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3장 20 - 30절
20.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
21.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22.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그가 바알세불이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23. 예수께서 그들을 불러다가 비유로 말씀하시되 사탄이 어찌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24. 또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
25.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고
26. 만일 사탄이 자기를 거슬러 일어나 분쟁하면 설 수 없고 망하느니라
27.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강탈하지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29.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
30.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 함이러라
이솝 우화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새끼 고양이 두 마리가 함께 길을 가다가 고기 덩어리를 발견했습니다. 그러자 한 마리가 “이건 내꺼야”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한 마리도 “아냐, 내가 먼저 봤어. 그러니까 내꺼야.” 이러면서 고양이 두 마리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옥신각신 싸웠습니다. 이렇게 두 마리의 고양이가 으르렁 거리고 있을 때 마침 여우가 지나가다 이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여우는 잘 됐다고 생각을 하고는 아무 것도 모르는 척 하며 다가가서는 “너희들 왜 싸우니?” 물었습니다. 고양이들은 서로 다투며 “여우 아저씨, 이 고긴 내가 먼저 발견했는데 이 고기를 가로채려고 해요.” 서로 자신의 것이라고 막무가내로 주장을 했던 것입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여우는 “알았다. 서로 싸울 것 없다. 내가 공정하게 나눠주지.” 이러면서 고기를 덥석 잡았습니다. 그리고서는 고기의 반을 뚝딱 자르더니 “어허, 오른 쪽이 더 크구만.” 하면서 오른 쪽 고기를 조금 떼어 먹었습니다. 이번에는 “어허, 왼쪽이 더 커져 버렸구만.” 이러면서 왼쪽 고기를 또 조금 떼어 먹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몇 번을 떼어 먹고 나니 고기는 아주 작은 토막만 남게 되었는데 그마저도 여우가 먹어 치웠고 두 고양이는 그냥 지켜만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다툼이 있는 곳에는 바로 이런 모습들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다투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우리에게 잘 교훈해 주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시기하고 질투했던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어떤 소문을 만들어서 퍼트렸냐면 “예수가 보여주는 능력은 바알세블, 귀신의 왕을 힘입어서 보여 주는 것이다!” 이렇게 주장을 했던 것입니다. 이 소문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어떤 논리로 설명해 주셨냐면 만약 소문대로 예수님이 귀신을 힘입어서 귀신을 물리치는 것이라면 어떻게 귀신의 나라가 망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리석은 동물들도 그렇게 하지 않는 것처럼 귀신의 힘을 힘입어서 귀신을 물리친다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덧붙여 하신 말씀이 27절에 보면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강탈하지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지금 사람들을 억누르고 있는 귀신보다 강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고 예수님의 능력으로 귀신을 결박하셨다는 것입니다.
요즘 아무 말 대잔치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예수님을 모함하기 위해서 논리적으로 전혀 설득력이 없는 아무 말이나 내뱉으면서 예수님을 괴롭혔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공격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얼마나 지혜롭게 대처하셨는지에 대해서 잘 보여 주고 있는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도 아무 말 대잔치나 하고 있는 반기독교 세력들에게 이런 지혜를 보여 주면서 살아갈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공격을 받는 것도 힘겨운 일이었지만 21절에 보면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는 말씀을 통해 예수님과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을 통해 더 험한 공격을 받으셨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적어도 가족이고 친구이고 친척이면 예수님의 편에 서서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이해해 줘야 했을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친족들이 이런 반응을 보인 것에 대해서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해석은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의 모습이 매우 평범하셨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범함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평범한 삶을 사셨던 예수님께서 마치 메시아인 것처럼 사람들에게 비춰졌기 때문에 친족들도 예수님을 미쳤다고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살아오면서 간혹 병자들을 고치고, 기도의 특별한 능력을 보여 주며 살았다면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았을 것인데 전에는 그런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미친 사람처럼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사실 시험과 유혹은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오게 되어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들일수록 더 많은 것을 알고 있고, 허점이나 약점도 간파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을 더 쉽게 흔들 수가 있습니다. 게다가 가까운 사람은 더 자주 만나기 때문에 시험에 빠뜨릴 기회가 더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친족들로부터 오는 시험이나 비난에 대해서 잘 훈련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시험을 잘 견디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뒤흔들 때보다 가까운 사람들이 우리를 뒤흔들 때 더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예수님도 당하셨던 것이고 또 이겨내셨던 것이기 때문에 이런 시험을 지혜롭게 잘 극복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누구든 가까운 사람들에게 더 인정받고 더 칭찬 받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그런 우리들의 속성을 악한 영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시험으로 우리의 믿음을 무너뜨리고 우리의 사랑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가정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항상 시험은 가까웠던 사람들을 통해 나타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참고 인내할 수 있는 능력도 키워야 하지만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시험거리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귀신을 내어 쫓을 수 있는 강하신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의 친구가 되어 주실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매어 있고 억눌려 있는 고통의 삶을 살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자유함과 평안함을 가지고 강하고 담대하게 살아가면 됩니다. 또 예수님 때문에 미쳐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서 비웃는 가까운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것 때문에 시험 당하지 마시고 예수님처럼 지혜롭게 대처하면서 우리의 지혜로움 때문에 가까이에 있던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되는 영광스러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귀한 성도님들이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