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mark님// 아시가루는 족경(가벼운 발, 즉 발이 빠른 병력)이라는 뜻으로 무로마치 시기에는 유격대같은 역할을 하는 병종을 의미했지만, 무로마치 시대 후기부터는 정규군을 의미합니다. 게다가 일단 아시가루는 사무라이 계급의 말단에 위치합니다. 일본에서 일반 백성은 무기를 들고 싸울 수 없는 계층입니다.(잇키같은 반란 빼고) 전투는 사무라이 등 무사의 특권이었죠. 아시가루는 농민을 병력으로 훈련시켰다기 보다는 군인이 땅을 갖고 농사를 짓는 그런 존재로 생각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뭐, 사실 이건 토탈워의 아케치님이 오시면 싸악~ 정리될 이야기긴 하군요
여러 글 중에서 특히 상기 댓글이 현재 발생하고 있는 논쟁의 매우 핵심을 드러내는 것 같은뎁쇼, 기본적으로 [아시가루"라는 계급은 "정규군"이지, 병농일치제 하의 조선의 "농민병"과 같은 징집병이 아니다]라는 주장에 있어서 말하자면 [아시가루]와 [조선 병사]의 차이가 정규군-비정규군의 차이라는 그런 시각이 드러나지라.
문제는, 사실, 징집여부와 정규/비정규의 여부는 별 관계가 없다는데 있지라.
아주 극단적인 예시로, 현대 한국군의 60만을 상회하는 병력 중 대부분은 "징병"에 의해 소집된 병력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병력이 "정규군"이 아닌 것은 아니어라. 마찬가지로, 그러한 병역을 수행한 사람들은 사회로 돌아가있지만, 이 사람들은 일정 기간동안 "예비군"에 소속되어 있는데, 이 "예비군"고 사실은 "정규병력"의 일부라는 헷갈리는 상황이 말하자면 현재 진행되는 논쟁과 좀 관계가 있지라.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오늘날 용어상으로 "정규군 - 예비군" 이런 식으로 구분하는게 맞기는 맞지라. 근데, 사실 이것은 근현대로 들어오면서 군조직이 모든 국민을 카바할 수 있을만한 조직력/동원력을 갖춤에 따라, 사실상 [정규군 regular army] 과 [비정규군 irregular] 이라는 원래 구분이 의미를 상실했기 때문이어라. 예컨대, 좀 많이 혼란스러운 지역의 개판오분전 상황을 제외하고는 오늘날의 전쟁에서는 사실상, "군조직의 일부로써 그에 예속되고 통제되지 않는" 의미에서의 병사, 잡병, 용병.. 즉, [비정규군 irregular] 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어라,. 이러한 '비정규군'은 애초에 제네바 협약이 적용되지 않는 존재이고, 원칙상으로는 전쟁행위의 당사자가 될 수 없다는 국제해석이 들어섰지라.
원래 [예비군 reserves] 에 대치되는 개념은 [상비군 standing army] 이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비정규군 irregulars]이 보기 드물어짐에 따라 (게다가 어지간한 나라들은 몽창 상비병력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고..) [정규군 = 상비군 = regular standing army] 가 되었고, 그와 반대개념으로 일반적으로 우리네 전역한 남성들이 속해있는 [예비군 = reserves] 의 구도가 잡히게 된건데, 이게 역사적으로 늘 그러했던 것은 아니라는 말이여라. 사실, 따지고 보면 예비군에 속해있는 대한민국 남성들도 유사시에는 소집되어 구성이 되면, 일단 편제부터가 제대로 수방사라든지, 제1야전군이라든지 등등 지휘를 받게 되니, 사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정규군-예비군] 구별은 그 "정규성"에 의한 차이가 아니라 [현역 - 예비역]의 차이고, 실제로 전시에는 예비군도 분명 정규병력의 일부가 맞기는 맞다는 거지라. 그러한 [정규병력]이 아닌 대상을 찾는다면, 일단 현대의 [민방위 civil defense force]가 있겠고 (이건 신분부터가 '예비역'인 군인의 일종이 아니라 '민간인'으로써 아예 다르지라;;), 제2차세계대전에서 맹활약한 각지의 [빨치산 partisan forces]이라든지, 미국 독립전쟁 시기에 자기방어의 목적으로 형성된 각종 [민병대 militia] 라든지 이런거야말로 지대로 [비정규군 irregulars] 이지 말이어라.
