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무뚝뚝한 남자는 왜 무뚝뚝한가?
1.
무뚝뚝성의 기원
보통, 아버지가 무뚝뚝하면 아들 역시 무뚝뚝해질 가능성이 큰데,
이게 왜 그러냐면,
무뚝뚝한 부모를 둔 어린이들은 대개,
그들의 어린 시절을 감정표현의 부재와 억제 속에서 보내기 때문이죠.
고기도 먹어 본 애들이 맛깔나게 먹는다고,
감정표현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많이 해 보지 않으면, 어른이 되서도 잘 못 하게 되요.
가족들 간에 별다른 대화와 애정표현이 오가지 않았던 어린시절을 보냈다면,
아이는 자연스레 무뚝뚝한 어른으로 성장합니다.
감정표현이란 스킬을 당췌 연습하질 못하니,
시간이 흘러도 전혀 레벨이 오르질 못하는 겁니다.
이런 부자간의 무뚝뚝함 대물림 현상이
동아시아의 사상적 기원
(즉, 동양유학사상, 남자는 이래야 한다, 여자는 이래야 한다 etc...)
에서 출발했다라면,
어느정도 세계화가 이뤄져있고, 서양문물에 익숙한 우리세대 정도가 되면,
남자는 뭐해야 하고 이런거 개뿔, 내 감정에 솔직하며 사는 게 좋다!!
라며, 구시대의 유물을 뻥하고 걷어찰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한들, 막상
내 감정표현 레벨이 "쪼렙"이란 겁니다.
당췌 안 해 봐서 하고 싶어도 못 하게 되는 상황에 이르게 돼 버린 거죠.
2.
오글거린다.
감정표현에 익숙하지도 않고,
그들의 내면 깊은 곳에, 남자가 감정표현을 하면 그건 남자답지 못 한 것이다
라는 옛날옛적 동양사상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있기에,
무뚝뚝한 남자들은 자주 시공이 오그라드는 느낌을 받습니다.
무뚝뚝남들은 자연스런 미소조차 내 맘대로 할 수가 없어요.
지어본 적이 거의 없어서 내 얼굴새끼가 이거 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도 못 잡는 겁니다.
찍사는 분명 나에게 자연스런 미소를 요구했는데,
나중에 사진을 보면 내 얼굴은 찌그러져 있고, 그것도 찌그러진 것도 존나 부자연스럽게 찌그러져 있고 뭐 그런 겁니다.
익숙하지 않으니까요.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무뚝뚝남의 세계에선, 감정이란 놈이 굉장히 벗기 힘든 옷을 입고 있습니다.
단추가 한 육천개쯤 달린 졸라 복잡하고 두꺼운 옷을 입고 있어서 당췌 벗을 수가 없는 거에요.
그래서 내 감정이 전혀 밖으로 드러나질 못 합니다.
근데 가끔가다 나시티에 반바지만 입고 있다가 그마저도 훌러덩훌러덩 벗어버리는 사람을 볼 때가 있거든요?
아니!!! 쌩감정이 저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나다니!!!!!!!!!!!!!!!
마치, 현대인이 옷을 입지 않은채 길거리에 나가면 부끄럽듯이,
무뚝뚝남들은 감정이 옷을 입지 않은 상태 그 자체를 못 견뎌 하는 겁니다.
자기네 세계에선 감정을 고대로 드러내는 게 부끄러운 일이라,
혹은 어렸을 때부터 노상 감정에 옷을 입힌 채로 다녔기에, 그게 당연한 건데,
감정이 올누드로 다닌다? 그거 완전
시공이 오그라드는 겁니다.
쌩감정의 어택땅에 무뚝뚝남들은 곧잘 이공간으로 빨려들어가고 만다......
3.
오빠, 예전엔 안 그랬잖아.
무뚝뚝남이 여인을 만나게 되면, 언젠가 한번쯤은 맞게 되는 강력한 한 방
'오빠, 예전엔 안 그랬잖아.'
오빠 요즘 왜 그래? 말도 잘 안 하고, 표현도 아예 않고..
내가 원래 무뚝뚝해서 그래, 감정표현 같은 거 잘 못 하잖아.
'오빠, 예전엔 안 그랬잖아.'
...................
맞습니다. 예전엔 안 그랬죠.
그녀한테 대쉬할 때나 연애초반 이럴 땐, 내가 이 새퀴 이거 내가 맞나 싶을 정도로 감정표현의 활화산이었으니까요.
무뚝뚝남들도 이 때만큼은 단추 6000개짜리 옷을 벗어제끼게 되는데,
문제는 이게 자연스러운 탈피가 아닌 "강제탈의"란 점입니다.
짝짓기 본능(페닐에틸아민, 세로토닌 등의 신경전달물질 등)이 무뚝뚝남들의 두꺼운 옷을 강제로 막 벗긴단 말입니다.
그냥 미치는 거죠.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은 기분.
'사랑해, 보고싶어 미치겠어, 내 사랑에 유통기한이 있다면 이만년으로 할래'
같은 시덥잖은 소리나 늘어놓으면서도 전혀 이공간으로 빨려들어가지 않아!?!??????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추수철인데, 굶주린 메뚜기떼가 확하니 논밭을 휩쓸고 간 겁니다.
그럼 대지가 헐벗겠죠.
이런 것처럼, 사랑철이 오면, 굶주린 사랑호르몬/신경전달물질 등이
내 내부를 확하니 휘몰아치고 가게 됩니다. 그럼, 내 감정을 굳게 감싸고 있던 갑옷이 홀랑 없어져버리게 되요.
그래서, 그 때만큼은, 무뚝뚝남들도 세치혀에 한껏 버터칠하고 여인과 사랑을 속삭일 수 있는 겁니다.
