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랄리는 비록 번성하고 정치적으로 왕성한 곳이 었음에도 여타 지역으로부터 관심과 존경을 받지 못했다. 그곳은 예루살렘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지역이었으며 문화적으로 가장 낙후한 지역이었다. 당시 랍비 문학은 갈릴리 사람들을 놀리는 말로 ‘촌놈’이란 단어를 사용하였다. 갈릴리 사람들이 히브리어를 배웠다 하더라도 조악하게 발음함으로 다른 지역의 회당에서는 토라 낭독을 허락 받지 못했다. 공용어인 아람어를 교양 없는 말투로 발음한다는 것은 자신이 갈릴리 출신임을 드러내는 행위와 다름없었다. 복음서에 남아 있는 아람어로 보아 예수 역시 그와 같은 북쪽 사투리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갈릴리 출신 예수는 그 말투로 인해 더욱 의심을 받았다.
만약 여러분이 예수가 탄생한 그 시기 팔레스타인 유다 땅에 거주하고 있는 유대인의 일원이라면 예수의 말씀; 특히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과 이적행위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였을까요? 그 입장을 밝히기 전에 그 당시 유대인들의 유대인 및 이방인들에 대한 입장에 대한 여러 분파에 대한 이해를 위해 대표적인 몇 분파들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아래와 같이 하고자 한다.
“나다니엘이 그에게 말하였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 빌립이 그에게 말하였다. “와서 보시오!”” (요1:26)
“… 그러나 더러는 이렇게 말하였다 “갈릴리에서 그리스도가 날 수 있을까?” (요7:41)
<표 1-1> 유대인 분파의 특성
분류 | 특성 및 지배자 로마에 대한 입장 | 예수에 대한 입장 |
에세네파 | ①가장 분리주의적 입장 ②평화애호 자들 à 해롯과로마에 물리적으로 대항치는 않음 à 대신 광야지대 동굴에 이거하여 수도원 설립 및 수도자 삶을 영위 ④ 로마의 지배à 자신들의 율법을 제대로 이행치 못한 결과로 인식 ⑤ 정결한 예식, 겸손한 식생활, 어떠한 장식구도 몸에 걸치지 않음 ⑥ 모든 재산 공유 à 자신들의 신실함이 메시아의 도래를 촉진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검소/청결한 삶 유지 | 촌 동네 나사렛에서 메시아가? à 자신들의 신실함 만이 메시아의 도래를 촉진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임에 나사렛의 예수가 메시아란 말에 강한 의심! |
열심당 | ①이방인들 몰아내기 위한 무장폭동까지 옹호 ②로마인들에 대한 정치적 테러행위를 전담하는 분파가 있는가 하면, ‘도덕경찰’ 역할을 자처하고 나서서 동포 유대인들을 일치시키는 분파도 존재 ③민족적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타 민족과의 혼인하는 사람에게 형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공언 | ① 12제자 중 한명인 ‘시몬’은 열심당원 ② 이방인과의 공공연한 접촉 및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한 예수에 대한 극도의 분노를 표출 |
산헤드린 | ①기존 체제 내에서 활동하려고 노력 (기득권층) ②자신들의 특권을 유지하고자, 반란의 징후를 탐색하는 역할을 자처하여 로마에 협력 ③ 대제사장 가야바는 협력주의적 사고를 품은 전형적인 사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민족 전체가 망하지 않는 것이 당신들에게 유익하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소” (요 11:50) | ‘하나님의 아들?’ à ①감히 하나님을 입으로 외쳐? ②귀신들려서 미친 자 아니야? à 침례/세례 요한과 예수에게 사람을 보내 이들을 감찰함 à 여차하면 로마에 보고/ 제거하려고 함 |
사두게파 | ①공공연한 협력주의자 ②가장 먼저 헬라 화된 부류 ③ 인본주의적 사상을 견지 à 내세나 지상에 대한 신적인 개입 등을 믿지 않음; 현세만이 현실이므로 미래적 보상이나 징벌을 있을 수 없음 à 객 개인은 지상의 한정된 시간을 향유할 권리가 있음을 인정 ④현 상태에 위협이 될 만한 사태 발생 시, 잃을 것이 가장 많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 ①위협 발생 시, 잃을 것이 가장 많을 것으로 판단하는 이들임에 현실적인 위협으로 다가오는 예수에 극도의 의심과 반감을! |
바리새파 | (중류계층의 선호도가 가장 많았던 분파) ①분리와 협력의 경계선 상에서 줄타기; 안식일 준수, 정결의식, 각종 절기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적용 ② 이 기준을 지키지 않는 유대인을 ‘이방인들과 같이’ 취급 지역공회에서 배제, 상거래 금지, 사회적 공무에서 배제 ③ 메시아 도래에 대한 간절한 열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앙을 초래할 수도 있는 어느 협잡꾼, 혹은 이적 연출자에 대한 즉각적인 추종은 망설임. | ①예수? 이적을 행했다고 하니 그가 따르는 자들에게 어떠한 말과 행동을 보이는지 살짝 점검해볼까? ② 이적 연출자 예수에 대한 예민한 관찰 |
유대인들이 약소 민족이기는 하나 고차원적 이상 (메시아 도래 및 유대 왕국 건설)을 품고 있는 자신들이 주변의 이교도들로부터 벗어나 구원을 받으리라는 소망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망으로 인해 최후까지 자신들만의 문화를 지켜내고자 했다. 말하자면, 그들을 자신들의 문화에 견고한 울타리를 쳐 놓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집트에서 그들을 해방하셨듯이 로마로부터 그들을 해방시킬 수 있을까?
비록 가정이긴 하지만 내가 예수가 태어난 당시에 그곳에 있었더라면, 나 역시 분파를 떠나서 (어쩌면 바리세파에 가까운 위치를 점하면서) 다른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아래 예수의 말에 수긍하기는 커녕, 상당히 높은 통으로 비난했을 것으로 판단한다.
“누구든지 내게로 오는 사람은,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내나 자식이나 형제나 자매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눅14:26) 말씀에 어떻게 화해할 수 있을까?
“이 사람이 하나님의 성전을 허물고 사흘 만에 세울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마26:61) 이 무슨 해괴망측한 불경스러운 표현인가? 산헤드린은 성전에 대한 예수의 이 언급은 유대인들의 결속하는 구심점을 크게 와해시키는 표현으로 판단하였다. 어떤 사람의 죄를 용서하겠노라는 예수의 제의는 그들이 보기에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기행으로 보였다.
서기 70년 로마에 의한 사원 파괴와 예루살렘 초토화는 유대인들의 우려가 현실이 되고 말았으며, 그 현실은 예수로 인해 촉발된 것이 아닌 로마를 자극한 영향력 있는 몇 몇 인물들의 봉기 획책으로 인해 촉발된 것이었다. 이 도시는 후일에 로마의 식민지로 재건되며, 무너진 유대인 성전 자리에는 주피터 신에게 봉헌하는 성전이 들어선다. 로마는 드디어 오늘날 우리 세대에 이르기까지 지속된 유대인 추방정책에 시동을 걸었다. (2차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