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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창 3: 15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롬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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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으며 확신하며 : 그리스도(창3:15)
비극의 시작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하늘과 땅과 식물과 동물과 온 우주의 모든 것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창조의 최고의 작품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살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에덴동산을 방문하실 때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대화를 했고, 두 사람은 옷을 벗고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아름답고, 질서 있고, 하나님과도 평화하고, 사람 사이에도 평화했습니다.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이런 복락이 영원히 지속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뱀으로 가장한 사단이 아담과 하와를 유혹해서 에덴동산에서 유일하게 금지된 선악과를 먹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동산의 모든 실과는 먹을 수 있으나 선악과를 먹지 말라 하셨습니다. 만약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단은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어도 죽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하나님과 같이 지혜로워진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어리석게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사단의 말을 따라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이것이 타락입니다. 술 담배를 비롯한 윤리나 도덕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언약을 어기고 사단의 말을 따른 것이 타락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잘못된 것이 타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보다 자기 생각대로 판단하고 행동한 것이 타락입니다. 인간의 비극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선악과를 먹은 결과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경고하신 심판이 임했습니다. 가시와 엉겅퀴로 인하여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게 되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강제로 추방되었습니다. 영생하기를 소원하지만 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죽음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힘들어하고 걱정하는 모든 것이 여기서 시작됩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결국에는 타락한 인간이 가야 할 길을 갑니다. 강건하면 칠십이요 팔십인데 수고와 슬픔뿐이고 신속히 갑니다. 오호라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 개인만 고통 받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에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자녀의 문제가 생깁니다. 생활이 어려워서 고통 받습니다. 부모와 자식, 부부간에도 불화합니다. 집안에도 갈등과 문제가 있습니다. 지역이나 계층 간의 갈등이 심하고, 나라와 나라 사이에 전쟁도 일어납니다.
비극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알아야 합니다. 문제를 바로 이해해야 바른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문제의 본질을 바로 알아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결과 중의 하나입니다. 육체적인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문제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잘못된 것입니다. 사단의 유혹에 넘어간 것입니다. 문제는 어제 오늘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든 이후부터 지금까지 계속된 것입니다. 근본적인 해결이 있어야 합니다.
누가 우리를 구원할까?
하나님이 만든 원래 상태로 회복할 필요가 있습니다. 병들고 죽는 사람이 영생하기를 원합니다. 수고와 슬픔 대신에 희락과 만족이 있기를 원합니다. 가시와 엉겅퀴 대신에 넉넉함과 후한 대접이 있기를 바랍니다. 유리방황 대신에 에덴의 낙원을 회복하기 원합니다. 갈등과 싸움 대신에 화해와 평화가 있기를 원합니다. 나라와 나라가 연합하고 서로 평화하기 원합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과연 누가 이 일을 할 것입니까? 메시야입니다. 하나님이 보낸 구원자가 이 일을 행하십니다. 누가 우리를 구원할 것입니까? 우리는 메시아를 기다립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강제 추방되었습니다.
언제 에덴으로 돌아갈 것인지 늘 생각했습니다. 혹시 아들을 얻으면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첫아들 가인을 얻고 기대를 했지만, 실망스럽게도 가인은 동생 아벨을 쳐 죽이는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회복의 길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때부터 사람들은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드렸습니다. 수많은 짐승의 제물을 바치면서, 하나님의 구원을 바랐습니다. 구약 시대의 모든 제물은 메시야의 대속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짐승의 제물을 바치면서 메시야가 오시기를 기다렸습니다.
노아 시대 사람들은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에 몰두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불신자들과 잡혼을 했습니다. 노아의 식구는 방주에 들어가서 구원을 얻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홍수심판으로 죽었습니다. 노아는 선지자와 같이 외쳤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방주를 예비합시다.”
노아는 선지자이지 메시아가 아닙니다. 오실 그분을 준비하라고 외쳤습니다. 메시아가 와야 합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선지자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이 보내실 메시야에 대해 예언했습니다. 깨어서 메시아를 기다리라 했습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놋뱀을 장대 높이 달았습니다.
