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방송시간 얼마 남지 않은 빠듯 한 시간에 맞추기 위해 바로 앞에서 택시를 잡아 탄 수진은
방송시간을 불과 5분여를 남겨 둔 시점에서 겨우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 헉..헉...언니.... "
" 얘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옷부터 갈아입어 "
" 어...알았어 "
- 방송시간 2분전.... -
고객들 앞에 선보이게 될 의상으로 불이나게 바꿔 입은 수진은 무대에 올라 이제 꼭
2년차에 접어드는 베테랑 답게 카메라가 잘 받는 좋은 각도에서 여러가지 모션을
취해보며 미쳐 추스리지 못 한 옷매무새를 다시 한번 가다듬었다
오늘 수진이 선보일 의상은 S/S 시즌을 겨냥해 공중파를 타는 만큼 한눈에 보기에도
시원스러워 보이면서 여성스러움이 물씬 풍기는 패턴 자체가 깔끔하니 전체적으로
페미닌스타일 풍의 원피스다
" 자 이제 방송 1분전 입니다 오늘 처음으로 방송에 선보이는 브랜드니 만큼 각별히 신경 좀 써주세요 "
" 수고 많으십니다 바비로아 대표 신혜민입니다 "
바비로아 대표 신혜민 수진과는 과는 다르지만 같은 학교 대학 동기 출신으로 25살이라는
믿기 힘든 어린 나이에 여성의류 브랜드 바비로아라는 이름으로 인터넷 쇼핑몰을 창업한지
이제 횟수로 2년 남짓 연 매출 수억을 올리며 현재 문의가 쇄도하고 있는 의상협찬을 비롯
이제는 자신이 만든 브랜드를 걸고 당당히 홈쇼핑으로 까지 그 영역을 넒혀가며 고도성장
중에 있다 이 모든 걸 가능하게 만든 여성파워 신혜민 그런 그녀의 위력은 각종 언론에
소개 될 정도로 실로 대단하다
" 방송 30초전 입니다 스탠바이 해주세요 "
" 잠시만요 저기 저쪽 끝에 서 있는 저 모델은 지금 저희 브랜드 컨셉과는 동떨지는
이미지라고 보는데요 김PD님이 보시기에는 어떠세요?! "
" 갑자기 모델 하나가 펑크내는 바람에 제가 급히 부른거예요 프로인성도 있고 이 바닥에 선
꽤 베테랑인 친구라 느낌을 잘 살려낼 거예요 "
방송을 불과 30초 남짓 남겨놓고 있는 상황에서 인사차 잠시 제작부를 방문한 혜민이
검지 손가락로 가르켜 보이며 지명한 사람은 다름 아닌 수진.....
혜민의 예리한 눈에 비친 수진은 공중파라는 매개체에 처음으로 야심차게 내보이는
자신의 브랜드 이미지와는 어쩐지 동떨어져 보이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 흐흡!!! "
위에서 아래 스튜디오를 내려다 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긴 혜민
" 한번 믿어보세요 괜찮은 친구예요 "
' 10초전입니다 마무리 다 끝나셨죠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
" 이번에 저희가 내보이고 싶은 바비로아 컨셉은 여성스러워면서도 조잡스럽지 않은
여성성을 한 껏 강조한 페미닌 스타일인데 저 모델은 다른 모델들에 비해 너무 튄 다는
느낌이 드네요 내츄럴이나 여성스러움과도 거리가 있어 보이고 빼주세요 "
" 하지만 지금 교체하기에는........ "
" 김PD님 지금 남아있는 모델로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전 그렇게 판단되는데요 빼고 가죠 "
' 1번 카메라 들어가고 스탠바이 큐 '
" 안녕하세요 올 여름 여러분 앞에 첫 선을 보이는 것 같아요 우리 바비로아 아시는 분들은
보시면서 고개 끄덕끄덕 하실 거예요 "
쇼 호스트의 오프팅 멘트와 함께 시작된 방송
수진은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다시 한번 자신이 오늘 선보일 의상을 꼼꼼히 체크해 보고 있는 중이다
" 수진씨 잠깐만 "
쇼 호스트의 멘트가 나가고 있는 동안은 모델은 카메라에 잡히지 않으므로 수진은 자신과 일하며
여러번 부딧혀 안면이 있는 AD가 부르는 쪽으로 다가갔다
" 왜요?! "
" 저기...아..그러니까 그게 말이야...... "
" 뭔데 그래요?! "
" 이 브랜드 대표가 지금 여기 와 있는데 수진씨 보더니 자기네가 추구하는 컨셉과는
수진씨가 좀 맞지 않는 것 같다나 뭐라나 .......... "
" 그래서 빼고 가자던가요 "
" 김PD가 계속 설득을 해봤는데 도통 먹히질 않아 대표가 직접 와서 저런이 김PD도
별 수 없나 봐 수진씨가 이번만 이해해주라 "
콧대 높다면 높은 수진의 자존심 남에게 밑보이는 건 곧 굴욕이라고 생각하는 그녀이기에
자존심이 상할때로 상한 수진은 '없어도 있는 척 몰라도 아는 척 ' 그녀가 평소 목숨처럼
여기는 좌우명 그대로 자신을 한없이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는 AD를 향해 괜찮다는 듯
상관없다 듯 최대한 밝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 저도 실은 이거 말고 촬영이 하나 더 있는데 김PD이랑 저랑 워낙 잘 아는 사이라
하도 부탁하길래 거절할 수가 없어서 온거지 안 그랬으면 못 왔을 거예요 "
" 휴~~그래 그럼 다행이구 암튼 미안해 수진씨 "
" 저도 일이 있다고 했잖아요 시간이 좀 남아서 오긴 했는데 펑크나면 어쩌나 내심
걱정하고 있 던 차였어요 오히려 잘 됐네요 전 괜찮으니까 신경쓰지 말고 가서 일 보세요 "
" 그럼 바빠서 담에 보면 커피 한잔 살게 "
" 그러던가요 "
분장실로 돌아와 자신이 입고 왔던 옷으로 바꿔 입는 수진 .....
혼자 남겨진 지금 마치 자신이 꼭 패배자가 된 것만 같은 치욕스러움에 꽉 깨문
아랫입술이 미세하게 떨려옴을 느낀다
" 수진아 "
" 바쁜데 뭐하러 왔어 "
" 기지배 말하는 꼬라지 하고는 뭐하러 왔겠냐 "
" 일은 "
" 잠깐 다른 사람한테 맡겼어 저기 수진아........ "
" 위로 할려고 그러지 하지마 존심상해 자책도 하지마 언니 잘못아니잖아
지금 위로 받는 건 내가 못나 보이는 것 같아서 그래서 싫어 "
" 나 이것만 끝내면 퇴근이야 어디 가서 술이나 한 잔 하자 위로주는 괜찮지? "
" 으휴!! 위로주라면 기꺼이 받을게 됐지 얼른 가봐 자리 오래 비우면 안돼잖아 "
" 그래 그럼 끝나고 전화할게 "
" 알았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