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으로 가는 길 마지막 대기소의
비참한 현실 늙고 병든 부모를 한번
들어가면 죽어야만 나올 수 있는
요양시설을 보내 부모님의 슬픈
얼굴을 마음 아프게 보는 자식이
과연 몇명이나 될까요 !
평생을 고생으로 고이 고이 키워온
자식들,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 손녀들,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참고, 모은 모든 것,
정든 집과,가족과 살아 온 힘들었던
서러움과 짧았던 행복의 순간들
모든 인연들과 이별하는 날
똑바로 쳐다 보지도 않는 자식들
면전에서 애써 슬픔을 보이지 않으려
굳은 얼굴에 미소지으며 내 걱정하지
말고 잘 살라는 부모님의 힘없는
한 마디가 과연 얼마나 자식들의
가슴에 전해질까요
마지막 가야하는 피할 수없는 외롭고
고통스런 저승길 대기소의 우리나라
요양시설의 현실이 일반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실상은
지옥보다도 더 비참하다
간병사들은 병원 소속 직원이 아닌
대개 중국인들이며 센타에서 파견
나온 사람들로 병원측의 말도 잘
듣지 않고 환자를 짐승이나 물건
대하듯 학대를 하며 한국인 요양
보호사도 대다수 마찬가지이다
돈 받고 일하지만 그들은 요양
보호사가 아닌 요양학대사 들이다
죽어가는 가냘픈 목소리로 물을
찾아도 잘 주지 않는다고 한다
이유는 먹으면 대소변의 기저귀
갈기가 귀찮아서란다 모르는 척
휴대폰만 들어다 보고 있다
특별히 개인적으로 돈을 주고
고용한 단독 요양보호사도
별반 다를바가 없다
답답함을 참을수 없어 자식들에게
연락을 부탁해도 소용이 없고
어쩌다 자식들이 찾아 오면 집으로
데려가 달라고 애원해도 부질없는
현실은 비참하고 냉혹하다
자식들은 모두 바쁘고 집에서는
모시기가 불가능하단다
요양시설은 늙어서 세상을 떠나기 전
거처야 할 마지막 코스이며 누구도
거부될 수 없고 멀지않아 가야하는
생지옥이다
남의 일같고 나는 가지 않아도
될 것으로 생각 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며 착각일 뿐이며
시간은 점점 어둠의 그림자가
코 앞까지 닥아 오고 있다
누구나 죽을 때는 고통없이 갈 수
있길 바라지만 마지막 격어야
하는 고독과 아픔은 생에 있어서
가장 큰 고통이다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인간이 아닌 AI가 간병하는
시대가 빨리빨리 오길 기대해 본다
사람이 잠자리에 들듯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죽음의 복이 참으로 큰 복이다
아래는 외국의 사례이다
스코틀랜드의 어느 작은 노인 요양
시설에서 할머니 한분이 생을 마감
하였고. 요양보호사들이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시(詩) 한편을
발견했다
詩의 내용에 감동받은 요양보호사
들은 복사하여 돌려 보았고 그 중
한 사람이 북 아일랜드 정신건강
학회 뉴스지의 크리스마스 지에
실리게 했다고 한다
곧 바로 동영상으로 편집 되었고
인터넷을 타고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1, 내 용
요양 보호사님들 무엇을 보시나요?
댁들은 나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
현명하지도 않고 변덕스러운 성질에
초점없는 눈을 가진 투정이나 부리는
쓸모없는 늙은 노인으로만 보았나요?
음식을 먹을 때 흘리고 대답을
빨리 못한다고 큰소리로 나무랄 때
나는 당신들이 조금만 더 노력해
줄 것을 바랬습니다
당신들이 주먹질을 할 때는
맞으면서 잘 움직여지지 않는
팔로 헛 손질이라도 하고 싶었다오
댁들이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가도 이해하지 못하고
걸핏하면 양말이나 신발 한 짝을
잃어 버리는 노인네로 밖에는
안 보였나요?