즉, 현재 진행되는 논쟁에 있어서 위와 같이 깊은 헷갈림이 또한 발생하고 있는데, 병농일치제 아래에서의 "농민병"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예비군]이라고 보면 되지라. 그리고, 조선군의 벌크를 이루는 병사들도, 일본군의 벌크를 이루는 병사들도 똑같이 그런 [병농일치]라는 컨셉의 예비군인 것이기에 본질적으로는 북막님이 말하는 것처럼 큰 차이는 없다는게 맞는 말이어라.
기실, 아시가루도 조선군도 똑같이 농민병인 것이 맞고, 빗대어 말하자면 똑같이 [예비군]이어라. 개전 초기에 있어서 숙련도의 차이는, 말하자면 [당나라 군대]로 악명높은 대한민국 예비군과, 이스라엘 IDF의 예비군의 차이라고 보면 되지라.
일단 대한민국 예비군에서 회자되는 수 많은 문제... 사기, 효율성, 장비 및 실비의 부족, 운용의 미숙, 동원의 어려움 및 동원대상의 생계의 문제 등등등... 이러한 문제는 당장 전쟁의 위협이 실재하지 않는 나라에서는 어디서든 똑같이 겪는 문제지라 (-_-; 우리도 아직 휴전이지 종전은 아니라고는 하는데, 세상에 어느 미친 놈들이 서로 전쟁이라면서도 상대방 땅에다가 공장 짓고, 교류를 트고, 관광을 한다요;; 서로 적대국이라고 노려보고 무력도발 찔러보고 하고는 있어도 내부적으로는 사실상 종전에 준하는 상황으로 돌아가고 있지라).
그에 비해, 사방팔방 정도가 아니라 아예 나라 전체가 "적대국의 바다" 한가운데 섬처럼 박혀있고, 그 와중에도 바로 옆동네 팔레스타인 끝없이 갈구느라 끊임없이 군사활동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같의 막장 군동원의 막장 상황에서는 당연히 똑같은 예비군제도라고 해도 상기한 수 많은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가 있지라. 일단 실전동원의 기회 및 훈련의 빈도 강도가 다를 수 밖에 없고, 온 사방이 위험한 적이라는데 장비니 실비니 누가 왈가왈부하든 돈 댈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예비군 대상자의 생계니 뭐니 해봤자 걍 온 나라가 [그럴 수 밖에 없어]라고 합의를 한 상황에서 강제로 동원 해버려도 군말 할 상황이 아니니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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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막님의 견해에서는 애초에 조선군-일본군 사이의 경험의 차이라든지를 온당히 다 인정하고 있고, 다만 그것이 "제도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이 아님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데, 그게 맞는 말이라고 생각이어라. 왜냐하면 종종 일본군과 조선군의 차이를 "제도의 차이"로 파악하는 시도는 [조선은 비효율적이고, 약한 제도를 썼기 때문에 약군으로써 패배했고, 일본은 보다 효율적이고, 강력한 제도를 썼기 때문에 강군으로써 승리했다]라는 식의 결론을 도출시키기 마련인데, 이미 논쟁 중간에도 나온 얘기지만 당장 상황의 급박함과 멈추지 않는 실전을 통해 경험을 쌓기 시작하면서 개전년인 임진년이 지나간 이후에 당장 조선군은 일본군을 막아내기 시작했고, 보통 대중적으로 회자되는마냥 [관군은 무능했지만 의로운 백성들이 의병으로 일어나 일본군 다 막아냈다]라는 인식과는 다르게 어디까지나 7년의 전쟁기간 내내 조선의 주력으로써 일본군을 막아낸 중추 및 핵심은 그 "농민병"들인 관군인게 팩트이기에 당장 [제도의 차이에 기인한 숙련도의 차이]라는 주장은 개연성을 잃지라.
(ps) 여담으로, 100년 동안 헬게이트 열린 땅에서 코딱지만한 영지에서부터 몇 개의 "국" 단위에 이르기까지 서로 미친듯이 싸워대던 아비규환에서 숙련되고 단련되었다고 한다면 왠지 무슨 만렙찍고 스킬 다 갖춘 것처럼 무지 셀거라고 생각하기 마련인데, 그게 사실이라고손 쳐도 개전 초기의 발생한 패배 및 일본군의 전격전스러운 쾌속진군으로 인한 충격에서 벗어나고 이듬해 들어가면서부터 바로 군을 재편하고 십 만을 상회하는 병력을 만들어내서 진격을 멈춰세우고 대치국면에 들어갔다는건 그야말로 "제도"의 위력이지라.
