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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漢詩)
송도삼절(松都三絶)
박연폭포(朴淵瀑布)
일파장천분학롱一派長川噴壑壟
용추백인수총총龍湫百仞水潨潨
비천도사의은하飛泉倒瀉疑銀河
노폭횡수완백홍怒瀑橫垂宛白虹
박난정치미동부窇亂霆馳彌洞府
주용옥쇄철청공珠聳玉碎徹晴空
유인막도여산승遊人莫道廬山勝
수식천마관해동須識天磨冠海東
한 줄기 세찬 물결 구렁으로 쏟아지니
총총하게 괴는 용늪 백길 물을 이루었다
샘물 날아 거꾸로 쏟아져 은하수가 의심되고
성난 폭포 비겼으니 흰 무지개 완연한데
천둥소리 우박 골짜기에 가득 차고
구슬 쪼각 옥부스러기 공중으로 날아가니
나그네여! 여산(廬山)이 낫다고 말하지 마라,
모름지기 천마산이 해동에서 으뜸임을 알아야 하리!
박연폭포(朴淵瀑布) 시(詩)는 황진이(黃眞伊)의 칠언율시(七言律詩) 측기식(仄起式) 시(詩)다. 압운운통(押韻韻統)은 상성운통(上聲韻統) 중에 종통(腫統) 농(壟), 공(空), 상평성(上平聲) 동통운족(東統韻族)에서 총(潨), 동(東)으로 작시(作詩)했다. 송도삼절(松都三絶)은 황진이(黃眞伊), 박연폭포(朴淵瀑布), 서경덕(徐敬德)을 일컫는다. 황진이도 송도삼절(松都三絶)을 박연폭포(朴淵瀑布)로 꼽았다. 그리고 시(詩)도 남겼다. 박연폭포는 개성(開城) 개풍군 천마산 기슭에 있다. 시구(詩句)에 보면 중국(中國)의 여산(廬山)을 말하지 말라고 했다. 여산(廬山)은 소동파(蘇東坡)가 중국 최고 명승지(名勝地)라고 자랑하던 곳이다, 황진이(黃眞伊)는 박연폭포(朴淵瀑布)를 해동(海東)의 으뜸이라고 자랑을 하고 있다. 애향심(愛鄕心)도 대단한 황진이다. 황진이가 남긴 시(詩)는 상당하다. 송도삼절(松都三絶)은 황진이(黃眞伊)의 절색(絶色)과 박연폭포(朴淵瀑布) 절승(絶勝)과 서경덕(徐敬德)은 도덕적(道德的) 절륜(絶倫)을 말한다. 황진이는 당대의 명기(名妓)로서 미색(美色)이 뛰어날 뿐 아니라, 시(詩)나 음률(音律)에도 최고라고 해서 절색(絶色)이라고 한다. 미색(美色)과 기예(技藝)가 뛰어났다는 말이다. 박연폭포(朴淵瀑布)는 절경(絶景) 중에 최고(最高) 명승지(名勝地)라고 해서 절승(絶勝)이라고 한다. 폭포(瀑布) 명(名)이 박연(朴淵)이라 붙은 것은 옛날 박진사(朴進士)라는 사람이 못 위에서 피리를 부니, 용녀(龍女)가 감동하여 서로 사랑하여 남편의 연을 맺었다는 데서 유래해서 박연폭포((朴淵)瀑布)라 했다 한다. 서경덕 선생은 황진이(黃眞伊)가 유혹(誘惑)을 해도 요지부동(搖之不動)이라 해서 절륜(絶倫)이라고 한다. 금계필담(錦溪筆談)이란 책에 보면 황진이와 벽계수(碧溪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금계필담은 조선말엽(朝鮮末葉) 학자인 서유영(徐有英)이 쓴 책이다. 저자가 칠십 평생을 보고 듣고 알고 느낀 것과 역사에 누락(漏落)된 한국인의 미담(美談) 일사(逸事)를 모아 놓은 책이다. 금계필담에 황진이와 벽계수편에 보면 황진이는 송도에 이름난 기생으로 미색(美色)과 기예(技藝)가 뛰어나서 그 명성(名聲)이 온 나라에 가득했다.
