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과 Father-in-law
나에게는 사위가 둘 있다. 둘 다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인데 한국어가 서툰 그들은 나를 부를 때 대개는 Dad라고 부른다. 한국에서는 사위가 장인을 '아버님' 또는 ‘장인어른’이라고 부르는데, 나는 그런 호칭을 써 본 적이 없다.
아내와 내가 만나기 두어 해 전에 장인이 세상을 떠났고, 장모는 아내가 어렸을 적에 세상을 떠나 두 분의 얼굴조차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버님과 어머님이나 장인어른과
장모님이라는 호칭 모두 나에게는 익숙하지 않다.
장인(丈人)과 장모(丈母)의 장(丈)은 '어른 장'이다. '장인어른'은 어른이란 의미가 두 개 겹쳐 '어른 중의
어른'이 되는 셈이니 잘못된 표현이 아닌가 싶다. 아내의 어머니가 '장모(丈母)'라면 아내의 아버지는 '장부(丈父)'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장인이라고 부르는 건 호칭에 일관성이 없는 것 같다. 친부모를 부를 때는 '아버지'
'어머니'라고 하고, 사위가 장인 장모를 부를 때나 며느리가 시부모를 부를 때는 "아버님' '어머님'이라며 꼭 '님'자를
붙인다. 시부모와 며느리, 장인 장모와 사위 사이는 혈연관계가 아니라서 예의를
갖춘다는 뜻으로 그렇게 부르는 것 같은데 그게 오히려 거리를 느끼게 한다.
영어로는 결혼으로 맺어진 관계에는 in-law를 써서 father-in-law는 장인 또는 시아버지, mother-in-law는 장모 또는 시어머니라는 호칭으로 쓰이는데 law라는 단어가 차가운 느낌을 주어서 나는 그런 호칭을 쓸 때마다
거리감을 느끼지만, 영어가 상용어인 그들에게 달리 쓸만한 마땅한 호칭이 없다.
한두 달에 한 번 정도 만나는 큰사위는 나와 영어로만 대화를 나눈다. 대학교수인 그는 예의가 바르고 나와 함께 술을 마실
때도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는다. 가끔 큰 사위가 수줍은 듯이 한국어로 ‘아버님’이라고 불러 줄 때도 있지만 Dad라는 호칭이 더 살갑게 느껴진다.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작은사위는 일 년에 한 번 보기도 어렵다. 어쩌다 만나면 ‘아빠’, ‘아버지’ 아니면 ‘Dad’라는 호칭이 마구 뒤섞이는데 성격이 털털해서인지 뭐라
불러도 자연스럽다. 나는 사위들을 부를 때 누구 아빠라든가 서방(書房)이라는 호칭을 쓰지 않고 그냥 영어식 이름을 부른다. 그게 사위들에게 편하기도 하겠지만 일은 안 하고 책방에서
글이나 읽는 책임감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 연상되는 그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 전 발렌타인데이에 카톡을 보았더니 친구 목록에 낯익은 영어 이름이 보였다. 작은 사진을 자세히 보니 작은
사위였다. 작은사위와 통화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친구 목록에 그가 올라왔는지 의아했지만, 반가운 마음에 몇 자 적기로 했다.
“늘 바쁘게 지내겠지? 오늘, 발렌타인데이에 ‘I Love
You!’라는 말이 하고 싶구나. Father-in-law.”라고 찍었더니 얼마 후에 답장이 왔다.
늘 한두 단어, 아니면 한 문장으로 용건만 간단히 전하는 딸들과는 달리 작은사위의
답글은 꽤 길었다. 갑자기 내가 보낸 글을 보고 기뻐했다는 걸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제게는 그냥 아버지이지 법적인(in-Law)
아버지가 아니니 앞으로는 그냥 Father라고 하세요,” 사위도 아마 Law라는 단어에서 거리감을 느꼈나 보다.
사위가 보낸 답글을 아내와 함께 여러 번 읽어보니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우리 딸들은 시부모에게 이렇게
따뜻한 글을 보내는지 모르겠다. 평소 우리에게 보내는 이 메일을 짐작해 보건대 글을 쓴다고 해도 분명히 단답형일 것 같아서 양쪽 사돈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짧은 글이라도 시부모에게 자주 안부를 전하면 좋겠는데 두 딸 모두 말로써 의사 표현하는 게 서툰 무뚝뚝한
아비를 닮아서 걱정이다.
어른 장(丈)이라는 한자를 보면 오른쪽 대각선 방향으로 아래쪽으로 가로지른 선이 긴 대나무 담뱃대나 작대기 같아서 성미가
고약한 꼰대를 상징하는 것 같다. 평소에 사위들에게 생각이 구태의연하고 잔소리가 심하여 대하기가 거북한 꼰대라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고 너무
조심한 게 오히려 그들에게 거리를 느끼게 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2018년 2월 19일)
첫댓글 좀 다른 이야긴데, 난 사위와 친근하게 지내기 위해 흔히 말하는 "이서방"이라 하지 않고 그냥 이름을 부른다. 내 다른 또 하나의 아들처럼"승철아!"라고. 훨씬 편하고 막 대하기 좋다. 아내는 나 따라 하지 못해 꼭 "이서방"이라고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