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정조
사도세자는 영조의 2번째 아들(왕자)로 사도세자가 태어나기전 공주만 12명이 태어나고(그중 5명이 먼저 떠났다) 아들인 효장세자가 태어 났지만 9살에 사망하여
걱정을 하던 영조는 41세에 꽤 늦은 나이에 신이 준 선물과 같은 사도 세자가 태어 났습니다
사도세자는 어렸을때 부터 공부를 잘 하였으며 조선 시대 최연소인 1살(그 당시 영조는 42세)에 왕세자로 책봉 돼어 이후 아버지 영조를 이어 왕이 됄 자가 돼었지만 사도세자는 그 만큼 힘들고 아버지와 사이가
더 멀어졌다
사도세자는 공부 보다는 무술에 관심이 많았는데 당시 무술에 관심이 많아 15살(당시 영조는 56세)에 일반 무술가도 무거워서 못한다는 청룡 언월도를(100 KG 가까이 돼는 무게) 자유롭게 썼을 정도로 무술에 관심이 많았지만 영조는 왕은 무술 보다는 공부가 먼저라고 생각하여 이후 영조와 사도세자가 싸우게 돼는 두번째 원인이다
이후 그는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와 혼례를 치른후 정조를 낳았지만 당시 15살 부터 정치에 참여하여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고 영조의 잘못됀 교육 방식 때문에 사도세자는 결국 영조 몰래 놀러 가고 술도 마시자 결국 사도세자를 폐위 시키고 뒤주에 가두어
이 일로 사도세자는 뒤주에 같친지 5일 (당시 정조는 11살 영조는 26년)만에 사망하고 당시에는 왕이 왕자를 죽이는 일이 없어서 당시 정조는 영조의 의해 효장세자의 아들이 돼었고 이후 정조는 14년이 지나서야 자신의 아버지를 사도세자라고 말할수 있었다
첫댓글 5분 되냐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