을 깨닫지 못할 뿐이다.
지난 총선 결과는 조짐이었다.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
재외의 한 언론인은 총선 결과를 보고 “그토록 절규하던 민주주의가 이런 민주주의 였습니까”하고 통탄했다.
참으로 얼마나 목이쉬도록 외쳤던 민주화였던가. 그러나 지금 그 민주주의가 정착 되었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국민이 민주주의를 수호할 책임 있는 민주 시민이 되지 않는 한 아직은 이 땅에서 민주주의는 없다.
지금의 대혼란은 국민의 승리가 아니라 국민의 패배다.
나라가 망해도 국민이 항상 옳은것은 아니다. 망국의 국민은 국민의 자격이 박탈된
것이다. 지금의 우리 국민은 언제 폭발할지 모를 화산위에 춤추고 일부는 잠자고 있다.
고대 그리스 희극시인의 작품 ‘새’에 나오는 포세이돈의 목소리로 묻는다.
“민주주의여, 도대체 우리를 어디로 몰고 가려는가?”
- 김성우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한국일보 고문, 주필, 편집국장, 駐佛특파원 역임)
근저 : "수평선 너머에서",
"인생을 묻는다", "명문장의 조건" 최근 영상자서전으로
"돌아가는 배" 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