왕족(王族) 중에 벽계수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황진이를 한번 만나 보려 했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여 손곡(蓀谷) 이달(李達)에게 계책(計策)을 물었다. 이달이 말하기를 황진이는 풍류객(風流客)이 아니면 마음을 사기가 어려운데 공은 내 말을 따르겠는가? 내 마땅히 그대 말을 따르겠네. 공은 본래 거문고를 잘 타니 황진이 옆집 누각에 올라 거문고를 한 곡 탈것 같으면 황진이가 반드시 마음이 움직여서 그대를 보러 올 것이니. 그대는 보아도 못 본체하고 일어나 곧장 나귀를 타고 돌아오면 되네. 그러면 황진이가 반드시 자네 뒤를 따라올걸세. 따라와도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게. 그러면 그대 뜻을 이루게 될 것일세. 벽계수는 그의 말을 따라서 당나귀를 타고 동자를 거문고를 들게 해서 황진이 집을 지나 누각에 올라서 거문고 한 곡을 탄 후 곧장 당나귀를 타고 오니, 과연 황진이가 뒤를 따라왔다. 황진이가 동자에게 물어 그가 벽계수(碧溪守)라는 것을 알고 노래를 불렀다. 청산리 벽계수야 쉬지 않고 감을 자랑마라(靑山裏碧溪水 莫誇去未休) 한번 큰 바다에 이르면 다시 보기 어려우니(一到滄海難再見) 어찌 잠깐 쉬어가지 않을 소냐.(那得不少留) 명월이 공산에 가득하니(明月滿空山) 놀다 간들 어떠하리(臨去願一游), 한시(漢詩)는 그대로 번역하면 이렇다. 시도 음식과 같아서 양념을 쳐야 맛이 난다. 똑같은 시(詩)여도 윤색(潤色)을 하면 이렇게 맛깔스럽다. 청산리 벽계수야 쉬이 감을 자랑 마라, 일도 창해 하면 다시 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 공산 하니, 쉬어간들 어떠하리. 벽계수가 이 노래를 듣고 더 이상 가지 못하고 취적교(吹笛橋)에 이르러 뒤를 돌아보다가 나귀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황진이가 손벽을 치면서 웃으면서 말하기를 벽계수는 멋진 선비가 아니라 풍류객에 불과했구나! 하고 돌아보지도 않고 가버렸다. 벽계수는 스스로 부끄러워 한탄했다고 한다. 황진이가 벽계수(碧溪守)를 벽계수(碧溪水)로 바꾼 것도, 시재 재치가 있다. 벽계(碧溪)는 별호(別號)라고, 하기도 하고, 또는 고을 이름이 하기도 한다. 수(守)는 왕족에게 내리는 관직의 하나라고 한다. 그러면 벽계수는 누구인가? 세종대왕 열일곱 번째 아들인 영해군(寧海君)의 손자(孫子)인 이종숙(李終叔)이라고 한다. 황진이 하면 벽계수가 떠오르는 것은 황진이가 기생이지만 아무에게나 마음을 주는 기생이 아닌 것이 드러났다. 결국, 벽계수는 뜻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기록이 되어있다. 황진이 하면 또 떠오는 것은 당대 최고의 기철학(氣哲學)자인 서경덕선생(徐敬德先生)과 일화다. 도덕군자(道德君子)로 알려진 서경덕을 유혹하는 내용은 가지가지다. 비 오는 날 하얀 속치마 저고리를 입고 찾아갔다는 이야기도 있고. 공부를 핑계로 몇 달을 같이 지냈다고 하고 하기도 한다. 유혹이 좀 그럴듯하려면 비에 젖는 여인의 몸이라야 하지 않겠는가? 착 달라붙은 여인의 요염한 모습은 어지간한 남정네는 모두가 다 넘어간다. 그런데 서경덕은 오히려 황진이를 반갑게 맞으면서 아예 젖은 옷까지 벗겨 주었다는 것이다.
