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충실한 종과 불충실한 종의 비유에서
각자가 받은 탈렌트로
하느님 나라를 위해 얼마나 충실히 일했는지를 물으신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받은 탈렌트의 양이 문제가 아니라
그 탈렌트로 얻은 삶의 결실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치신다(복음).
예수님 시대에 한 데나리온은 일꾼의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화폐 단위 한 탈렌트는 6천 데나리온에 해당하는 것으로,
환산하면 노동자가 6천 일을 일해야 얻을 수 있는 아주 큰 돈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특별히 타고난 소질이나 재능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
탈렌트(talent)는 바로 여기에 어원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탈렌트를 소질이나 재능으로만 이해하면 왠지 불공평해 보입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에서 보듯이 누구는 다섯 탈렌트를 받았는데,
누구는 한 탈렌트밖에 받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TV에 나오는 숱한 재주꾼들이나 주변의 재능 있는 사람들과 비교하면
왠지 자신은 하느님께 받은 것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이렇게 복음 속에 나오는 탈렌트를 세상 것으로 이해하면
불공평하다고 생각되며 불만스러워집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탈렌트는 세상의 허황된 것을 얻으라고 주는 재능과 다릅니다.
복음적 탈렌트의 본뜻은 하느님께서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신 이 사랑의 능력으로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고자 희생하고 봉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해하면 탈렌트를 많이 받았다고 좋아할 것도 없고,
못 받았다고 불만스러워할 것도 없어집니다.
많이 받은 사람은 그만큼 더 많이 희생해야 하고,
적게 받은 사람은 적게 받은 대로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서 봉사하면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면 다섯 탈렌트를 받고 두 배로 늘린 사람이나,
두 탈렌트를 받고 두 배로 늘린 사람이나 모두에게
주님께서는 똑같이 칭찬을 해 주십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자리에서
아름다운 사랑의 세상을 건설하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한 탈렌트는 노력한 결과가 중요합니다.
그 대가는 공평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인 탈렌트의 목적은 '소유'가 아니라,
이것을 통하여 '성장'하는 것입니다.
탈렌트는 이기적인 축적이 아니라 이웃과 나누며 확장하는
하느님의 선물이자 '책임'의 무게입니다.
이 책임에 대한 심판은 종말의 날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은총과 책임,
그리고 성실한 삶으로 결산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