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탄생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다. 천문학자들이 가장 지지하는 가설은 충돌론이다. 원시 지구와 다른 원시 행성의 충돌로 인해 달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영국 더럼대 연구진이 슈퍼컴퓨터와 은하 형성 연구에 사용된 모델로 매우 정밀한 시뮬레이션을 돌렸더니 달은 지구와 충돌 뒤 불과 3시간 40분쯤 지나서 달이 형태를 갖췄다는 결과가 나왔다. 기존 수만~수백만 년에 걸쳐 달이 서서히 형성됐다는 가설을 반박하는 결과다.
18세기부터 달의 탄생에 대한 과학적 가설이 나오기 시작했다. 첫 가설은 1796년 프랑스의 수학자 피에르-시몽 라플라스가 내놓았다. 태양계가 생성될 당시 공간을 메운 성간물질이 뭉쳐 달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달과 지구는 태양계가 만들어질 때 동시에 태어났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걸로는 지구 지름의 4분의 1이나 되는 달의 크기를 설명하기 힘들었다.
라플라스의 설명에 반기를 든 학자는 찰스 다윈의 아들 조지 다윈이었다. 그는 액체 불덩어리 상태의 지구가 빠르게 회전하다가 지구 적도 인근이 떨어져 나가서 달이 됐다고 1879년 주장했다. 달은 한때 지구의 일부분이었다는 것이다. 거대한 태평양은 달이 떨어져 나간 흔적이라는 주장도 그때 나왔다. 달과 지구의 원소에 대한 방사성 동위원소 분석 결과, 두 천체는 거의 일치하므로 둘은 매우 가까운 관계였음은 틀림없다. 하지만 지구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려면 매우 맹렬한 속도로 회전해야 한다. 하지만 지구의 회전 속도는 그만큼 빠르지는 않다.
1900년대 들어서는 달이 지구 주위를 지나가다가 지구 중력에 포획됐다는 가설도 제기됐다. 달이 태양계 바깥 어딘가에서 만들어진 뒤 뒤늦게 지구의 위성이 됐다는 것이다. 1946년에 이르러서야 달이 충돌의 결과라는 가설이 나온다. 원시지구에 화성 크기의 원시 행성 테이아가 부딪혔고 그 충격으로 튀어나온 파편이 뭉쳐 달이 됐다는 것이다. 이 가설은 당시만 해도 아주 터무니없는 설명이라고 여겨졌다.
1969년 7월 21일 오전 11시 56분(한국 시각), 아폴로 11호의 선장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 표면에 발을 디뎠다. 이후 몇 차례 달 탐사가 이뤄지면서 인류는 1970년대 초반까지 달 표면 암석과 토양 샘플 382㎏을 지구로 가져왔다. 그런데 달의 암석과 토양을 분석한 결과 지구와 달리, 철처럼 무거운 원소의 비율이 높지 않았다. 이 때문에 지구와 달이 비슷한 시기에 함께 형성됐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또한 원시 지구의 자전 속도가 달이 떨어져 나갈 정도의 속도가 아니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달이 떨어져 나갈 정도가 되려면 지금보다 10배 가까이 빨라야 한다. 그리고 산소와 텅스텐 같은 원소의 동위원소 비율을 측정해보니 달은 지구와 거의 흡사한 결과를 나타냈다. 이 때문에 달이 머나먼 곳에서 지구 근처로 와 중력에 붙잡혔다는 가설도 설득력을 잃었다.
결국 원시 지구와 다른 행성의 충돌 때문에 달이 만들어졌다는 가설만이 남게 됐다. 충돌 이후 수만 년에서 수백만 년이 흐르면서 파편이 뭉쳐지면서 차츰 달의 형체를 갖췄다는 것이다. 그런데 파편이 뭉쳐서 지금만큼 거대한 크기와 빠른 공전 속도를 만들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때문에 달이 한 번의 거대한 충돌 때문이 아니라 여러 번 거듭된 충돌의 결과라는 이론까지 나왔다.
과거 원시 지구와 원시 행성의 충돌은 100만개 입자 단위에서 시뮬레이션 됐다. 하지만 최근 미 항공우주국(NASA)과 영국 더럼대 연구진의 연구에선 입자 1억개 이상 단위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입자 하나당 6경 ㎏ 정도로 설정했다. 롯데월드타워 8000만개를 뭉친 것과 같다. 우주에 비하면 먼지에 불과하다지만 인간의 사고가 담기에는 지구의 크기가 무지막지하다.
연구진은 은하와 행성에 주로 사용되는 모델 ‘SWIFT’를 사용해 시뮬레이션 했다. 당시 지구와 테이아의 표면 온도는 2000K(섭씨 1727도)였다고 한다. 내부 온도는 이보다 더 높다. 이 정도 온도에서 암석과 금속 대부분은 녹는다. 즉 원시 지구와 테이아는 모두 액체 상태의 행성이었다. 연구진은 이를 기본으로 충돌 각도와 질량비를 조금씩 다르게 해 충돌시켰다.
시뮬레이션 결과 테이아는 원시 지구와 충돌한 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박살이 났다. 충돌 뒤 액체 상태의 파편들은 터미네이터의 액체금속 로봇처럼 다시 지구 중력에 이끌려 합쳐졌다. 지구는 테이아의 파편을 흡수해 기존보다 더 커졌다. 하지만 충돌 직후 길게 뻗으며 떨어져 나간 부분 중 꼬리 쪽 일부분은 지구 중력에 흡수되는 범위를 넘어 궤도를 형성했다. 이 작은 부분은 지구 주위를 뱅글뱅글 돌며 주변의 작은 파편들을 조금씩 흡수했다. 바로 이 작은 덩어리가 달이 됐다는 것이다.
이번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달은 충돌 이후 수백만 년에 이르는 긴 세월 동안 차츰 형태를 이룬 게 아니라 불과 3시간 40분이 지나서 형태가 보이고, 수십 시간이 흐르는 동안 안정된 궤도에 오른 것이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기존 모델은 지구와 달 암석의 동위원소 구성이 비슷하고 달의 각운동량의 특성을 동시에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며 이번 시뮬레이션에선 달의 질량과 철 함량이 유사한 위성이 생성됐고,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궤도에서 살아남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