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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시는 하나님!
참고말씀: 창21:5; 31:41; 41:46; 출7:7; 삼하5:4 에6:1-3; 욥42:3; 호6:1; 합2:1,3; 눅3:23; 18:1,2; 행12:6-10; 골4:2; 살전5:17; 벧후3:9; 계5:8; 8:3
읽을말씀: 사30:18
주제말씀: 사30: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첫째, 기다리시는 하나님이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사30:18 상)
왜 우리는 주일마다 예배당에 옵니까?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함이요, 또한 하나님이 누구시며 또 어떤 일들을 행하시는지를 알아가기 위함입니다. 왜 하나님을 매주 알아가야 합니까?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아는 만큼 보이고 알아가는 만큼 풍성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혹 신앙생활이 무료하고 단조롭게 느껴집니까? 이번 기회에 하나님을 알아가는 쏠쏠한 재미를 느껴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금방 다 알아버릴 것 같다고요? 아닙니다. 양파를 까고 까도 또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도 알면 알수록 새로우시며, 또한 누군가 ‘지식은 반지름’이라고 했듯이 하나님을 알아갈수록 우리의 무지함을 드러날 뿐, 그 누구도 하나님을 100% 다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욥42:3)
혹 예배 시간에 설교노트를 작성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주일마다 하나님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을 설교노트 상단에 빠짐없이 기록하고, 또 그날에 새롭게 배운 내용들도 함께 적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점을 가르쳐주고 있습니까? ‘기다리시는 하나님’입니다. 본문을 보니 사람만 기다리는 게 아니란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어째서입니까? 하나님께서도 기다리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사30:18 상) 우리는 그렇다 쳐도 하나님은 능력이 없으신 것도 아닌데 왜 기다리시는 것입니까? 물론 여러 가지 이유로 그리하실 것이지만, 몇 가지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죄인에 대해서는’ 그가 멸망하지 않고 오히려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9) 생각해보십시오. 만일 하나님께서 기다리시지 않고 그때마다 바로 심판하시면 우리에게 회개할 기회가 남아 있기나 하겠습니까?
그러니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내일은 어쩌면 우리의 날이 아닐 수도 있으므로, 아직 기회가 있을 때 빨리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호6:1)
② ‘기도에 대해서는’ 최적의 타이밍에 가장 적절한 응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즉 적당한 시기에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려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사30:18 중)
그러고 보니 하나님의 응답은 언제나 절묘한 타이밍에 이루어졌음을 볼 수 있습니다.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순간에 절묘하게 개입하셔서 극적인 반전을 이루어 나가셨던 것입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 때도 그리 했고, “그 날 밤에 왕이 잠이 오지 아니하므로 명령하여 역대 일기를 가져다가 자기 앞에서 읽히더니 그 속에 기록하기를 문을 지키던 왕의 두 내시 빅다나와 데레스가 아하수에로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모르드개가 고발하였다 하였는지라 왕이 이르되 이 일에 대하여 무슨 존귀와 관작을 모르드개에게 베풀었느냐 하니 측근 신하들이 대답하되 아무 것도 베풀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에6:1-3)
사도 베드로 때도 그리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헤롯이 잡아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천사가 이르되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이르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한 대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가 하는 것이 생시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 나와서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행12:6-10)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기다리신다는 점을 깨달았습니까? 즉 죄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며, 최적의 타이밍에 가장 적절한 응답을 주시기 위해 기다리신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까?
둘째, 우리도 분량을 채워가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사30:18 하)
하나님께서 기다리신다는 것을 알았으니, 이제 우리도 어찌 해야 합니까? 기다려야 합니다. 즉 기도를 계속하되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하였더니.”(합2:1)
그리고 보니 믿음의 사람들의 특징은 기다릴 줄 안다는 점입니다. 이를테면 아브라함은 25년을 기다려서 아들 이삭을 얻었고,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 세라.”(창21:5) 야곱은 고향 땅으로 돌아오기까지 20년을 기다렸으며, “내가 외삼촌의 집에 있는 이 이십 년 동안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사 년, 외삼촌의 양 떼를 위하여 육 년을 외삼촌에게 봉사하였거니와...”(창31:41 상)
요셉도 자신의 꿈을 이루기까지 십 수 년을 기다렸으며, “요셉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 세라...”(창41:46 상) 모세는 소명의 자리에 서기까지 80년이나 기다렸고, “그들이 바로에게 말할 때에 모세는 팔십 세였고 아론은 팔십삼 세였더라.”(출7:7) 다윗도 기름 부음 받은 후 왕이 되기까지 십여 년을 기다려야 했으며, “다윗이 나이가 삽 심 세에 왕위에 올라 사십 년 동안 다스렸으되.”(삼하5:4) 예수님께서도 공생애를 시작하시기까지 30년을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눅3:23 상)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습니까? 기도의 첫 번째 요소는 ‘기다림’이란 점입니다. 즉 기도 응답은 즉각적으로 이루어지기보다는 오히려 대부분 일정 기간의 기다림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기도생활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비록 기도의 응답이 더딜지라도 기다리고,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합2:3 하) 항상 기도하되 낙심하지 말며,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눅18:1,2) 아직 때가 되지 않았음임을 알고 하나님이 정하신 그 때를 인내하면서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지치려고 할 때마다 이렇게 되뇌십시오. ‘하나님께서 기다리시는데 나도 기다려야하지 않겠나? 나 혼자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조급할 게 뭐가 있겠어? 하나님께서 같이 기다려주시니 인내심을 가지고 계속 기다려보자!’
한편, 단순히 기다리기만 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기도의 분량을 채워가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기도의 분량이라 함은 무엇을 가리킵니까? 하나님께서 기도의 사안(事案)마다 각기 정해놓은 분량인데, 하나님은 언제나 이 기도의 분량(分量)이 채워질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채워질 때 비로소 응답해주시는 것입니다.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계5:8) /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에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계8:3)
이는 기도의 질보다는 양이 더 중요하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당연히 기도의 양보다는 질이 더 중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의 양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4:2) /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5:17)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습니까? 기도의 두 번째 요소는 ‘채우기’란 점입니다. 즉 기도 응답은 우리가 꾸준한 기도생활을 통해 기도의 분량을 채울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어찌 해야 합니까? 인내심을 가지고 기도하면서 기도의 분량을 채워가야 할 것입니다. 사실 기도의 분량이 언제 채워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워터파크의 물바가지에 물이 가득차면 저절로 쏟아지듯이, 우리의 기도그릇도 채워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시원하게 쏟아질 날이 올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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