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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과 지방 특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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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지명이 우리의 생활과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 속에서 늘 지명을 이야기하고, 지명에 해당하는 장소를 찾아다닌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우리에게 사는 곳을 물었을 때 우리는 지명으로 대답한다. 친구랑 여행 장소를 정하거나 시내로 쇼핑을 갈 때도 지명을 말한다. 또한 우리의 이름 속에도 지명이 숨겨져 있다. 우리의 성명은 성씨(姓氏)와 이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모든 성씨에는 본관(本貫)이 있다. 본관은 조상의 고향이거나 경제적 근거지였던 곳인 경우가 많다. 즉, 어떤 사람이 전주(全州) ?씨라 한다면, 이는 ?씨 조상의 고향 혹은 경제적 근거지가 전주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모든 한국 사람의 성씨에는 지명이 숨어 있는 것이다. 우리 나라 지명의 특징 우리 나라의 지명은 역사적으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변천해 왔다. 그러나 자세히 관찰해 보면 우리 나라 지명만이 갖는 특징이 있는데, 이는 우리 지명의 거의 대부분이 지형, 기후, 정치, 군사 등에서 유래되었다는 점이다. 우리 나라의 지명에는 山(산), 谷(곡), 峴(현), 川(천), 新(신), 大(대), 松(송) 등의 한자가 들어 있는 것이 많다. 이 중 山, 谷, 峴, 川 등은 산악 지형이 대부분인 한반도의 산과 골짜기를 넘는 고개, 그 사이를 굽이치는 하천을 반영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新, 大 등은 인구 증가와 개최ㆍ개간에 따라 형성된 새로운 마을과 관련되는 지명이며, 松은 어딜가나 흔한 나무가 소나무였으므로 이를 반영한 것이다. 그 다음으로 上(상)ㆍ內(내)ㆍ南(남)ㆍ東(동)ㆍ下(하) 등의 한자와 石(석)ㆍ岩(암)ㆍ水(수)ㆍ浦(포)ㆍ井(정)ㆍ村(촌)ㆍ長(장)ㆍ龍(용)ㆍ月(월) 등의 한자가 지명에 많이 들어 있다. 이러한 한자들은 마을의 위치나 방위를 뜻하는 것으로서, 우리 민족이 전통적으로 남동 방향[南, 東]을 선호했다는 증거이다. 또한 큰 바위가 이정표 역할[石, 岩]을 했으며, 물[水, 井]을 중심으로 생활했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다. 한편 평지나 큰 들이 있는 곳에는 坪(평)ㆍ平(평)ㆍ野(야)ㆍ原(원) 등의 한자가 많이 쓰였는데, 가평, 청평, 양평, 부평, 수원, 철원, 남원 등이 그 예이다. 참고로 다른 국가의 지명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 미국을 사례로 알아보자. 미국의 지명에는 미국의 역사와 지리적 배경이 반영되어 있다. 미국의 촌락에서 New와 Old 중 어느 단어가 붙은 지명이 더 많을까? 당연히 New가 붙은 지명이 많다. New Hampshire, New York, New Jersey, New Mexico, New England 등이 그 예인데, 이는 미국의 개척 역사가 짧고, 이주민 집단에 의해 건설되었기 때문이다. 또 미국의 서부 개척을 반영하여 East가 붙은 지명보다는 West가 붙은 지명이 더 흔하다. 지명의 변천 일단 정해진 지명은 시간의 경과에 따라 변형ㆍ변질되거나 소멸되기도 하는데 때로는 이렇게 소멸되었던 것이 불활하기도 한다. 삼국 시대에는 순수 한글 지명이 많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경덕왕 때 고유의 지명을 2음절의 중국식 지명으로 바꾸면서 우리말의 의미가 퇴색되어 갔다. 이와 같은 지명의 개명은 고려 초기와 조선 초기에도 있었다. 한자로 된 지명은 보통 우리말 지명의 차음(借音)과 차훈(借訓)을 따랐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원래의 뜻을 유추할 수 있다. 우리말 지명인 양지말ㆍ음지말을 한자 지명으로 바꾸면 양촌리(陽村里)ㆍ음촌리(陰村里)가 된다. 다음 한자로 된 지명의 원리 뜻을 생각해 보자. 율도(栗島) → ( ), 마포(麻浦) → ( ) 유곡(酉谷) → ( ), 주교(舟橋) → ( ) 그런데 우리말 지명을 한자어로 바꿀 때 잘못 바꾸면 그 의미가 매우 동떨어지게 된다. 특히 일제 강점기 때는 우리말 지명의 뜻을 제대로 몰랐던 일제에 의해 잘못 바뀐 지명이 많다. 그 사례를 들어 보면, 경기도 안산시 고잔동은 원리 우리말로 '곶 안'이라는 뜻이었다. 우리말 의미를 제대로 살렸다면 한자 지명이 곶내(串內)나 갑내(岬內)가 되었어야 하나, 일제의 의해 고잔(古棧)으로 바뀌었다. 한편 서울의 삼각지도 이와 같은 사례에 해당한다. 이 곳의 원래 지명은 새벌(억새 벌판)인데, 경기 방언으로 새뿔이라고 불리웠다. 이를 새(세)를 삼(三)으로, 뿔(벌)을 각(角)으로 해석하여 삼각지로 바꾼 것이다. 이렇게 잘못 바뀐 지명은 전국에 분포되어 있다. 