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이 감독 따라, 이 작품 따라 미쳐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새벽 시간을 털어 영화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OST)을 모두 여기 소개하려 하고 있다. 기분 좋은 음악도 아니다. 소름끼치고 선병질 돋는 음향들이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킬링 디어'(The killing of a sacred deer, 2017)가 문제의 영화다. '더 랍스터'와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그리고 최근 매우 흥미롭게 본 '가여운 것들'을 연출한 란티모스 감독의 작품 가운데 가장 정갈하고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닌가 한다. 영화 줄거리와 결말, 작품 속 해석, 영화사적 의미는 아래 블로거의 꼼꼼한 포스트를 참조하면 되겠다.
나는 조니 번이 엮은 OST에 주목하려 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소름끼치는 음향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궁금했다. 첫 음악, 무려 1분 가까이 검정 바닥을 보여주다 누군가의 심장을 봉합 수술하는 장면에 흘러나오는 슈베르트의 '스타바르 마터르'는 익히 알고 있었다. 리게티나 바흐의 음악 같은데 하는 느낌은 있었다. 그외 많은 음향들이 클래식 음악의 소산임은 놀랄 만하다. IMDb가 정리한 OST 목록 가운데 두 곡은 끝내 유튜브에서 찾을 수 없어 빠졌다. 아래 리스트를 참조하면 되겠다.
엘리 굴딩의 'Burn'을 딸 킴(래피 캐시디)이 나무 아래에서 괴이쩍고 섬뜩한 소년 마틴(베리 케오건)에게 들려주는 장면은 아름답고 아름답다.
사실 영화는 머릿속을 온통 헤집어놓을 만큼 난해하다. 그런데 두 번, 세 번 보면 볼수록 논리적으로 촘촘하게 짜여 있고 논리적 구성력도 탁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흉부외과 의사 스티븐(콜린 파렐)를 협박하는 마틴이 절대자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고, 스티븐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절대자란 해석이 신과 인간의 관계를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처음 보면 당혹스러움을 잔뜩 안기지만 볼수록 정갈해지는 영화다. 난해하게만 다가오던 OST도 뜯어 보면 한마디로 정성이 묻어난다. 오히려 영화의 러닝타임 121분보다 여기 옮긴 분량이 더 긴 점은 이해해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