불뱀에 물려 죽어가는 사람들이 모세가 세운 놋뱀을 바라보면 구원을 얻습니다. 놋뱀이 누구입니까? 장차 세상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4-15).”
이사야 선지자는 오실 메시아가 어떤 분인지, 어떤 일을 하실 것인지 상세하게 예언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여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5-6).”
세례 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입니다.
예수님 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나서 광야에서 회개를 외쳤습니다.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마3:1-3).”
많은 사람들이 요단강에 나와서 요한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요한이 메시아가 아닌가 하여 물었지만, 자신은 그리스도를 예비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마3:11).”
예수님이 태어날 때에도 사람들은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로마제국의 식민지 백성으로 고달픈 삶을 살았습니다. 서기관이나 바리새인 같은 종교 지도자들은 자기들도 지지 못하는 무거운 멍에를 백성들에게 지게 했습니다. 여기저기서 자칭 메시아라는 자들이 일어나서 세상을 어지럽혔습니다.
메시아를 기다란 사람 중에는 안나와 시몬 같은 경건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눅2:25).”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 매우 늙었더라. 그가 출가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 된지 팔십 사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눅2:26-27).”
그런 가운데 예수님이 등장합니다.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고 공생애를 시작하십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밝혔습니다. 수많은 기적으로 예수가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인 것을 증거하였습니다. 성경은 메시아를 기다리는 역사입니다.
우리는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오셔야 문제가 해결됩니다. 헤롯처럼 예수님의 탄생을 싫어해서 대적해서 안 됩니다. 유대인의 왕이 탄생했다는 소식에 혼비백산해서 2살 아래 어린아이를 다 죽이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무관심해서 안 됩니다.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예수님이 탄생한 곳을 물었을 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고 하고 자기들은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메시아의 오심을 환영하며 기대합시다.
두 가지 언약
하나님이 우리 인간과 맺은 언약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행위언약이고,
다른 하나는 은혜언약입니다.
두 언약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두 가지 생각할 점이 있습니다.
먼저는 언약의 당사자입니다.
행위언약은 하나님과 사람이 맺은 언약이고,
은혜언약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이 맺은 언약입니다.
다음은 언약의 특성입니다.
행위언약은 사람의 온전한 행위에 근거하고,
은혜언약은 하나님의 아들이 하신 일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은 어떤 언약입니까?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언약은 행위언약입니다.
당사자는 하나님과 아담입니다.
선악과를 먹지 않음으로 지키는 언약입니다.
아담은 행위언약을 지켰습니까?
못 지켰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언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했습니다.
행위언약을 지키지 못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하나님에게는 책임이 없습니다.
행위언약도 은혜이고 축복입니다.
선악과를 먹지 않음으로 에덴동산에서 영생복락을 누린다면 이것보다 쉬운 것이 어디 있습니까?
세상에 노동이 힘든 것을 아는 사람은 공부보다 쉬운 것이 없다고 합니다.
선악과를 먹음으로 행위언약을 지키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것을 지키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사람의 책임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자유의지가 있는 인간으로 지으셨는데, 인간이 그 자유를 선하게 사용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타락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준 것이 있습니다. 사단의 역사입니다. 사단이 선악과를 먹으라고 유혹하지 않았다면 타락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사단은 하나님을 섬기는 천사장인데,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교만하다가 타락했습니다. 사단은 자기의 본성대로 인간도 하나님을 불순종하여 타락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행위언약으로는 인간의 비극을 회복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행위로는 완전할 수 없고,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언약을 준비하셨습니다. 이번에는 실패할 수 없는 완전한 언약입니다. 은혜언약입니다. 은혜언약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가 맺은 언약입니다. 인간의 행위가 개입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 행한 것을 믿기만 하면 되는 언약입니다. 인간의 연약함으로 인해 실패할 수 없는 언약입니다. 이 언약이 복음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구약과 신약이라고 하는 것은 옛 언약과 새 언약이라는 뜻입니다. 신약은 신약(信約)이 아니라 신약(新約)입니다. 믿음이 좋은 분들 중에는 믿을 신(信)을 너무 좋아해서 성경도 신약(信約)이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주의해야 합니다.
