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官 21명 중 1명만 차단… 이런 먹이사슬 LH뿐이겠나
지하 주차장에서 철근을 빼먹은 아파트의 감리를 맡은 한 건축사 사무소는 홈페이지에서 임원들의 화려한 경력을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임원 65명 가운데 22명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출신이었고, 국토교통부, 법무부, 지방자치단체, 심지어 군(軍) 출신까지 포함하면 임원 10명 중 8명이 이른바 ‘전관’이었다. 수주의 비결은 설계 능력이 아니라 로비 능력이었던 셈이다. 철근 누락 사태가 터지자 회사의 자랑은 수치가 됐고, 홈페이지는 폐쇄됐다.
▷LH는 2021년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이 불거지자 전관 특혜를 막겠다며 재취업 심사 대상을 ‘부장급 이상’(2급·500여 명)으로 확대했다. 하지만 성긴 그물은 유명무실했다. 최근 2년간 공직자윤리위원회의 퇴직 공직자 취업 심사를 받은 LH 출신 21명 가운데 재취업이 막힌 건 단 1명뿐이었다. 직무 연관성이 낮다는 이유로 심사를 통과한 이들이 철근을 빼먹은 감리업체 등에 안착했다. 실무자인 차장급(3급)들이 일찌감치 이직하는 사례도 늘었다.
▷재취업 심사가 허술하지만 아예 피하는 방법도 있다. 공직자윤리법 취업 심사 대상인 ‘자본금 10억 원 이상, 연간 거래액 100억 원 이상’이라는 기준에 미달하는 업체로 가면 된다. 최근 5년간 LH로부터 감리를 가장 많이 수주한 업체도 이 기준에 해당하지 않을 정도니 사실상 의미 없다. 똘똘한 퇴직자를 잡으면 업계 무명에서 스타로 떠오르는 건 한순간이다. LH 고위직 출신이 합류한 신생 감리업체는 설립 4년 만에 LH에서 160억 원대 계약을 따내기도 했다.
▷건축, 도로, 철도, 항만, 수자원 등의 분야에서 발주처 ‘OB(전관)’ 한 명 영입하지 않고 발주처와 거래하는 업체는 사실상 없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전관을 영입해 회장, 부회장, 사장, 전무 등의 직책을 준다. 전 직장에서의 위치에 따라 직급과 연봉이 대략 정해져 있다. 차량, 사무실, 법인카드 등도 준다. 이들에게 떨어진 임무는 오직 수주다. 발주처와 꾸준히 접촉하며 사업 계획을 미리 입수하고, 심사 과정에서 ‘후배’들에게 힘을 발휘한다. 보통 3년 정도는 약발이 먹힌다고 한다.
▷건설 카르텔에 대한 비판이 커지자 정부는 공정거래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까지 총동원해 조사에 나섰다. 제 발이 저린 LH는 ‘반카르텔 공정건설 추진본부’를 신설했다. 하지만 회의적인 시선이 많다. LH는 2년 전에도 ‘조직 해체 수준의 혁신’을 하겠다고 했지만 이번 철근 누락 사태를 통해 공수표였음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반카르텔 본부’가 필요한 건 사실 LH만도 아니다. ‘전관’, ‘낙하산’, ‘○피아’ 등 다양한 이름을 내건 부정과 특혜가 우리 사회 곳곳에 독버섯처럼 퍼져 있다.
김재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