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
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문학예술』 11호, 1956.2)
[작품해설]
신경림의 시작(詩作)은 「갈대」로부터 시작된다. 신경림의 시작 생활은 가난하고 억압받는 농민의 편에 서서 그들의 아픔을 바람에 서걱이는 ‘갈대’와 같이 설핏한 민요조 가락에 실어 펼쳐 보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시는 지식인이나 도시인의 시각에 의해 굴절된 농촌이 아니라, 자신을 농촌⸱농민으로 제한시킴으로써 생생히살아 숨쉬는 농민문학의 정수를 보여 준다.
이 시는 인간 존재의 비극적인 생명 인식을 ‘갈대’의 울음을 통해 형상화한 작품으로 그의 초기 대표작이다. 소위 민중시 계열로 변모한 1970년대 이전의 그의 초기 시 세계는 서정성을 바탕으로 인간 존재의 본질 탐구에 주력하는 특징을 갖는다. 이러한 시 세계의 변화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인간 존재의 비극적 인식에서 출발해던 ‘갈대’이 막연한 울음이, 후일 농촌의 암담한 현실에서 우러난 농민의 아픔이라는 구체적 울음으로 확대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시는 ‘갈대의 내면세계’ ⤑ ‘갈대의 외면 묘사’ ⤑ ‘갈대가 흔들리는 까닭’ ⤑ ‘갈대가 깨달은 삶의 의미’의 과정에 따라 시상이 전개되고 있다. 시적 화자의 대리자로 등장한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바람도 달빛도 아닌’,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모그고 있다가, 어느 날 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따라서 갈대의 ‘흔들림’은 외부적 원인이 아닌 내재적 원인으로 인한 것이며, 갈대의 ‘울음’은 사회적 갈등의 소산이 아니라 개인의 존재론적 문제임을 알 수 있게 인식하게 됨으로써 자신의 존재에 대한 비극적 깨달음을 강조한다.
이렇게 그의 울음은 바깥을 향한, 즉 외부 세계를 겨냥한 울음이 아니라, 숙명적 존재임을 인식하고 얻은 내적인 울음이요, 정적인 울음이다.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는 화자가 특정한 사람을 지칭한다면 이 시는 단순히 그의 슬픈 사연을 담은 작품이다. 그러나 불특정한 인간 전부를 지칭하고 있다면, 이 시는 인간의 삶에 대한 비극적 인식을 노래한 시가 된다. 이렇게 추상적인 존재 인식의 틀 속에서 오랫동안 침묵하던 시인은, 마침내 1960년대 중반부터 민중의 현실과 공감대를 이루는 작품세계를 통해, 외부 세계를 향한 우렁찬 울음을 터뜨리게 된다.
[작가소개]
신경림(申庚林)
1935년 충청북도 중원 출생
동국대학교 영문과 졸업
1956년 『문학예술』에 시 「갈대」, 「탑」 등이 추천되어 등단
1974년 제1회 만해문학상 수상
1975년 고은, 백낙청, 박태순, 이문구, 염무웅 등과 함께 자유실천문인현의회 창립
1981년 제8회 한국문학작가상 수상
1983년 민요연구회 창립
1987년 민족문학작가회의 민족문학연구소 소장
1988년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창립, 사무총장 역임
1990년 제2회 이산문학상 수상
1991년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 및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공동 의장
시집 : 『농무』(1973), 『새재』(1979), 『새벽을 기다리며』(1985), 『달넘세』(1985), 『남한강』(1987), 『씻김굿』(1987), 『가난한 사랑 노래』(1988), 『우리들의 북』(1988), 『저푸른 자유의 하늘』(1989), 『길』(1990), 『쓰러진 자의 꿈』(1993), 『갈대』(1996),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1998), 『목계장터』(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