초반에 선빵을 그렇게나 세게 얻어 맞았는데도 버티고, 회복하고, 전황을 뒤집어 장기전으로 이끌고 적을 소모시킨다는건 일반적으로는 몇 번의 운빨이나 몇 명의 영웅적 저항 따위로는 택도 없어라. 시스템 레벨에서 그러한 저력이 뒷받침 되었다는 반증이고, 그 "농민병" 들 데리고서도 그걸 할 수 있었다면 (게다가 매우 오랜 세월 전쟁이 없었는데도...!) 그건 병사 개개인의 숙련도나 경험의 차이 따위 상쇄할 수 있을만큼 싸울만한 능력이 충분히 있었다는 소리다요. 그런 면에서는 조선의 제도도 충분히 만만찮은거지라.
사람들은 흔히 독-소전에서 소련이 물량빨과 겨울, 그리고 렌드리스를 통해서 겨우 살아남았다가 서방에서 노르망디 상륙작전 벌어지고 본격적으로 독일이 양면공격을 받으면서 밀고 올라왔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독소전 전반의 패전에서 벗어난 43년 이후의 전황을 보면 소련군 자체가 단시간에 어마어마하게 성장을 했음을 알 수 있지라. 그것이 단순히 악으로 깡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고, 숙청되었을지언정 적어도 투하체프스키가 꿈꾸었던 기민한 제병협동 전술의 "유산"이 소련의 장교들 사이에 분명히 살아있었고, 소련이 인구만 많은 허당이 아니라 계속되는 패배 속에서도 끝없이 생산하고 보급하고 유지해나갈만한 기초체력이 있었기 때문에 이미 노르망디 이전에도 독일군 전체전력의 80% 가량을 상대하면서도 전황을 뒤바꾸고 서쪽으로 밀기 시작할 수 있었던거지라.
조선도 마찬가지다요. 군사적으로 허당이거나 정치적, 행정적, 제도적으로 무능했다면 왕도를 버리는 상황까지 갔는데도 우째 전황을 뒤바꿀 수 있었는감용.
첫댓글 맞는 말이라 생각합니다. 여담입니다만 사투리가 구수하네요 ㅎㅎㅎ
사실 임진왜란이 초반 60일 제외하면 일본군에게는 지옥 아닌가요?
조선이라는 나라의 무능함은 개전 60일동안 이미 보여질대로 보여진겁니다. 단기간에 수도를 잃고 왕이라는놈은 외국으로 도망갈준비만 했으니가요. 그뒤의 선전은 조선민중들의 저력입니다. 각지에서 의병 게릴라전으로 왜군을 괴롭히고 이순신장군의 경우 해로를 장악하여 보급에 타격을 가했죠. 이순신장군 평전을 보시면 알겠지만 선조개색히가 선견지명이 있어서 임용한게 아닙니다. 온갖말단험한보직으로 떠돌다가 당파와 개인의 연으로 얻어걸린 관직입니다.
참 한숨 팍팍 나오게 하십니다. 님의 눈에는 의병은 보이고 의병활동을 공인, 지원하고 동시에 일본군과 싸운 관병은 보이지 않으며, 조정이 파천한 건 보이고 그 조정이 그 상황 속에서도 계속 전황을 파악하고 어떻게 해서든 막으려 한 것은 보이지 않나 봅니다. 통상의 당시 관직이 당파와 개인의 연으로 얻어걸렸다고 하는데서 님이 실록 검색 한번 안했음을 알겠습니다.
이미 사장된 주장을 자신있게 하고 계시니 참 맥이 빠지게 합니다. 한가지만 알려드릴까요. 지금 님의 논리는 메이지시대에 나온 히데요시 평전의 그것과 같습니다. 조선은 허접한데 잇키 좀 일어나고 이순신이 잘해서 아슬아슬하게 못잡아먹었다는 그것과.
그 의병이 지금으로 치면 예비군이고 의병장들이 예비군 동대장입니다.
심지어 그 의병장들 경력 보면 몇개월전까지 관직생활하다가 잠깐 쉬던 사람이라던지 인맥이 정승판서까지 닿아 있는 사람이 많은게 재미난점 아니겠습니까.
임진왜란은 조선을 운용하던 것들이 망쳐놓고 아웃사이더들이 회복시킨 경우죠. 그뒤 선조와 똘마니들이 의병탄압한 경우를 보면 무능한자들이 권력의 쥐었을때의 전형적인 모습이지요. 조선의 명맥을 붙여놓은것은 조선이라는 체계도 선조개색히도 그밑의 똘마니도 아닌 일부 진실한 유교청백리와 살기위해 항거한 민중들입니다.
==; 위에 써놓은거 걍 안읽어보셨다는 말이지라;;?
광해군때 집권층이 거의 다 의병장 출신입니다만.
사람 말은 안듣고 자기말만 하는 사람이 참 많은듯;
저 불리한 건 슥 지나가면서 남 갈아대기는 버릇처럼 하는 사람도 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