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하느님이 원하시는 일
축제는 사람의 삶이 흥겨워서 즐기자고 하는 행동입니다. 단순히 내가 즐기기 위한 것만은 아니겠지만, 나의 삶에서 하느님을 찬양하고 하느님의 뜻을 받들겠다는 생각이 있다면 그 축제는 나에게도 또 하느님에게도 즐겁고 기쁜 일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려면 나는 나의 삶에서 어떠한 조건을 채워야 하겠습니까?
축제인 것은 분명한데, 아모스 예언자는 북이스라엘의 백성들이 자기들의 삶에서 벌이던 축제를 하느님께서는 원하시지 않는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백성들의 삶에 어떤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을까요? 질문하고서 답을 찾는다면 몇 가지의 모습을 우리는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하는 행동을 나는 축제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거나 하느님을 찬미하는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첫째로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지내는 축제가 이러하다면 내가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겠습니까?
우리가 오늘 아모스 예언서를 통해서 들은 말씀에는 정의가 우리의 삶에 강물처럼 흐르지 않았다는 판단이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정의를 바라시는데 우리는 정의와 먼 행동을 했다는 선언이었습니다. 하느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화가 나는 일이었을까요? 하느님이 보시기에 사람이 잘못된 행동을 하면서도 얼마나 올바르게 산다고 생각했다는 것이겠습니까?
오늘 마태오 복음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마귀에 들렸던 두 사람을 만났고 그 두 사람에게서 마귀를 쫓아낸 기적을 전한 내용입니다. 사람들에게서 쫓겨나게 된 마귀는 돼지에게 들여보내달라고 예수님께 허락을 얻었고, 돼지에게로 들어간 마귀들은 돼지들을 물속에 빠져 죽게 했습니다. 사람들을 생각해서 먼저 하신 행동이었지만 사람들에게 손해가 되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판단이 달라집니다.
나에게는 구경꾼의 일이었지만 경제적인 손해를 입으면서 예수님은 머물 장소가 줄어듭니다. 사람이 자기만의 현실에서 벗어나 하느님을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일은 아무래도 어려운 일입니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우리가 애써 위로해도, 우리의 삶에 찾아오는 그 손해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잘 생각하는 하루로 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