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4. 10. 큐티
시편 39:1 ~ 6
연약한 인생
관찰 :
1) 표제어
-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여두둔 형식으로 부르는 노래 => 본 시편은 다윗이 쓴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두둔 형식으로 부르는 노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두둔”은 ‘아삽’, ‘헤만’과 더불어 다윗이 세운 찬양인도자 중의 한 명입니다. “여두둔”은 ‘신의 손“라는 별명을 가진 찬양인도자로 그는 모든 악기를 잘 다루었고, 다양한 작곡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그의 음악적 재능을 높이 샀고, 그의 깊은 영성을 통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성가대의 수준을 높였습니다. 본 시편 역시 여두둔의 재능으로 만들어진 곡에 가사를 붙여 여호와를 찬양한 것입니다.
- 본 시편의 표제어나 내용 상에는 본 시의 저작 배경이나 저작 시기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 시편 전반에 담겨진 무상한 인생에 대한 회한과 자신이 처한 처지에 대한 겸허한 인정 등의 표현들을 통해서 다윗이 곤경 중에 지은 시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본 시편의 상황을 38편과 관련하여 밧세바 간음 사건과 연관해서 추정하기도 합니다. 다윗은 당시 하나님의 징계로 인해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었으며 그의 주변에는 그를 대적하는 악인들이 다윗의 완전한 파멸의 기회를 엿보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로 인해 발생한 질병과 절망적인 상황에 착념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러한 사정을 통해서 인생의 허무함과 연약함을 극복할 길은 사죄와 구원을 얻는 것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바로 사죄와 회복의 은총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소망하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2)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 1절. “내가 말하기를 나의 행위를 조심하여 내 혀로 범죄하지 아니하리니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에 내가 내 입에 재갈을 먹이리라 하였도다” => 다윗은 악인들 앞에서 그 행위와 말을 삼가고자 하는 심정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행위를 조심하는 것과 그 혀로 범죄하지 않을 것을 마음 먹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우선 자신의 생활의 태도와 행동 방식을 여러 가지로 절제하고 조심하겠다고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그리고 그 혀로도 범죄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와 같이 함으로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지 않고 하나님께서 은총을 베푸심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를 기다린다는 심정을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재갈”은 말의 입에 물리는 쇠토막입니다. 말을 제어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다윗은 악인이 자신 앞에 있을 때에 더욱 말을 조심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말을 왜곡시켜 온갖 악한 말을 지어내고 중상 모략하는 자들의 악의 때문이었습니다.
- 2절. “내가 잠잠하여 선한 말도 하지 아니하니 나의 근심이 더 심하도다” => “잠잠하여”라는 말은 “혀를 묶다”라는 의미로 1절에 이어서 말을 주의하겠다는 표현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다짐한 대로 악인들의 모든 비방과 거짓 증언 앞에서 마치 벙어리처럼 철저하게 침묵으로 일관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철저한 침묵을 하기 위해서 자기 속에서 나오는 선한 말도 억제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선한 말조차 억제해야 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심각한 고통과 슬픔에 빠져가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 3절.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불이 붙으 니 나의 혀로 말하기를” => 다윗은 자신의 말을 조심하고 침묵으로 일관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 다윗 자신의 내명에서 일어나고 있는 반응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로 인해 온갖 시련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악인들이 자신을 비바하고 온갖 거짓 증거를 내뱉는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모든 것을 감내하면서 침묵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침묵하고자 한 다윗의 결심은 다윗의 내면에서 큰 고통을 일으켰습니다. 악인들이 횡행하고 하나님의 공의를 거슬러 온갖 악한 말을 서슴지 않는 현실 앞에서 다윗의 내면은 타는 것처럼 되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속이 타서 자신의 마음 속에 끓어오르는 격한 감정을 통제할 수 없어서 이제 크게 외치며 부르짖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 4절.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 다윗은 인생의 무상함에 대하여 내적으로 깊이 묵상하고 번민했던 바를 하나님 앞에 아뢰고 있습니다. 자신의 극한 감정에 대해서는 직설적인 표현이 아니라 애둘러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유한하고 연약한 존재인지를 알게 해 달라는 기로를 통해 자신의 내면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알게 하사”에서 다윗이 알게 해 달라고 한 것은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입니다. 