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제8회
『시와산문』 신인문학상
현상공모 수상자 시인특집
도미노 게임
김창훈
1
뻣뻣한 손가락이 부리에 닿는다 라스베이거스가 무너진다 화려한 불빛을 따라 독수리가 잭팟을 꿈꾼다 그림자를 따라 신음이 신념으로 변한다 날아가는 생각은 바닥으로부터 생긴다 날개를 불신하는 발톱으로부터 다 잡은 먹이가 빠져나간다 독수리의 눈이 닫혔다 열린다 꼬리는 가장 나중에 흔들린다
2
도시는 정전을 예견한다 쓰러져 있든지 서 있든지 인공위성은 윗부분만 본다 건물을 무너뜨리는 포크레인이 재개발의 시작을 알린다 창틀에서 과거의 시간이 지워지고 동네 아이들의 낙서가 사라진다 숨바꼭질은 한물간 게임, 벽이 벽을 밀어낸다 벽에서 신음 소리가 난다 1+1이 0으로 수렴하는 함수, 골목이 전단지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난다 전선이 바닥에 떨어진다 감전의 오후, 번개가 친다
3
총구가 사라지자 총알은 실명한 눈동자처럼 멈춰있다 발이 부서진 벽돌에 걸려 중심을 잃는다 총알은 표적을 낮아지게 한다 바닥으로부터 헬리콥터 소리가 들린다 착륙을 허락하기 위해 풀들이 자리를 옮긴다 공간이 공간을 점령하고, 덮어쓰기를 시도하는 프로그램에서 현수막의 문자는 전체를 증명하지 못하고 새로운 과녁을 위해 부풀어 있다
4
계획대로 움직여야 한다 정해진 길에서 유턴을 하다가 압정을 밟는다 통증을 느끼고 피동형의 문장을 읽는다 먹이를 낚아채기 위해 날개가 낮아진다 벽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대각선의 방향은 왼쪽과 오른쪽보다 불확실하다 대형 크레인이 평면도를 따라 직육면체를 세운다 우리는 게임을 위해 잠깐 물러날 뿐
5
마지막을 채운 일기장이 찢어진다
게임 오버
자백
그날 혼자 집에 있었지
그림자가 알리바이를 증명할 수 있어
뉴스를 읽자 살찐 쥐가 보였고
나도 모르게
클랙슨 같은 목소리가 나왔어
정말 우발적이야
독설이 이름을 하나씩 삭히기 시작했어
무릎이 구부러지지 않는 다리
듣지 못하는 귀
꽉 다문 입을 원망했지
혀는 활자에 갇혀 화석이 되었어
물어뜯고 씹었을 뿐
포샤*의 문장으로 소리 질렀을 뿐
요란한 공포탄이 이름에 박힐 뿐
처음부터 명중 따윈 없었어
대신 절대 빗나가지 않아
흉기는 붉은 타액
나는 어느새 아무도 죽이지 못하는 살인자가 되었어
방 안에 그림자가 가득해
이제 그만 떠들어야 해
내 거울에도 침이 튀고 말았어
- 『포지션(POSITION)』, 2023. 겨울
* 「베니스의 상인」에서 샤일록에게 피를 흘려서는 안 된다고 선언
그물을 헤치고
하늘의 그물은 넓디넓게 펼쳐져 성긴 듯 보이지만, 그 무엇도 놓치는 일이 없다. 天網恢恢 疎而不失 『도덕경』에 나오는 문장이다. 인과응보, 사필귀정을 나타내는 좋은 말이지만 현실은 억울하다. 악인이 기뻐하고 의인은 절망한다.
감히 물어보고 싶어요. 당신도 이 같은 밤에는 우시는지.*
그물은 바다를 천천히 훑는다. 침식된 난파선과 산호를 지나, 뉴스에서 쏟아지는 온갖 기삿거리 같은 알록달록한 물고기들을 덮치고, 모래알 하나까지 더듬는다. 혼란한 심해에서 바다의 경이로움을 노래하는 것이 시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거대한 바다를 프레임 안에 담는 것과 비슷하다. 시인의 관점으로 담아내려 하기에, 시인의 시선에는 힘이 있다.
관찰하는 시선이 오만하다고 여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함께 헤엄을 치는 존재일 뿐이다. 그물을 두려워하며 헤엄을 치다가, 고개를 돌려 타인과 세상을 인식하는 존재가 시인이다. 시인은 초월적인 감수성으로 비아非我를 배척하는 박리된 존재가 아니다. 자신이 속한 곳에서 기꺼이 앙가주망을 실천하는 삶일 뿐이다.
시인의 시선에는 진정성이 있다. 시대적 문제의식을 조명하든, 개인적인 경험이나 교훈을 쓰든, 구조적인 언어로 미학을 드러내든 무관할 것이다. 나의 시는 꿈을 꾼다. 진정성과 진실함을 공유하며 세상과의 소통을 소망한다. 마침내 타인에게 시가 닻 내리기를 바라며 시를 쓴다. 나의 시가 진정성 어린 시선을 통해 부력에 힘껏 저항할 수 있기를 바란다.
중요한 것은 따뜻함이다. 시인의 시선에는 따뜻함이 있다. 무조건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시인의 분노와 원망은 승화되어야 한다. 냉소와 염세도 그러하다. 부재는 존재를 증명한다는 황경신 작가의 글처럼, 분노는 역설적으로 우리가 얼마나 그것들을 사랑하는지 반증한다. 타인과 세상에 대한 근본적인 애정을 인정하며 시에도 그러한 따뜻함을 담아본다.
그물을 던지는 이가 창조한 세상은 광활하다. 평생을 헤엄치는 물고기가 바다의 끝을 알지 못하고 해구의 바닥을 알지 못하듯이, 우리는 하늘의 그물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다만 주어진 삶 속에서 마치 조물주가 숨겨놓은 보물을 찾듯 범사에 감사하며, 윤슬과 같은 찰나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 시인으로서 드리는 기도이다.
기도를 드리는 입은 무결하지 않다. 매끈하던 표면이 금세 파도로 변덕을 부리듯, 시어를 담던 입은 급기야 독설을 내뱉고 언어적 살인을 저지르기도 한다. 가시는 비늘을 뚫고 튀어나와 언어나 문장에도 상흔을 남긴다. 감정이나 논리가 비약되고 결국 녹을 슬게 한다. 부식되어가는 입으로 고해성사와 같은 「자백」을 흘려보낸다.
해류에 힘없이 부유하는 해파리든 단단한 불가사리든 지나치지 않겠다. 난류와 같은 시선으로 그 모든 것들을 마주하는 시인이 되고 싶다. 무한히 함께 표류하는 동지로서, 그물을 헤치고, 당신에게 닿는 시를 쓰고 싶다.
* 나선미 「신께」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