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제사를 <茶禮:다례> <차례>라고 말하는 것은 틀린 것이다. <절사>라고 말해야 한다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의 문집에 보면 설날 아침에 조부모?부모에게 올리는 세배(歲拜)가 있을 뿐, 제사는 지내지 않았다고 한다. 설날 제사를 지내게 된 유래는 1895년 을미년 음력 8월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유길준 무리가 병신년부터는 음력을 폐지한다고 했다. 양력을 사용한다고 건양(建陽)이라고 하고 1895년 음력 11월 17일이 양력 1월 1일이 된다고 알린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하는데
이때 “음력을 폐지해서는 안 된다. 우리집 만이라도 음력을 굳게 지키겠습니다”라는 다짐제사(誓祭)를 설날에 올렸던 집이 나오게 되었다. 경북 성주군 벽진면 징기마을 수촌리에 사는 여진규(呂軫奎)였다. “내가 나라를 지킬 재주가 없으나, 우리마을은 내가 지키겠다”고 하고는 자기 호를 <守村>이라고 했다. 세배를 올리고 난 뒤에 다짐제사를 올리고는 이름을 원조절사(元朝節祀)라고 지었다. 세배후 사대합설(四代合設) 무축단잔(無祝單盞)하라고 시켰다. 수촌 문인인 노석 여구연(老石呂九淵)의 문집에<로석집二>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다.
1 ◑從陽曆謂之曰建陽, 是可笑也(건양이라는 말은 우섭다) 2 ◑丙申倭曆亂曰捨陰曆而取陽歷之亂(왜달력란) 3 ◑丙申元朝歲拜禮畢後也, 行誓祭家始出焉(다짐제사집이 나왔다)
3번 글에서 <悲哀王三十三年 乃丙申也. 元朝行誓祭家始出焉. 所出處乃星州樹村里也. 是誓祭之儀則歲拜禮畢後, 奉四代合設而行祭也. 始終男女共拜焉. 祝無而矢之曰吾家固守陰曆. 是言, 乃其矢言也. 我師樹村翁, 欲避倭禍而名之曰元朝節祀
조선국 왕이 중국 사신에게 음식 대접하는 것을 두고 일컫는 궁중용어가 다례(茶禮)였다. 다례를 행하는 관청이 태평관(太平館)이었다. 일본사람들이 <茶>라는 글자를 <차 : ちやレイ >로 읽는다. 조선음은 da였다.
◑太宗實錄. 太宗元年辛巳三月癸卯條有曰 上如太平館, 與使臣, 行茶禮.
<임금이 태평관으로 가서 중국 사신에게 다례를 행했다>로 된다. <如>는 왕이갈如자다.
중국 사람들이 평소에 잎을 다려서 마시기에 중국사신을 대접하는 음식상 위에는 반드시 잎물(茶水)이 놓여지게 되었다. 조선왕조 궁중에서 중원사신을 대접하는 음식상 위에 온갖 먹거리가 올라가게 된다. 그들 먹거리 가운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잎을 끓인 물이다. 이로 말미암아 조선국 왕이 중국 사신을 대접하는 것을 두고 다례(茶禮)라고 일컫게 된 것이다. 그 뒤 만국사신이 오게 되자 <다례> <茶禮床>이라는 말이 없어졌다. 나라를 잃게 되자 다례(茶禮)라는 궁중용어도 없어졌다.
잎을 끓여마시는 풀을 <茶>라고 하고, 그 글자 소리를 da라고 했다. 경북 고령군에 다산면(茶山面)이 있다. 달성군 지묘동에 다천정(茶川亭)이라는 경주최씨 재실이 있다. 정종시대 정약용 호가 <茶山>이다. 차산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없다.
광복후 친일 이희승이 일본말백과사전 <廣辭苑>을 베끼기하여 <국어사전>이라고 했다. <茶禮:다례>를<차례>로 적었다. 여기서 일본소리 <ちやレイ 챠레이. 차>가 시작된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말이 우리나라의 말을 엉망으로 망쳤다.
명절제사를 줄인 <절사>라는 말은 《고려사》에도 적혀 내려오고 있으며 조선왕조실록에도 많이 등장합니다. 절기나 명절을 따라 지내는 제사. 추석의 절사를 모시다.
"自今秋夕節祀, 令內官爲之宜當... (이제 추석절사(秋夕節祀)부터는 내관이 행하게 하는 것이 마땅하고...)《숙종실록 34년(1708) 8월 13일》"
<茶禮>는 아무리 소리내어도 <다례>일 뿐, ‘차례’가 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추석제사>를 줄인 <추석제>라고는 했으나 <추석차례>라는 말은 없습니다.