즉 다윗의 생의 끝, 죽음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덧없는 것이며 제한적인 것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이 인생의 궁극적 한계에 대하여 가르쳐 주시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공의를 좇아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인데, 여전히 불의한 자들이 득세하는 상황이 끝까지 이어지고, 자신의 삶은 결국 그렇게 손해만 보는 것 같이 마치게 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질문인 것입니다. 다윗이 비록 밧세바를 간음하는 범죄를 저질렀지만, 한 순간의 범죄로 인해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신과 달리 악인들은 줄곧 죄를 범하면서도 망하기는커녕 더욱 득세하고 오히려 자신을 비난하고 조롱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당시의 상황 속에서 다윗은 지극히 허무한 존재에 불과한 인생에 대해 깨닫게 되면서 불의한 악인들의 번영과 형통을 보고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하나님의 절대적 공의를 의심하는 일을 범하지 않게 해 달라는 의미로 이러한 간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3) 그림자 같은 인생
- 5절.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셀라)” => 다윗은 자신의 날이 짧다는 것을 비유로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무한하심에 반하여 인생이 얼마나 유한한지를 구상화시켜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라는 표현은 인생의 짧음과 허망함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라는 표현 역시 인생의 짧음과 덧없음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는 표현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인생을 손 넓이에 비유하다가 이제는 아무 것도 없는 것과 같다고 함으로 인생의 궁극적 한계를 점층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궁극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은 헛된 인생들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영원불변하시며 하나님 안에서만 허무한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6절.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 다윗은 인간의 실존을 “그림자 같이 다니는”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인생이 추구하는 바와 그것의 결국이 허무하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즉 다윗은 인생들이 모두 그림자 같은 허탄한 삶을 살면서도 그 삶이 항상 바쁘고 분주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인생은 하나님 없이는 허무하고 허탄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가르침 :
1) 다윗은 자신과 또 이 시편을 읽는 자들, 하나님의 백성들이 인생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아는 자가 지혜자이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바르게 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인생은 참으로 허탄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고, 악을 행하기에 재빠른 존재가 된다는 것을 다윗은 말하고 있습니다.
2) 다윗은 인생이 그림자 같고 헛된 것이라 말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분주하게 열심히 살아도 의미없는 것에 불과한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솔로몬 이전에 이미 다윗이 그러한 인생의 허무함을 다루고 있습니다. 참으로 영원불변하신 하나님이 없는 인생은 허무하기 짝이 없는 그림자 같고 신기루 같은 인생인 것입니다.
3) 아무리 열심히 재물을 쌓아도 그것을 누가 거둘지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불확실한 것을 위해서 노력하는 인생의 허무함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온전하시고 영원불변하신 하나님 편에 있을 때 인생은 참다운 의미를 찾게 되고, 무엇에 가치를 투자해야 할지 바르게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적용 :
1) 하나님 없는 인생은 실제로 허무할 따름입니다. 인생의 한계를 모르고 사는 것도 허무할 따름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는 영원불변함에서 오는 것이기에 가장 정확한 지혜입니다. 주님을 바라봄이,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임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2) 허무한 인생의 허무한 몸짓으로 살기를 거부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섭리 속에 들어가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며 살기를 소망합니다. 영원불변하신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기를 소원합니다. 그것이 또한 성령의 소욕을 따르는 길이고, 예수로 충만하게 되는 길임을 믿습니다.
3) 사랑하는 우리 조국 대한민국의 총선이 있는 날입니다. 주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자들이 지도자로 세워지게 되기를 간구드립니다. 자신이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자신의 당이 다수당이 되도록 하기 위해 국민들의 정서를 찢어 놓은 악행을 어떻게 수습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나라 우리 조국 대한민국을 긍휼히 여겨주시길 간절히 간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