은혜언약 곧 복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서 십자가에서 대신 고난 받고 죽게 하셨습니다. 그를 믿는 자는 죄 사함을 받고 사단의 종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복락을 얻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인간의 모든 문제 해결은 복음 밖에는 없습니다. 복음만이 인간의 비극의 유일한 해결입니다. 복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복음을 믿게 된 것은 더욱 감사해야 합니다.
여자의 후손
복음의 가장 오래된 원형을 원시복음이라 합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3:15절이 바로 원시복음입니다. 하나님이 타락한 인간을 어떻게 구원하실 것인지를 최초로 말씀하시는 구절입니다.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여기서 “나”는 누구입니까? 성부 하나님입니다.
“너”는 누구입니까?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사단입니다.
여자가 누구입니까?
하와입니다. 하와는 사단의 말에 먼저 유혹을 받고 타락한 사람입니다.
여자의 후손은 누구입니까?
장차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인간의 몸으로 오실 메시야입니다. 그는 반드시 여자의 몸에서 태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완전한 인간으로 오시기 위해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났습니다.
여자와 사단이 원수가 됩니다.
원수가 된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원수는 적대감이나 증오감을 말합니다.
사단과 여자가 왜 원수가 됩니까?
지금까지는 친구이고 동반자입니다. 하와는 사단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선악과를 먹는 순간부터 하와는 하나님과 원수 되고 사단과 친구 되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습니까? 제일 잘못된 것입니다. 사단과 친구로 있는 한 인간은 비극과 슬픔뿐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자와 사단이 원수가 되게 하십니다. 사단과 결박을 끊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합니다. 누가 하십니까?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단의 결박을 끊을 힘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과 친구이고, 사단과 원수입니다. 이것이 옳은 것이고 행복입니다. 사단과 원수 되고 하나님과 친구 되는 것이 구원입니다. 사단의 부하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고 일군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도 예수 믿기 전에는 사단의 종이었는데,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사단과는 원수입니다. 사단이 하자는 일에는 “아니요”가 맞고, 하나님이 하자는 일에는 “예”가 맞습니다. 이것이 되는 사람은 비극이 끝난 사람이고, 이것이 안 되는 사람은 앞으로도 비극을 더 겪을 사람입니다. 지옥이 무엇입니까? 사단과 친구 된 사람이 갈 영벌의 처소입니다. 물 한 방울의 고통과 이를 갊이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 사단과 원수 됩시다. 하나님과 친구 됩시다.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친구가 될 수 있습니까?
역사적인 근거가 있습니다.
십자가의 싸움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사단을 이겼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의 모든 영광을 버리고 죄인된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사단은 자기가 이긴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고난 받고 죽었으니 이것으로 다 끝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죽은 지 삼일 만에 예수님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손에 못 자국이 박히고, 옆구리에 창 자국이 남고, 이마에 가시자국이 남았지만,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흔적은 남았지만 예수님은 살아나셨습니다. 사망을 이기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반면 사단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심과 함께 파멸되었습니다. 왕 노릇 하던 죄와 사망이 피했습니다. 십자가의 전쟁에서 예수님은 작은 상처만 남았고, 사단은 머리가 깨졌습니다. 완전히 패배했습니다
.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15절).”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죽은 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심으로 사단을 이긴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죄와 사망을 이기셨습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도 사단을 이기고, 죄와 사망을 이깁시다.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주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5-16).”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요16:33).”