곶 안 - 곶(바다로 돌출된 육지 부분)의 안쪽 → 고잔(古棧) 새뿔 - 새(억새풀)의 벌판 → 삼각지(三角地) 현재 우리가 이 '고잔(古棧)'과 '삼가지(三角地)'에서 원래의 뜻인 '곶 안'과 '억새 벌판'이란 의미를 찾아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한편 분단 이후 북한 지역의 지명에도 변화가 있었다. 김정숙군ㆍ김형진군ㆍ김형권군ㆍ김책시ㆍ새별군과 같은 족벌 지명과, 영웅리ㆍ해방동ㆍ전우리ㆍ철벽리ㆍ항미동ㆍ선봉군과 같은 호전적 지명, 낙원군ㆍ은덕군ㆍ동포동ㆍ환영동ㆍ꽃핀동과 같은 선전 지명이 많이 생겨났다. 지명의 유래 우리는 지명을 통해 판교(板橋)는 다리가 있었던 곳이고, 충무(忠武)는 이순신과 관련이 깊은 곳이며, 잠실(蠶室)은 누에를 치던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외국의 경우 알렉산드리아는 알렉산더 대왕과 관련이 있고 루마니아는 로마 제국과 관계가 있다. 이렇듯 각각의 지명에는 그 지명의 유래가 되는 역사적 사건, 인물, 전설 등이 담겨 있다. 지명의 유래에 대해 몇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ㆍ역사적 사건의 현장과 관련이 있는 지명 - 파주군 판문점 : 대문을 뜯어 임금이 건널 다리를 놓은 곳 6ㆍ25 사변 중에 휴전 회담이 열렸던 곳이 널문리 가게 앞이었는데, 이 널문리 가게의 중국어 번영이 판문점이다. 원래 지명인 널문리는 옛날 어늘 임금이 이 곳을 지나 강을 건너야 되는데 다리가 없어 건너지 못하자 마을 주민들이 대문을 뜯어 임시로 다리를 놓아 건너가게 했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 ㆍ토목 공사와 관계 있는 지명 - 서울시 청계천 청계천은 수도 한양의 중앙을 흐르는 명당수로, 태종 때부터 둑을 쌓고 폭을 ?히는 등 치수에 힘썼다. 이 때 청계천의 이름은 개천(開川)이었다. 이어 세종 때 시작한 석축 제방 공사가 영조 때 마무리되자 '개천을 깨끗이 치웠다'라는 뜻의 청개천(淸開川)으로 바꿔 불렀는데, 그 후 청계천(淸開川)이 되었다. ㆍ효행과 관련 있는 지명 - 춘천시 효자동 강원도 춘천시에 있는 효자동은 본래 '효자문 거리'라고 불렀다. 이 곳의 이름은 출천지효(出天之孝), 곧 '하늘이 낳은 효자'로 알려진 반희언(潘希彦)의 효행에서 비롯된 것이다. 반희언은 94세 노령의 모친이 겨울철에 딸기를 먹고 싶어하나 구할 길이 없어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늘이 그의 효성에 감동하여 눈보라치는 겨울산에서 딸기를 구해 봉양케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촌락의 기능과 지명 조선 시대에는 촌락의 특수한 기능이 지명에 반영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특히 교통 및 방어와 관련된 촌락이 그러하였다. 하천 교통이 발달한 곳에는 도진 취락(渡津聚落)이 발달했는데, 이러한 촌락의 지명에는 ∼도(渡), ∼진(津), ∼포(浦) 등의 한자가 들어간다. 서울의 삼전도(三田渡), 노량진(露粱津), 마포(麻浦) 등이 그 예이다. 한편 주요 역로를 따라서는 역원 취락(驛院聚落)이 발달했다. 역은 공문서의 전달과 관리의 내왕(來往), 관물(官物)의 수송 등을 주로 담당했고, 원은 관리나 일반 여행자에게 숙박 편의를 제공했다. 따라서 역(驛)∼, ∼원(院) 등의 한자가 들어가는 지명은 과거에 육상 교통이 발달했었던 곳이다. 서울의 역삼동(驛三洞), 역촌동(驛村洞)과 이태원(梨泰院), 퇴계원(退溪院) 등이 그러하다. 우리 지명의 현주소 해방 후 국토 공간의 변화에 따라 지명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국토 개발에 따라 새로운 지명이 생겨났는가 하면, 고유의 지명이 소멸되거나 변질되기도 했다. 서울의 경우 인구 증가로 인해 새로운 동(洞)이 만들어지면서 공항동, 본동과 같은 낯선 지명이 생겨났다. 반면에 굴레방다리, 말죽거리, 장승백이, 모래내, 뚝섬과 같은 고유 지명은 행정 구역 명칭으로 채택되지 않은 채 잊혀져 가고 있다. 또한 그 지역의 고유 지명을 외면한 행정 편의적 발상에 의해 무미건조한 숫자로 된 지명이 많아지고 있는데, 신림동의 경우 신림 본동부터 신림 1동, 2동, 3동 ∼ 신림 13동까지 있다. 한편 방향 착오를 일으키는 지명도 많다. 인천의 각 구의 명칭을 보면, 동구의 동쪽에 서구가 있으며 북구와 서구는 같은 위치에 있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지명에는 각 지역의 자연 환경ㆍ역사ㆍ풍속 등이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지명 연구는 곧 우리의 숨겨진 지리ㆍ역사ㆍ풍속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우리의 고유 지명이 사라지고 있어 아쉬움을 더하고 있다. 요즈음 인명에 한글 이름을 많이 쓰는데 지명도 한글 이름으로 고쳐 보면 어떨까? 우리말 지명 '서울', 얼마나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이름인가? [지리교사 모임 '지평', "지리로 보는 세상"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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