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차 대전이 끝나고, 유럽의 각국들은 각자의 위치에 따라 급격한 변화를 시도한다.
영국 프랑스를 비롯한 서유럽 국가들은 국가 자본주의(사민주의, 복지국가)의 길로, 독일 이탈리아 중유럽 국가들은 국가 사회주의 (파시즘)의 길로, 동유럽의 맹주 소련은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주의 혁명은 산업국가인 서유럽이 아닌 농업국가인 소련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고교 무상교육을 실현할 예정이다. 영유아 양육비와 노령연금에서도 보편적 복지로 완성할 예정이다. 대학 등록금도 가난한 서민들에 있어서는 상당한 혜택을 받고 있다. 우리가 보수라고 믿었던 박근혜 정부가 바야흐로 복지국가를 정책의 기본틀로 잡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유럽 복지국가에 비해서는 많이 부족한 수준이지만, 그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박근혜가 속해있는 보수당에서 이런 짓(?)을 할 줄 몰랐다는 것이다. 진보 좌파당의 전유물을 박근혜가 가로채다니!
그러나, 그것은 가로 챈 것이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이다. 자본주의의 폐단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비록 보수당이라 할지라도 정치를 이끌어 갈 수 없었다는 점이다.
아마, 좌파 진보당이 정권을 잡았다고 하더라도 박근혜 수준의 복지정책에서 별로 앞서나갈 수는 없을 것이다.
1차 대전의 원인은, 식민지 쟁탈전이라는 먹이감을 사이에 두고 벌렸던 자본주의의 극단의 페단이 각국을 덮쳤기 때문이었다. 비록 당시에는 자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각국의 노고에도 불구하고 파시즘과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형태를 띠기는 했으나, 그것은 당시 유럽 자본주의 형식에서는 한 발자국도 진일보 하지 못한 형태였다. 파시즘이라는 국가사회주의나 복지국가의 형태를 취한 사민주의나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 소비에트 국가는 큰 줄기에서는 같은 것이었다.
강도에 있어서 차이가 있었지만, 생산수단의 국가 장악이라는 점에서는 같았다는 것이다. 다만, 시장을 규제하는 강도에 따라서, 또는 민주주의 제도라는 점을 협박하는 강도에 따라 국가의 형태가 달랐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못했다. 결국은 모든 나라가 더 심화된 자본주의 국가로 만났다는 것이다.
결국은 모든 나라가 국가 독점 자본주의에서 한 걸음도 벗어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생산수단과 시장의 규제에 대한 강도에 차이가 있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과거, 중국, 소련이나 그리고 현재의 북한 역시도 커다란 의미의 국가 독점 자본주의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진정한 의미의 사회주의는 실현된 적이 없으며, 변형된 자본주의 국가만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사민주의로 가는 길은 쉽다. 많은 예산을 복지에 쏟아 부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해결 할 수 없다.
사민주의는 오히려 자본주의를 심화시킬 뿐이다. 국가 자본주의에서 파시즘이나 국가 독점자본주의 국가로 이행하는 과정은 유럽의 국가들이 자 보여주었고, 결국은 그것 역시 아무런 소용도 없는 짓이었고, 그것 역시 자본주의의 변형된 형태였을 뿐이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생산수단의 장악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오히려 생산수단의 국가적 장악 보다 사회적 공유가 더 중요하고,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장의 변화이다. 시장의 국가 규제가 아니라, 자유로운 개인들의 공유물인 시장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일까?
협동조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