저항하든 안하든 목욕시킬 때는
설거지통에 그릇만도 못한 취급에
눈물도 쏟았지만 흐르는 물에
희석되어 당신들은 보지 못했지
음식을 먹여주는 댁들의 눈에는 가축
보다 못한 노인으로 비추어 졌던가요?
댁들은 저가 그렇게 밖에는 안보였나요?
제 팔에 든 수 많은 멍자국들이
그냥 망가진 도라지 꽃으로 보이던가요.?
제발 나를 그런 식으로 돌보지 말아주세요
온몸에 멍이 들어도 아픔을 삭여야만 했던
내가 누구인지 지금부터 말하겠습니다
내가 열살 어린아이였을 때
사랑하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있었고
형제 자매들도 있었답니다
열 여섯살이 되었을 때는 발에 날개를
달고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다녔답니다
스무살 때는 평생을 사랑하고 살아갈
반려자를 만났고
스물 다섯살에는 행복한 가정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여운
자녀들이 태어 났고요.
서른살이 되었을 때는 아이들이 쑥쑥
자랐고 마흔살이 됐을 때는 자식들이
성장해서 곁을 떠났지만 내 곁에는
믿음직한 남편이 있어 외롭지않았어요
오십이 되었을 때는 자식들이 직업을
갖고 돈을 벌며 손주를 안겨 주었을 때
비로소 인생의 참 맛을 느끼는
자신을 알기도 했답니다
마침내 어두운 날이 찾아와 옆에 있던
남편이 하늘나라로 먼저 가면서 나는
두려운 나머지 몸이 오싹해졌답니다
자식들이 모두 저들의 자식을
키우는 모습을 보고 나의 지난
날을 떠올리기도 했답니다
나는 이제 볼품없이 늙어 바보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들을 보면서 세월은
참으로 잔인하다는 생각을 해본답니다
몸은 망가지고 우아함과 활기는
떠나버렸고 한 때는 마음있던 것들이
지금은 무딘 돌이 되었답니다
시체와도 같은 이 늙은이 마음속에는
아직도 어린이 같은 마음은 살아있어
가끔씩 다 망가진 이 가슴이 부풀어
오를 때가 있다오
지금이라도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
젊은 시절처럼 사랑도 해보고싶다는
꿈도 꾸어 본답니다
너무도 짧고 빨리 지나간 세월의
삶들을 생각하면서 영원한 것은
없다는 엄연한 현실을 받아
들이기로 했답니다
요양보호사님들 부디 투정이나
부리는 늙은이로 보지 말고
좀 더 자세히 나를 봐 주세요
당신의 부모님은 아니나
부모님일수도 있답니다
가축에게 모이 주듯 하지마세요
나는 그냥 먹고 싶답니다
몸에 멍들게 하지 말아 주세요
가슴에 멍을 안고 떠나게 하지
말아 주세요
사는동안 나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이상은 외국의 사례이지만
우리나라의 요양시설은
더욱 비참하다
부디 부모님이나 배우자를 돈으로
요양보호시설에 보내지 마세요
자식으로서 배우자로서 인간으로서
내가 감당해야 할 마지막 도리요
나의 몫이요 책임이다
인생사 덧 없고 칠십이 넘으면 이미
저승으로 가는 길을 접어 들어 한참
걸어 왔고 생명은 꺼저가는 풍전
등화와 같은 것이며 삶의 마지막 가는
길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잔인하고
슬픈 숙명의 길이다
나는 오늘도 아내의 간병을 위해서
서울행 SRT 열차에 오른다
-카톡 받은글
첫댓글
째각째각 시한폭탄처럼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요즘 사는게 사는게 아녀
인생의 마무리 길이 슬프고
기약없이 포장되었군요
축복은 못 받더라도 자연스럽게
집에서 임종해야 하건만
세태가 그렀습니다
누굴 탓하겠습니까
비싼 요양원에 가서 개인 요양사 쓰면돼
난 갖은게 없어 밤마다 빌고 또 빌지
자는듯 가게 해달라고
요양시설이 없다면 차라리 낫지 않을까
하지만 그것도 문제일듯
곧 다가올 나의 미래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