거기다 젖은 몸까지 닦아주면서 이부자리를 펴주고 몸을 말리라고 했다 한다. 그리고 서경 덕 선생은 태연하게 책을 읽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콧대 높은 황진이도 당황(唐慌)할 것은 뻔한 이치다. 그렇게 밤이 깊어지자 서경덕 선생이 황진이 옆에 누었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자 코를 골고 자버리는 것이다. 아침에 황진이가 눈을 떴을 때는 서경덕은 벌써 일어나서 밥까지 차려놓았다고 야사에 전하고 있다. 이 도학자의 눈에는 황진이를 여자로 보지를 아니했다. 그래서 황진이는 평생을 스승으로 섬겼다는 일화이다. 그때 당시 서경 덕 선생의 사회적 위치나 나이 차이가 워낙 커서 그랬을 것이다고도 한다. 그런데 남녀 문제가 어디 나이로 됩니까? 어림도 없는 소리다. 황진이 같은 미색에도 유혹되지 않는 서경 덕 선생은 그 후로 도덕군자로 칭송을 받게 된다. 서경덕 선생의 저서로는 원리설(原理說), 이기설(理氣說), 태허설(太虛설) 귀신사생설(鬼神死生說) 등이 있다. 선생은 이(理)보다 기(氣)를 중시(重視)하는 주기철학(主氣哲學)을 정립했다. 태허(太虛) 설에서는 우주의 근본 원리를 태허(太虛) 또는 선천(先天)이라고 하였다. 태허(太虛)에서 생성(生成)된 만상(萬象)을 후천(後天)이라고 하였다. 귀신 사생론에서는 인간의 죽음도 우주의 기에 환원된다는 사생일여(死生一如) 주장하였다.
서경덕 선생은 이렇게 자기 철학을 정립한 당대 최고 유학자였다. 그런 위치에 있는 학자가 유혹에 넘어가겠습니까? 황진이 하면 또 떠오르는 것은 당대의 불가(佛家)에 최고 선승(禪僧)으로 알려졌던 지족선사(知足禪師)와의 일화이다. 지족선사를 유혹(誘惑)해서 파계(破戒)를 시켰다는 일화도 가지가지다. 비 오는 날 갔다고 하기도 하고, 남편 49재기도 핑계를 대고 갔다고 하기도 한다. 어떻든지 지족선사는 황진이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세 번째는 황진이 하면 떠오는 것이 소세양(蘇世讓)과 일화이다. 소세양은 대제학(大提學)을 지낸 문신(文臣)이다. 그는 항상 친구들에게 장담하기를 여색(女色)에 유혹(誘惑)되는 것은 남자(男子)가 아니다. 라고 장담(壯談)을 했다는 것이다. 개성(開城)에 황진이가 있다고 하나 그녀와 30일만 살고 나면 나는 미련 없이 떠날 수가 있다고 했었다. 그러나 황진이와 30일을 살고 마지막 되는 날 황진이가 송별 소양곡(送別蘇陽谷)을 지어주자 황진이를 떠나지 못하고 6개월을 더 살았다는 일화이다. 그때 소세양이 자탄(自嘆)하면서 하는 말이 나는 사람이 아닌가? (吾其非人哉) 마음이 동하여 다시 머물렀다(爲之更留)고 했다. 황진이(黃眞伊) 같은 미색(美色) 색정(色情) 앞에 소세양(蘇世讓) 남정네의 자존심(自尊心)이 무너지는 자괴(自愧) 자탄(自嘆)의 탄식(歎息)이다. 그 후로는 황진이와 재회(再會)가 없는 걸로 보면 사회적(社會的) 명망(名望)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황진이는 많은, 남자들과 교류를 했다. 그 일화는 다 들을 수가 없다. 황진이를 소재로 삼는 것은 그가 남긴 시(詩) 때문이다. 그 당시 사회적(社會的) 반상(班常) 신분제(身分制) 규범(規範)의 굴레만 아니었으면 많은 명시(名詩)를 남겼을 것이라는 아쉬움 때문이다. 황진이가 남긴 시(詩)는 시격(詩格)이 높다. 전해진 것 중에 일부 시를 한번 봅시다. 소세양과 헤어질 때 읊었다는 별소 양곡(別蘇讓谷)이 있다. 달빛 아래 오동잎 모두 지고, 서리 맞는 들국화 노랗게 피었구나! 누각 높아 하늘은 자 남짓한데, 오가는 술잔 취하여도 끝이 없네! 물소리는 거문고에 마냥 차갑고, 매화는 피리에 서려 향기로워라, 내일 아침, 님 보내고 나면 사무치는 정 물결처럼 끝이 없으리! <月下梧桐盡 霜中野菊黃 樓高天一尺 人醉酒千觴 流水和琴冷 梅花入笛香 明朝相別後 情與碧波長> 오언율시(五言律詩) 측기식(仄起式) 시(詩)다.