허나, 메뚜기떼가 사라지면 대지는 다시 풀로 뒤덮이듯이,
호르몬 등의 본능을 격발시키는 매체가 서서히 잦아들게되면,
내 감정은 다시 옷을 입게 되고 단추도 어느새 6000개씩 달리게 되요.
원래대로 무뚝뚝남으로 돌아가는 거죠.
글쎄, 이걸 인정하고 연애를 하면/결혼을 하면 세상이 훨씬 더 편해집니다.
'그것도 다 한 때다'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이라는 메뚜기떼가 몰고오는 열정적 사랑은 다 철이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기간이 그-렇게 오래가진 않아요.
대신 사랑엔 passion 뿐만이 아닌 동반자적(정신적) 사랑도 있기에,
열정이 사그라들어도, 둘 간의 사랑은 지속되죠.
여인들의 무뚝뚝남들은 변한 게 아닙니다. 그저,
원래대로 돌아온 거죠.
평생을 무뚝뚝남으로 살다가, 메뚜기떼로 인해 한시적으로나마 쌩감정이 발산되었던 겁니다.
그러다가 메뚜기떼가 지나가니 다시금 자연스레 무뚝뚝남으로 회귀하는 거죠.
어찌됐건 열정이 식었다는 거 아니에요? 그럼 더 이상 저를 사랑하지 않는단 말 아닌가요???!?!??!?
라 누군가 되물으신다면,
기억을 조금만 앞으로 리와인드.
'메뚜기떼도 다 철이다.' 이걸 인정하고 가면 세상이 편해져요.
인정하지 않으면? 사랑이 힘들고, 연애가 힘들고, 결혼이 힘들어지죠.
passion은 불길을 타오르게 만드는 번개탄입니다.
동반자적(정신적) 사랑은 불길을 지속시키는 숯이죠.
번개탄 다 써버렸다고, 사랑이 아닌가? 그렇게 타오른 불이 은은하게 끝까지 지속되는 건 숯의 공입니다.
지금 님의 무뚝뚝남은 변했다기보단, 사랑의 리듬 상 자연스레
숯사랑의 단계로 접어든 것일 뿐,
님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사실 -
4.
CHANGE
이렇게 평생 무뚝뚝남으로 살아야 한다면,
내 아들도 부전자전 무뚝뚝남이 될 가능성이 크고,
내 여친/부인님께선, 아우!! 그래서 이 새키야 뭐 어쩌라고!! 무뚝뚝하니까 그냥 받아들이란 말이냐!! 라며
화를 내실 거에요.
이건 별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노력하는 수 밖엔.'
물론, 시공이 오그라들어 이공간에 빨려들어갔다나오는 진땀나는 경험을 더 자주/많이 겪게 되겠지요.
근데 그걸 참고, 대화를 하고, 감정표현을 하게 되면,
내 레벨이 점점 쌓이면서, 결국 이공간의 문은 닫히게 됩니다.
여친에게 감정표현을 더 자주 하게 되고, 그 여친이 내 부인이 되고,
부인님이 아들을 낳게 되면, 내 아들과도 자연스런 감정교류를 하게 되고,
가가호호 대화와 애정표현이 끊이지 않는 가정에서 자란 내 아들은 지금의 나처럼
시도때도없이 이공간에 빨려들어가는 일만큼은 절대 없겠죠.
현재의 나처럼 부모님께 사랑한단 말 한마디 못 하는 일 없이,
종종 사랑이 담긴 애정표현으로 날 기쁘게 해 줄것임이 분명할 거에요.
이것도 영어처럼 조기교육이 잘 됐으면, 지금쯤 감정표현이 네이티브 프리젠테이셔너겠지만,
다 늦은 나이에 만학도로 시작하려니 매우 어렵습니다.
걍 닥치고 이공간이나 들락날락거리며 단추 하나씩 풀어나가야겠어요. ㅋㅋ
첫댓글 역시 재밌네요ㅋㅋ좋은 글 감사합니다~
전 중증 환자인듯...소심하기까지해서..ㅠㅠ
ㅋㅋㅋㅋ 재밌네요 잘 읽었습니다
여자들한테 보여주고 싶네요 ㅠㅠ
1,2,4번은 맞는데 3번은 아직 사례가 없네요.......ㅠㅠㅠ
공감도 가고, 재밌네요^^
참 공감되는 글입니다. 얼마전 웨딩촬영할때가 생각나네요. 앞으로 노력해야지요ㅋㅋ
남자는.. 특히 나이들수록 감성이 매마름을 느낍니다.. 위글대로 '예전엔 안 그랬는데..'
이성과 감성의 적절한 조화가 나를 위해서도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도 좋을 것 같아요
더 나이가 들면 남성호르몬의 감소로 감성적으로 변한다는데 요건 아직 겪어보지 못해서 모르겠네요
무명자님 좋을 글 감사합니다! 팬이예요^^
좋은글입니다 추천합니다
좋은글 잘봤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다정다감한 편이신대 저도 다정다가하다는말 많이 듣네요~ㅎ
이글은 남자보단 여자들이 봐야할듯...
우리 부모님은 두분다 무뚝뚝하신대다 어린 시절 친척집에 맡겨져서 자란 저는... ㅠㅠ 사람들 많이 만나는거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더 좋을때가 많네요 ㅡㅡ;; 근데 사람인지라 외로움은 당연 탈 수밖에 없고... 그래서 여친 사귈 때는 애교 많은 여자가 좋더라고요... 제 무뚝뚝한 부분을 커버할 수 있는...
공감이 많이 가네요~ 재밌게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