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방
박 숲
어린 내가 뒹굴었던 깨밭으로
엄마는 자꾸만 달아나지
젊은 엄마의 신발은 훨씬 작고 예뻤을 거야
깨꽃 만발한 밭 한쪽
잠자리들이 햇살을 껴안고 뒹굴고
깨밭 골 사이 진딧물은 엄마를 야금야금 먹어치웠지
진딧물 액체가 된 엄마는 깨나무 골에 갇혔고
액체가 끈적거릴수록
어린 나는 깨꽃처럼 환하게 피어났어
어제는 엄마 꿈을 꿨어
그곳에서 엄마는 젊은 엄마였어
외딴방이 꿈으로 풍성해지면
누워있던 마른나무는
바람과 햇살과 잠자리를 불러들이고
먼 산 뻐꾹뻐꾹 노래 부르지
나무뿌리는 움직일 수 없어서
버려진 꿈이 냉장고와 싱크대 아래
말라비틀어지고 살이 짓무른다
꿈이 없는 날엔 까마귀 울음
외딴방을 파고든다
엄마는 언제 깨꽃을 피웠어?
그가 꽃을 피웠고 꺾었고 죽였지
젊은 아버지만?
그렇단다
젊은 아버지를 밀어 넣고 방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깨꽃이 환하게 피었다고 보러오란다
엄마의 꿈속은 깨꽃이 수시로 피고 지고
밑동 잘린 깨나무를 부여안은 외딴방은
꾸역꾸역 밀려드는 잠을 집어삼키지
잠속의 엄마는 어린 나를 어린 너를
젊은 아버지를
이끌고
깨밭과 외딴방의 문턱을
온종일 넘나든다
원숭이가 미끄러지다
이국의 낯선 마당에 들어섰지
만개한 배롱나무꽃이 붉게 웃었고
처음 보는 얼굴끼리 꽃을 피웠지
과장된 웃음은 시작의 언어
적당한 무게의 캐리어를 이끌고
열어준 문으로 들어갔지
바다에서 묻어온 바람이
따라 들어왔지
발자국을 찍으며
거실 바닥으로 이국의 언어가
모래처럼 흩어졌지
통하지 않는 말 대신 좀 더 많은
웃음을 제조하려다
자꾸만 미끄러지는 헛웃음
창 너머 여름이 저 혼자
뜨거운 언어를 쏟아내는 동안
우리는 이해라는 것이
좀 더 복잡한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지
틈새는 점점 교묘해지고
우리는 외출에서 돌아올 때마다
낯선 풍경을 매달고 왔지
식탁에도 욕실에도 침실에도
여름이 몰고 온 눅눅한 바람이
메마른 모래를 흩뿌렸지
주인의 품에 안긴 고양이의
지루한 표정이
내 얼굴로 건너왔고
나는 서둘러 떨어진 꽃이 되었지
캐리어 뚜껑을 열고
달궈진 열도의 이야기를
차곡차곡 집어넣었지
창문 너머로 백 일 동안 꽃을 피울
배롱나무 가지가 흔들렸고
바닥에는 분홍색 꽃잎이 수북했는데
내가 아는 유일한 이해였지
이국의 원숭이가 된 우리는
나뭇가지 틈새로 자꾸만 미끄러졌고
찢긴 얼굴들이 바닥으로
수북하게 쌓였지
창문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온도가 대치했고
어긋난 주파수가 지직거렸지
사루 스베리!*
창밖 꽃나무를 가리키는
손가락이 깔깔 소리 내어 웃었지
단절된 언어가 나뭇가지 아래로
혀를 빼고 미끄러졌지
꽃나무 아래 분홍빛으로
흩어진 마음을 주섬주섬 챙겨
문을 나섰지
주인의 고양이에게 손을 흔들었지
그제야 만개한 주인의 표정
처음 만났을 때 지었던 웃음이
가볍게 치솟아
배롱나무를 흔들었지
* ‘배롱나무’를 일본에서는 ‘사루 스베리’라 부르며, ‘원숭이가 미끄러지다’로 해석한다.