압운(押韻)은 하평성(下平聲) 양통(陽統) 운족(韻族) 중에 황(黃), 상(觴) ,향(香), 장(長) 으로 근체시(近體詩)에 맞게 한 운통(韻統)으로 명시(名詩)를 남겼다. 양반가(兩班家) 사대부(士大夫)들이 미칠만한 시재(詩才)다. 석곡(暘谷)은 소세양의 호(號)다. 헤어지기 전날 밤에 읊은 시(詩)다. 시(詩) 내용으로 보아서는 오동잎 지고 누런 국화꽃이 피는 가을, 밤인가 보다. 전체적으로 시정(詩情)이 가을의 정취(情趣)를 물씬 느끼게 한다. 쓸쓸하고 애잔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헤어졌는데 소식이 없으니 얼마나 애가 타겠습니까? 그래서 읊은 시(詩)가 황진이 야사하(夜思何)는 소세양(蘇世讓)과 동거하고 헤어진 뒤에 유일하게 사랑했던 남자 소세양을 그리는 애타는 마음으로 시비(侍婢) 동선이를 시켜서 한양에 보냈다는 시이다. 달 밝은 밤에 그대는 누구를 생각하나요? 잠이 들면 그대는 무슨 꿈을 꾸나요? 붓을 들면 때로는 내 얘기도 쓰나요? 나를 만나 행복했나요? 나의 사랑을 믿나요? 그대 생각하다 보면 모든 것이 궁금해요? 하루 중에 내 생각 얼마만큼 하나요? 바쁠 때 나를 돌아보라 하면 괴롭나요? 반갑나요? 참새처럼 떠들어도 여전히 정겨운가요?<蕭寥月夜思何思 寢宵轉輾夢似樣 問君有時錄忘言 此世緣分果信良 悠悠憶君疑未盡 日日念我幾許量 忙中要顧煩或喜 喧喧如雀情如常> 이시는 칠언율시(七言律詩) 평기식(平起式) 시(詩)다. 압운(押韻)은 거성(去聲) 치통(寘統) 운족(韻族) 중에서 사(思), 양통(漾統) 운족(韻族)중에서 양(樣), 양(良), 량(量), 하평성(下平聲) 양통(陽統) 운족(韻族) 중에서 상(常), 평성(平聲) 측성(仄聲) 운족(韻族)으로 작시(作詩)를 했다. 시어(詩語)가 부족해서 없으면 이렇게 여러 운통(韻統) 운족(韻族)으로 작시(作詩)를 하나 근체시(近體詩)에서는 불허(不許)한다. 떠나고 난 소세양에게 투정어린 애교 시로 묻고 있는 시이다. 30일을 같이 살고, 또 6개월을 살, 붙이고 살았으니, 정도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토록 구구절절(句句節節)이 얼마만큼 나를 생각하느냐고 묻고 있다. 그러나 소세양은 답(答)한 시가 없다. 정말 냉찬 사내다. 황진이(黃眞伊)가 그리움에 사무쳐서 연시(戀詩)를 보냈는데도 화답시(和答詩)가 없으니, 황진이 속이 탈만도 하다. 그래서 그런가? 황진이의 야지반(夜之半) 시(詩)는 정말 맛깔 나는 시(詩)다. 동짓날 기나긴 밤을 한 허리 베어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른님 오시는 밤이 어 든 굽이굽이 펴리라. <截取冬之夜半强 春風衿裡屈轓藏 有燈無月朗來夕 曲曲寸寸長> 이 시는 칠언절구(七言絶句) 측기식(仄起式) 시(詩)다. 하평성(下平聲) 양통운족(陽統韻族) 중에 장(藏) 장(長)으로 작시(作詩)를 했다. 밤도 동짓날 밤이 가장 길다. 지구와 태양이 가장 먼 원일점(遠日點)에 있기때문에 밤이 길다. 그것을 황진이는 동짓날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낸다고 했다. 혼자 있기에는 너무나 긴긴밤이라 반을 베어낸다고 했다. 연모(戀慕)의 정(情)을 시정(詩情)으로나마 만끽(滿喫)을 하고 있다. 정말 너무 애처롭다. 