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예찬
강 문 석
계절의 여왕으로 불리는 오월이 깊어지자 세상은 온통 장미꽃 천지로 변했다. 아파트 담벼락을 붉게 물들인 꽃들이 불꽃만큼이나 정열적이다. 매년 오월이면 성당에선 장미꽃화관을 만들어 성모님께 바치면서 ‘성모성월’을 노래한다. 노래가사에 나오는 꽃으론 옥잠화가 유일하지만 ‘가장 고운 꽃’이 바로 장미인 것이다. 꽃에 대해서 과문하다보니 막연하게 장미가 오월의 꽃이려니 했다. 그래서 오월은 장미꽃 덕분에 계절의 여왕이 된 줄로 알았다.
하지만 장미는 육칠 월에 피는 꽃이고 우리 앞에 재앙으로 다가온 지구온난화가 개화시기를 앞당긴 것뿐이었다. 그런데도 <동국세시기>에는 오월에 노란 장미꽃을 따다가 떡을 만들어 기름에 지져먹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또한 장미는 매달 꽃을 피우는 바람에 월계화月季花로 불렸고 일 년 내내 핀다고 장춘화長春花라고도 했다니 무슨 말인지 얼른 납득이 어렵다. 이렇다 보니 예전의 장미는 청춘 또는 사계절을 상징했고 미술품에 나타나는 장미는 길상의 의미를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한 연유로 평안을 의미하는 화병과 함께 장미가 그려지면 사계절 내내 평안하길 기원하는 것이 되었다. 어린 시절 고향산천엔 장미꽃이 없었지만 그 대신 찔레꽃이 지천이었다. 그런데도 찔레꽃이 해당화와 더불어 장미의 사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광복 후 유럽과 미주 등지로부터 서양 장미 우량종이 들어오면서 다양한 종을 재배했다는 사실도 근래에 알게 되었다. 전국에서 장미꽃축제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리는 것을 보면 이제 꽃의 개화시기도 지역별로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직장 은퇴 후 살았던 대도시와 지금의 소도시까지 신도시에서만 십오 년쯤 살다보니 굳이 장미꽃 축제현장을 찾아가지 않더라도 거주지에서 장미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얼마든지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아내가 이제는 더 이상 사는 곳을 옮기지 않으려는 것도 이렇게 꽃 대궐로 바뀐 주거지 환경 때문이지 싶다. 그는 입버릇처럼 집만 나서면 전체가 공원인데 어딜 굳이 찾아갈 필요가 있느냐고 따지듯 말한다. 어쩌면 생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노년생활을 자신이 처한 환경에 만족하며 산다는 것이 행복일지도 모른다.
고학시절 서울 남산 밑 후암동 비탈에서 만난 장미넝쿨이 아치형 대문을 장식한 집은 세월이 흘러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땐 서울에도 번듯한 양옥집이 많지 않아서 그렇게 깊이 각인되었을 터이고 서양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처럼 느껴졌다. 지난 사월 초 벚꽃이 절정이던 날 남산을 올랐다가 그 옛집이 떠올라 찾아갔었다. 하지만 그 자리엔 쇠락한 오층 빌라가 들어서서 세월의 무상함만 안겨줄 뿐 장미넝쿨은 흔적도 찾을 길 없었다.
‘장미꽃에도 가시가 있다’는 속담이 있다. 사람이 겉으론 좋아 보여도 남을 해롭게 할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도 <장미의 애인>을 쓴 어느 시인은 뾰족한 가시가 달려 있다고 해서 장미를 멀리하거나 무서워하면 장미의 애인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날카로운 가시가 돋아 있어도 그 가시를 겁내지 않고 찔려서 피 흘릴 각오까지 해야 불꽃같은 장미의 어엿한 애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용기와 모험이 필요한 게 사랑인데 그까짓 가시 하나를 겁낸다면 사랑할 자격이 없다는 말로 들린다.
그렇지만 그는 세상의 모든 장미를 사랑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세월의 어느 모퉁이에서 한순간 눈에 쏙 들어왔지만 어느새 내 여린 살갗을 콕 찌른 독한 가시 그 한 송이 장미를 미워하면서도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장미는 이처럼 가시까지도 사랑해야하기 때문에 문학작품이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모양이다. 이때도 월계화나 장춘화가 아닌 비극의 주인공으로만 그려지는 게 납득하기 어렵다. 아마도 작가라는 사람들은 화려한 장미를 통해 인간 탐욕의 비극을 알리고자 하는지도 모르겠다.
광복 이년 후 중앙신문에 반년 넘게 실렸던 정비석의 장편소설 <장미의 계절>과 신군부 시절에 나온 영화 <벌레 먹은 장미>가 그러했고 청록파 시인 박두진이 읊은 <장미의 노래>도 다르지 않았다. 장미처럼 꽃말이 많은 꽃도 드물 것이다. 장미의 꽃말은 원래 열렬한 사랑이지만 꽃이 지닌 색상별로 꽃말은 천차만별이다. 흰 꽃은 순결과 청순을, 노랑은 우정과 영원한 사랑이지만 들장미는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대로 고독과 소박한 아름다움이다. 장미는 기원전 이백 년경부터 여러 종들이 복잡하게 교배되어 만들어진 잡종이다.
그런데다 매년 수백 종이 새로 만들어지고 있다니 꽃말을 담당하는 사람들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장미를 사랑했던 큐피드에 관한 이야기 한 토막. 신이 처음에 장미를 만들었을 때 사랑의 사자 큐피드는 그 장미꽃을 보자마자 너무나 사랑스럽고 황홀해서 키스를 하려고 입술을 내밀었다. 그러자 꽃 속에 숨어있던 벌이 깜짝 놀라 침으로 큐피드의 입술을 톡 쏘고 말았다. 이러한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여신 비너스는 큐피드가 안쓰러워 벌을 잡아서 침을 빼내어 장미 줄기에다 꽃아 두었다.
하지만 큐피드는 가시에 찔리는 아픔을 마다하지 않고 여전히 장미꽃을 사랑했다는 러브스토리다. 수녀시인 이해인은 그의 시 <유월의 장미>에서 ‘아름다운 장미의 계절에 눈물 속에 피워낸 기쁨 한 송이 보내니 내내 행복하시라’고 노래했다. 정작 투병중인 자신이 위로를 받아야 하지만 은유가 생명인 시를 살리고자 가없는 주님의 사랑을 끌어들인 것 같았다. 천지사방에 향기를 전하는 꽃들은 말한다. 그냥 물끄러미 바라보지만 말고 자신의 이름을 불러달라고. 그러면 더욱 예쁜 얼굴과 향기로 보답할 거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