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로(天路)를 걷는 삶(11/23)
-나눌 대상을 찾자-
인생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면 그의 사랑을 알게 되는데, 그에 따른 반사적인 것이 바로 주의 사랑을 나눠 주려는 마음이다.
즉 주의 사랑을 나누는 ‘코이노니아’적 마음이며 이를 ‘친교’, ‘교제’라고도 한다.
‘교제’와 ‘친교’를 한다면서도 단순히 육체적인 만남을 갖고 그것으로 만족한다면 이는 진정한 교회의 교제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예수 안에서의 교제는 나보다 연약한 자 혹은 영육 간에 어려운 자를 찾아가는 것이 좋은 교제라 하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온 몸을 자기 백성들을 위해 찢기시고 나누셨다. 자신의 피와 살을 가지고서 성만찬을 행하셨다.
백성들은 이 성만찬을 통해 예수님의 그크신 사랑을 기억하게 된다. 그리고 그 사랑을 이웃에게 또한 나누는 것이다.
주의 사랑과 은혜를 나눌 자들을 찾아야 한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주의 사랑과 복음을 나눌 관심의 대상이 없거나, 늘 살아오면서도 주의 사랑을 나누고자 애쓴 흔적이 내 몸에 없다면 이는 참 성도로서 부끄러운 모습이라 여겨진다.
‘나눔’을 내 몸에 지녀야 한다. 물리적인 것만을 생각하면 어렵다. 주께로부터 받은 주의 복음과 그의 사랑을 몸과 마음으로 주며 나누고픈 상대를 생각하면 된다.
예수를 믿는 형제자매 중에서 믿음적으로 연약한 자들이나,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 중에서 먼저 가까운 이웃을 찾아 주의 사랑을 나누면 될 것 같다.
죄인된 인생은 언제나 무겁고 두려운 생을 살아가고 있으며 늘 걱정과 근심 중에 살아가고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삶에 대해 확신도 없이 허무한 곳을 쫓아가는 저들의 심정은 늘 허전하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인생들은 이 땅에서 참 바쁘게 살아간다. 그래서 누군가를 챙기며 위해 주는 마음조차도 거의 없이 살아간다. 그저 오늘을 살아가며 그리고 나에게 이득이 되는 자에게만 마음을 주는 척하며 산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군가가 자신에게 아무런 댓가없이 그저 다가와 위로해 주며 걱정해 주는 것만으로도 무척 기뻐할 것 같다. 비록 처음에는 경계하겠지만 말이다.
주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형제와 자매들에게 나누는 것이 예수 안에서의 교제이며 그것이 교회의 순기능이기도 하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요15:12)
즉, 주의 몸된 교회를 더욱 견고하게 하며 하나되게 한다는 말이다.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느니라”(몬1:6)
주 안에서 나누는 교제는 탁자를 중심으로 둘러앉아 오늘 묵상과 큐티를 통해 내가 깨달은 말씀을 서로 나누는 것이다. 이 은혜가 나누어질 때에 함께 은혜를 입게 되며 주안에서 하나가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