손님도 다 떠나간 기방(妓房)에서 외롭고 쓸쓸하게 옛 임을 그리는 심정이 그대로 묻어나고 있다. 다음은 상사몽(相思夢) 시(詩)이다. 그리워라, 만날 길은 꿈길, 밖에 없는데, 내가 임 찾아 떠났을 때, 임은 나를 찾아 왔네, 바라거니 언제일까? 다음날 밤 꿈에는 같이 떠나 오가는 길에서 만났으면<相思相見只憑夢 儂訪歡時歡訪儂 遠使同作路中逢 一時同作路中逢> 상사몽시(相思夢詩)는 칠언절구(七言絶句) 측기식(仄起式) 시(詩)다. 압운(押韻)은 상평성(上平聲) 동통운족(東統韻族) 중에 몽(夢), 봉(逢)으로 작시(作詩)했다. 꿈에서라도 만나고 싶은 임. 황진이가 그토록 그리워하는 임은 누구였을까? 소세양(蘇世讓) 이었을까? 아니면 서경덕(徐敬德)이었을까? 그냥 읊어본 시(詩)였을까? 정말 궁금하지 않습니까? 황진이가 남긴 시를 보면 소세양(蘇世讓)이 아닐까? 한다.
어 져 내일이야 시(詩)를 보면 또 이별한 임을 그리워하는 시(詩)다. 어 져 내일이야 그런 줄을 몰랐던가? 이시랴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태어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있으라고 하면 있었을 턴데 잡지 않고 보내고 그리워하는 것을 나도 모르겠다고 했다. 내 언제 무신(無信)하여 임을 언제 속였관대, 월침 삼경(月沈三更)에 온 뜻이 전혀 없네, 추풍에 지는 잎 소리야 낸들 어이 하리. 이토록 황진이의 마음을 못 잊도록 사로잡은 임은 누구였을까? 소세양이 아닐까? 하는 사람도 있다. 화담(華潭) 서경덕(徐敬德) 선생이 황진이에게 준 시(詩)가 있다. 마음이, 어린 후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 만중운산(萬重雲山)에 어느 임이 오리마는 지는 잎 부는 바람에 행여 귄가 하노라. 이 시는 어느 날 황진이가 서경덕을 찾아와서 소세양과 이별한 뒷이야기를 듣고 위로 차 준 시(詩)라고 한다. 네 마음이 어리석구나. 서울로 돌아간 양곡을 기다리다니, 하고. 일깨워 준 시(詩)라고 한다. 황진이의 시중에는 소백주(小栢舟) 시(詩)가 있다. 잣나무 작은 배라는 시이다. 저 강 한가운데 떠 있는 조그만한 잣나무 배, 몇 해나 이 물가에 한가로이 매였던고, 뒷사람이 누가 먼저 건넜느냐 묻는다면, 문무를 모두 갖춘 만호후라 하리.<汎彼中流小栢舟 幾年閑繫碧波頭 後人若問誰先渡 文武兼全萬戶侯> 이 시도 칠언절구(七言絶句) 측기식(仄起式) 시(詩)다. 하평성(下平聲) 우통운족(尤統韻族) 중에 두(頭), 후(候)로 작시(作詩)했다. 기녀(妓女)지만 시재(詩才)가 뛰어나다. 선비 사대부(士大夫)도 끙끙대는 운통운목(韻統韻目) 한시(漢詩)를 맛깔스럽게 잘도 진 황진이(黃眞伊)이다. 그러나, 저러나 황진이가 목메어 님이라고 부르는 소세양(蘇世讓)은 황진이(黃眞伊)와 석 달을 살을 붙이고 사랑하고도 시(詩) 한 편이 없다. 왜? 그랬을까? 가 화두(話頭)다. 화옹이 지난번에 출판(出版)한 고전 속에서 배우는 지혜에서 황진이가 남긴 시(詩)는 모두 채집(採集)해서 출판했다. 그래서 황진이 한시(漢詩)는 이쯤 해서 줄입니다. 오늘은 황진이 한시(漢詩) 세계(世界)를 반추(反芻)해 보았습니다. 여여법당 화옹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