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와 ‘얼죽아’
- 문하 정영인 수필
한국의 커피문화 중 세계인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이 ‘얼죽아’라고 한다. 외국인들은 대개 겨울에는
뜨거운 커피, 여름에는 차가운 커피를 마시는데, 특히 한국 젊은이들은 여름이나 겨울이나 주로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신다는 것이다. ‘아아’는 커피 아이스 아메리카노, ‘얼죽아’는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줄임말이란다.
도시 변두리인 우리 동네 앞길에도 서너 집 건너 여러 가지 커피집이 있다. 그 앞에는 으레 커피를
테이크 아우트해 가려는 사람들로 붐빌 때가 있다. 거리를 다니다 보면 아이스 커피를 한 잔씩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그전에는 대개 젊은 층이었건만 지금은 아줌마·아저씨들도 꽤 많이 보인다. 커피 한잔에 6~7천원이
넘는 고급 커피집을 비롯하여 4~5천원 하는 중급 커피집, 지금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에 1,500원
하는 집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우리 같이 미군이 주던 C-레이션 박스의 커피를 처음으로 맛본 세대는
자판기 커피나 믹스 커피가 더 맛있다고 한다.
커피 신흥국가 중에서 한국처럼 커피에 열광하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하기야, 5천원 짜리 짜장면
먹고서도 육칠원짜리 커피를 마시는 국민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하기야 칼국수 먹고 이 쑤시는 꼴이다.
이렇게 한국인의 커피 사랑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세계적인 해외 커피 브랜드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세계적인 커피 브랜드 스타벅스를 비롯하여 한국에서 커피 3차 대전이 벌어지고 있다. 캐나다의 팀
홀튼, 일본 노커피, 미국 피츠 커피, 인텔린시아 그리고 커피계의 명품 바샤커피 등. 한국은 세계에서
커피 소비량 2위, 커피 수입 3위이니 세계 커피 브랜드들이 욕심 내는 커피국가이다.
거기다가 세계적인 공략에 나선 한국의 커피 믹스커피는 세계 곳곳에서 절묘한 커피와 설탕, 프림의
절묘한 조합은 세계인에게 커피 향을 퍼뜨리고 있다. 일명 막대커피, 다방커피라는 나에겐 일주일에
두 번 만나서 산책하는 모임이 있다. 두 회원이 커피를 가져오는 봉사를 마다하지 않는다.
겨울에는 뜨거운 커피, 여름에는 냉커피로 그윽한 커피 향속에서 담소를 한다.
‘한국 학생의 공부법’이 중국 수험생들에게 인기라고 한다. 스터디 카페에서 스스로 자신을 감금
하면서 공부하는 한국 학생들의 공통점은 아아(아이스 아메라카노) 곁에 두고 있다는 것. 그래서
그들의 몸속에는 피가 아니라 카페인이 흐르고 있을 것이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인 것 같다.
세계인이 커피에 열광하고 중독이 되가는 이유는, 어느 시인이 말했듯 악마같이 뜨겁고 검은
향기에 있지 않나 한다.
그런데 한국인은 왜 그리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메리카노)에 미치는가. 아마 한국인의 삶이 날마다
빨리빨리 돌아가야 하고, 젊은이들은 취직에 미쳐야 하고 결혼해서는 내 집 마련과 아이들 사교육비에
미치니 열불, 천불이 날 수밖에 없다. 그 열불을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식혀야 되지 않을까.
거기다가 정치판은 개판이라 천불이 안 날 수 있겠는가.
뒤차는 빨리 안 간다고 그새를 못 참고 빵빵 거린다. 단, 몇 초를 못 참고 경적을 울린다. 앞차 운전자는
점잖지 못한 말이 튀어 나올 수밖에 없다. 단 몇 초를 못 참아 사람을 죽이며 앞뒤를 가리지 못한다.
머리가 돌 지경으로 그런 상황이지만 그 후의 어둠의 생활을 망각한다.
이럴 때 아아가 필요하리라.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뜨거운 순간을 참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러면 단 몇 초 사이에 어둠의 나락으로 빠지는 것을 참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