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은 초기 교회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규칙 또는 표준으로 사용했던 신앙의 요약 진술입니다. 원래 세례 예식 때 예비 신자들이 교회의 신앙을 고백하는 용도였는데, 나중에 올바른 교리를 보장하고 이설(異說)을 억제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신경이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왜 성경 본문이 아닌 전례문이 말씀 전례 안에 있는지” 의문을 가질 법도 합니다. 여기에는 신경이 성경의 이야기 전체를 요약한다는 말로 대답할 수 있겠습니다. 창조에서 시작하여 그리스도의 강생, 죽음, 부활, 성령 강림, 교회의 시대,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에 이르기까지 신경은 구원 역사의 이야기 전체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이 짧은 신앙 진술 안에서 우리는 창세기부터 묵시록까지 관통하는 이야기(창조, 타락, 구속)와 이 드라마의 주연인 하느님의 세 위격 성부, 성자, 성령을 알아봅니다. 한마디로, ‘성경이 길게 말한 것을 신경이 짧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경을 기도하듯 낭송하는 관습은 성경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은 ‘쉐마’라고 알려진 신앙 진술로 자신들의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이것은 히브리 말로 “들어라”라는 뜻으로, 신명기 6장 4-5절에 나오는 말씀의 첫 단어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스라엘은 이 거룩한 말씀을 계속 마음에 담고, 자녀들에게 가르치고,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들기 전에, 집에 있을 때, 거리로 나갈 때 등 하루 동안에도 규칙적으로 바쳐야 했습니다(신명 6,6-9).
‘쉐마’는 세상에 관해 이스라엘 주변 민족들이 일반적으로 알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를 말합니다. 대부분의 고대 근동 민족들은 다신교 세계관을 유지했습니다. 그들은 많은 신들이 있다고 믿었고, 각 부족 또는 민족은 그중에 자신만의 신들을 섬기면서 평안을 유지해 나갔습니다. 고대 세계에서 종교란 원칙적으로 부족적, 인종적, 민족적 울타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다신교적 환경 속에서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라는 말은 이스라엘의 유일신 신앙을 아주 대담하게 드러내는 표현이었고, 다른 민족들에게는 매우 과격하게 들렸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그저 세상의 많은 신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모든 민족들 가운데 유일하게 계신 진짜 하느님이라는 선언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유다교 유일신론은 이집트, 가나안,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모시는 신들의 가면을 벗기고, 그들의 진짜 모습을 폭로해 버립니다. 그것들은 한낱 나무나 돌로 만들어진 우상에 불과할 뿐 전혀 신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야말로 유일한 하느님이다! 더군다나 ‘쉐마’는 세상에 그냥 한 분 하느님이 계심을 선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한 분 하느님이 이스라엘과 특별한 계약을 맺으셨음을 알렸습니다. 유다인들의 유일신관에는 실로 세상의 지배적인 가치관을 뒤집어엎는 날카로움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미사 때 낭송하는 신경은 ‘그리스도인의 쉐마’입니다. 구약의 ‘쉐마’가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의 신경은 오늘날의 지배적인 문화와 가치관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메시지를 지니고 있습니다.
[김경민 판크라시오 신부(성소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