咸興則歲凡三十二, 別大祭曰十月、四月, 正朝別小祭, 二月曰春節祭, 六月曰半行祭, 七月曰秋節祭, 八月曰山祭、秋夕祭, 十一月曰冬節祭、冬至茶禮, 而朔望祭, 正朝、秋夕, 惟不疊行。 永興則歲凡三十一, 別大祭、別小祭、朔望祭, 如咸興禮, 正朝爲小祭, 春節不祭, 秋夕用望祭儀。 《正祖實錄》 19年(1795) 4月 28日 戊申
함흥에서는 해마다 모두 32차례의 제사를 올리는데, 별대제(別大祭)는 10월과 4월에 올리고, 정조(正朝)에는 별소제(別小祭)를 올리고, 2월은 춘절제(春節祭), 6월은 반행제(半行祭), 7월은 추절제(秋節祭), 8월은 산제(山祭)와 추석제(秋夕祭), 11월은 동절제(冬節祭)와 동지(冬至) 다례(茶禮)를 올리고, 삭제(朔祭)와 망제(望祭)는 정조와 추석 때만은 중복해서 행하지 않는다.
중국 사신이 조선에 오면 그들을 대접하는 례로 나온 것이 <다례>였고 <다례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제사의 절차 중에 <헌다(獻茶)>가 있을 뿐입니다.
일본은 <茶禮 다례>를 <ちやレイ 챠레이>로 소리내어 읽었습니다.
<차례>라는 말이 교과서에 실리기는 1970년 지금의 초등학교 1학년 2학기 <국어>의 첫단원 <추석>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추석>
추석이 가까워졌습니다. 들에는 벼가 익어갑니다. 감도 익어갑니다......때때옷을 입었습니다. 아침에 <차례>를 지냈습니다.
나이가 40대 중반에 있는 사람들은 이것을 기억하리라 믿습니다.
학교에서는 <차례>라는 말을 가르쳤지만 집에서는 어른들이 <절사>라고 했습니다.
자식들이 학교에서 배워와서 <차례>라고 하면, 어른들은 어디서 희한한 말을 주워왔느냐고 호통을 치면서 꾸짖었습니다. 명절제사를 줄인 <절사>라는 말은 《고려사》에도 적혀 내려오는 배달겨레의 뿌리깊은 말입니다.
다음부터는 “정월초하루 절사” “설 절사” “추석절사”라고 합시다 그리고 설에는 제사 꼭 안지내도 됩니다. 부모님께 세배하고 가족들과 모여서 맛있는 음식 만들어서 나누어 먹고 윷놀이, 고스톱 등 재밋는 놀이하면서 즐겁게 보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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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금강송 원문보기 글쓴이: 금강송
첫댓글 그렇군요, 저는 무조건 상차리고 절하는 것이 습관이되서요, 뜻도 모르고 설날을 보냈습니다. 정월초하루절사 설절사 추석절사 - 잊지 않고 쓰겠습니다. 모르고 지낸 분들이 더러 많이 계실 듯 (^-^*)
많이 배웠습니다..
명절만 기다리던 소시적에 할머니께서 "절사"라는 말씀을 하신 기억이 납니다.제가 유식해져 가는 좋은 느낌ㅎㅎㅎ.... 감사합니다 소장님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단 단위 절사! ㅎㅎㅎ 다른 말 절사하고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십시오~~~
오십년 입에 배인 차례를 절사로 바꾸는게 쉽겠수 아무려면 어때 차례든 절사든 정성껏 하여튼 금강송님의 글쓰신 뜻은 높이 삽니다 올해도 건강하시고 원하시는바 성취하시길....구리 배상
제사 꼭 안지내도 되고 고시톱하고 윷놀이하고 맛난거 묵고 하자는 얘기가 가심팍에 젤로 팍 와 닿네염~~
ㅎㅎㅎ 역쉬나 그대다운 ㅋㅋ
제눈에도 그 구절만이.... 보이네염...
좋은글 고맙군요. 몇년전 명절제사라고 말했을때 "제사가 아나고 차례입니다" 하고 반문하는 버릇없는 녀석을 혼내지 못한것이 후회되었는데 ~~~, 오자가 있는 것 같군요. "달성군 지묘동 -> 동구 지묘동"
몰긴 몰라도 오자는 아니듯 한디 ...그 옛날엔 그 표기가...
동구 지묘동 맞습니다. 관심가져 주심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