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이 떨어진 자리에서 흐른 눈물 — 영화 《미션》
영화 《미션》(1986)에는 죄책감에 갇힌 한 사람이 용서를 통해 다시 살아나는 장면이 나온다. 로드리고 멘도사는 남아메리카의 과라니 원주민들을 붙잡아 노예로 팔던 용병이자 노예상이다. 힘과 칼을 의지하며 살아온 그에게 어느 날 견딜 수 없는 일이 찾아온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이 그의 동생 펠리페를 사랑한다고 고백한 것이다. 질투와 분노에 사로잡힌 멘도사는 결국 동생과 결투를 벌이고, 자기 손으로 동생을 죽인다. 그러나 분노가 지나간 자리에는 돌이킬 수 없는 죄책감만 남는다.
멘도사는 스스로를 세상과 단절시킨 채 살아간다. 몸은 살아 있지만, 그의 마음속에서 삶은 이미 끝나 버렸다. 어떤 고행으로도 자신의 죄를 씻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용서받을 가능성마저 거부한다.
그를 찾아온 사람이 가브리엘 신부이다. 가브리엘은 그의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에게 참회하며 살아갈 길이 있음을 일깨운다. 그 권면의 뜻을 풀어 말하면 이렇다. 죄를 선택했던 그에게는 이제 참회의 길을 선택할 책임과 가능성도 남아 있다는 것이다. 가브리엘은 절망 속에 머물러 있는 멘도사에게 다시 살아갈 용기를 요구한다.
멘도사는 자신의 무기와 갑옷을 그물에 넣고, 그것을 밧줄로 몸에 연결한 채 가브리엘 일행을 따라간다. 거센 물줄기가 쏟아지는 폭포 옆의 가파른 절벽을 오르면서도 그 짐을 놓지 않는다. 한때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 주었던 무기들이 이제는 한 걸음조차 내딛기 어렵게 만드는 무게가 되었다.
그가 끌고 올라가는 것은 쇠붙이만이 아니다. 그 짐에는 동생을 죽인 기억과 원주민들을 짓밟았던 과거가 함께 매달려 있는 듯하다. 그는 고통을 견디며 자신의 잘못을 마주하지만, 아무리 힘겹게 올라가도 스스로 자신을 용서할 수는 없다.
마침내 절벽 위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과라니 원주민들이 기다리고 있다. 바로 그에게 붙잡히고 노예로 팔려 갔던 사람들의 공동체이다. 한 원주민이 칼을 들고 그에게 다가온다. 그러나 그 칼은 멘도사를 해치는 대신, 그의 몸에 연결된 짐의 밧줄을 끊는다. 무기와 갑옷은 폭포 아래로 떨어져 사라진다.
멘도사는 울음을 터뜨린다. 자신이 상처 입혔던 사람들 앞에서, 그들이 베푸는 용서를 받아들이며 운다. 그를 짓누르던 짐을 끊어 준 손은 바로 그에게 고통받았던 사람의 손이었다. 원주민들이 그를 받아들이자, 그의 울음에는 차츰 웃음이 섞인다. 끝났다고 생각했던 삶에 다시 사람의 온기가 스며든다.
이 장면을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면, 참회와 은혜의 관계가 드러난다. 멘도사가 절벽을 오르는 모습에는 자신의 죄를 외면하지 않는 참회가 담겨 있다. 그리고 원주민이 밧줄을 끊어 주는 모습에는 그가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없는 용서가 담겨 있다. 그의 고행이 끝나는 순간은 자신이 충분히 고통받았다고 선언할 때가 아니라, 다른 이가 내민 용서의 손길을 받아들일 때 찾아온다.
이후 멘도사는 과라니 공동체 안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한때 자신이 사냥하던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며 그들을 섬기게 된다. 용서는 그를 과거의 책임에서 도망치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삶을 살아갈 자리로 이끈다.
폭포 아래로 떨어진 것은 그의 무기였지만,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다시 살아갈 가능성이었다. 멘도사의 눈물은 죄를 후회하는 눈물이면서, 자신에게도 새로운 삶이 허락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눈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