시절 인연
49일 동안, 세상에서 맺은 인연을 정리했을 어머님의 마지막 날. 폭설이 하얗게 내려앉았다. 그녀의 세상에 담겼던 현상들과 인연들을 남김없이 정리하기엔 너무도 짧은 기간. 그러나 무엇도 담아갈 수 없다는 듯 폭설은 세상의 흔적을 모조리 덮어버렸다.
마지막을 배웅하기 위해 사찰로 오르는 동안 함께 했던 기억들이 바람에 떠밀리는 눈발처럼 흩날렸다. 어떤 기억은 눈더미처럼 위협적이었고 어떤 기억은 눈송이처럼 보드랍고 다정했다. 영원히 늙지 않는 어머님의 미소가 떠올랐다.
내가 처음 그녀를 따라 사찰로 가는 산길을 올랐을 때, 그녀는 걸음을 뗄 때마다 힘겨웠던 인생을 조금씩 털어놓았다. 산골로 시집 와 평생 일을 멈춰본 적 없고, 스스로 일궈낸 전답과 가난 탓에 자식들을 키우다 죽일 뻔했던 에피소드들. 그녀의 가장 큰 아픔인 장애를 가진 막내아들에 대한 염려까지.
아무것도 모르는 신혼 초의 난 그녀의 뒤를 따라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산길을 오를 뿐이었다. 가느다란 바람 소리에 섞여 멀리서 뻐꾸기 소리가 들렸고, 우리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이 베푸는 넉넉함을 둘러보며 호흡을 골랐다.
그 시절과 달리 지금은 산사 입구까지 차로 올라갈 수 있다. 차로 산길을 올라가는 동안 거친 눈발이 차창 너머 시야를 가렸지만, 나는 곳곳에 숨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녀는 지치고 힘들 때마다 구불구불 산길을 따라 사찰로 향했다고 했다. 어쩌면 새 가족이 된 내게, 수시로 덮쳐올 삶의 고통에 대한 예고와 함께 힘든 시간을 통과하는 방법을 알려주려 했던 걸까. 종교가 달라 사찰 자체를 거부했던 마음과는 달리 나는 이끌리듯 그녀를 따라 법당에 엎드렸고 종루 주변을 돌았다. 이후로도 그녀를 만나러 갈 때마다 나는 그녀를 따라 사찰을 드나들었고, 종교는 결국 모두 통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망자를 보내는 법당에서의 모든 의식을 마치고, 소각장에 모여 그녀의 유품을 태웠다. 생전에 입었던 그녀의 낡은 옷가지와 신발이 불에 타는 동안 그녀의 가족들은 하나둘 자리를 벗어났다. 나는 끝까지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그녀의 마지막은 비참했다. 사라지는 기억을 붙들고 오랜 시간 요양원에 갇혀 지냈다. 그녀가 맺었던 인연들이 기억 속에서 툭툭 끊어졌고, 결국 그녀는 아기였던 시기까지 회귀를 했다. 기억이 모조리 빠져나간다 해서 맺었던 인연이 모두 정리가 될까. 그녀는 끝없이 밀려드는 침잠 속에서 먼저 간 남편과 큰딸의 손을 붙잡고 싶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남겨진 아픔, 막내아들에 대한 애틋함 때문인지 숨을 놓았다가도 다시 가느다란 숨을 붙들고 있기를 번복하여 자식들의 애를 태웠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녀가 맺은 인연 안에 내가 속해 있고 내가 맺은 인연 안에 그녀가 이어져 있듯. 또한 어떤 인연이든 시기가 되면 다가왔다 사라지기 마련이다. 자신을 통과하여 지나쳐 간 숱한 인연들의 끈에 집착하거나 연연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이다.
그녀에게 종이로 지은 마지막 옷과 신발을 선물했다. 새 옷으로 갈아입은 그녀가 순식간에 타올랐다. 나는 그녀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그녀가 끝내 가슴에 묻고 갈 막내아들을 내가 대신 최선을 다해 보살피겠다는 약속과 함께.
연분홍 한복과 꽃신을 곱게 차려입은 그녀가 저쪽 세계를 향해 눈처럼 가볍게 날아오르기를 기도했다. 눈 속에서 환한 미소를 짓던 그녀가 손을 휘휘 내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