옮겨 쓴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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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며 묵상하며 : 죄는 심판 죄인은 사랑하시는 하나님(창3:14-24)
사람들은 무관심과 교만함에 빠져 죄의 심각성에 대해서 올바른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시며 심판 중에도 은혜를 베푸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는 반드시 심판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탄부터 시작해서 아담까지 각자가 지은 죄에 대해서 심판을 하셨습니다. 하늘 높이까지 높아지려고 했던 뱀은 땅 바닥 까지 낮아져서 흙을 먹고 살게 되었고 자기 욕심에 끌려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아담에게까지 선악과를 먹도록 한 여자는 임신하는 고통을 더하셨고 하와를 사탄에게서 지켜주지 못한 아담은 평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게 되었고 결국 흙으로 돌아가는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자기 분수를 지키지 않고 높아지려했 던 사탄은 가장 낮은 자가 되게 하셨고 사탄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는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사람들은 생명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반드시 벌하시되 경우에 따라 벌하셨습니다. 그리고 벌을 통해서 큰 교훈을 얻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죄를 반드시 벌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는 그 모양이라도 버리는 결단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죄인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후손을 멸망시킬 것이라는 예언의 약속을 주셨기 때문에 죄는 반드시 심판하시지만 죄인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만납니다. 죄의 심판을 받고 죽음의 선고를 받은 인간들은 아무런 희망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젠가는 메시야를 통해서 사람을 구원하려는 계획을 세우신 것입니다. 그 약속의 그림자로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추방되는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가죽옷을 만들려면 동물의 희생이 필요한데 그 희생으로 인해 아담과 하와는 가죽옷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장차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으로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아담과 하와같이 죄 가운데 있었더라도 지금 하나님께 나아가면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대신 해서 벌을 받으신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께 용서를 받고 다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는 벌하시지만 사람은 사랑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일용할 양식 2009.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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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는 ‘민들레’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개신교에서 신앙인의 합당한 생활을 강조할 때 주로 많은 쓰는 성구다.
이와 관련된 꽃과 그에 대한 전설이 있다. 앉은뱅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고 봄에 노란 꽃을 활짝 피우는 민들레의 꽃말은 ‘감사의 마음’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성서적 배경이 있다.
옛날 노아 대홍수 때, 하나님이 죄로 타락한 인간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땅에 40일 동안 많은 비를 내리셨다. 하나님은 범죄한 세상 가운데 의로운 노아를 택해 방주를 만들라고 지시하셨고, 씨를 보존하기 위해 동물들을 종류대로 암수 둘씩 방주에 태우라고 명령하셨다.
때가 되어 이 세상은 물로 심판을 받고 됐고 방주에 타지 못한 짐승들은 그제야 “진작 노아 할아버지의 말을 들을 걸 그랬어”라며 후회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그때 발이 땅에 붙어 있는 민들레도 홍수를 피하고자 도망치려고 애를 썼고, 얼마나 안간힘을 썼던지 그 머리가 하얗게 세어 버렸다. 민들레는 하나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고 하나님은 그를 불쌍히 여겨 노아의 방주 지붕 위에 살짝 올려놓으셨다.
비가 그치고 물이 빠지자 민들레는 산 중턱 양지바른 곳에 내려앉아 방긋 웃는 노란 꽃을 피웠고 평생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게 됐다고 한다.
출처 : 2011년 06월 21일 손선국 기자(천지일보) sun12@newscj.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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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며 적용하며
1. 죄를 범한 각자에 대해서 하나님은 무슨 벌을 내리셨습니까(14~19절)?
2. 죄를 범한 인간들을 위해서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20~24절)?
3. 하나님께 나아가서 고백하고 돌이켜야 할 죄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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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하며 간구하며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이시여!
당신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말씀을 밝히 보여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눈 먼 가운데서 방황하지 않으며,
죄의 어두움을 쫓지 않게 하시며,
죄악의 길에서 잠자지 않게 하심이니이다.
간절히 바라옵기는
우리가 날마다 당신의 말씀으로 깨어있게 해 주시고,
당신의 이름을 경외하며 당신을 위한 희생으로
우리 자신들을 사용케 해주옵소서.
죄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모르고 경솔하게 행할 때가 있습니다.
주여, 거룩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시고
죄를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성경 벌레들 원문보기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