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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의 가을 – 원효봉,백운대,문수봉,비봉,향로봉,족두리봉
1. 북한산 가을, 멀리는 노적봉
놀던 곳엔 흐르는 물 있기 마련인데
세속 떠난 마음은 흰 구름과 기대어 한가롭네
가을날 붉게 물든 단풍잎도 즐길만하니
후일의 약속 정녕 불등이 입증하겠지
游迹難敎流水在
遐心閑與白雲憑
秋天赤葉應堪賞
後約丁寧證佛燈
―― 가일(可一), ‘추사의 여정을 따라 「삼각산기행시축(三角山紀行詩軸」’에서
주1) 가일은 추사 김정희의 부친인 김노경(金魯敬, 1766~1837)의 자이다.
주2) ‘유수(流水)’는 유수고산(流水高山)의 고사를 인용한 듯하다. 거문고의 명인인 백아(伯牙)의 연주를 종자기(鍾
子期)가 잘 알아 “높은 산(高山)을 생각하고 타면 높은 산에 있는 것 같고, 흐르는 물(流水)을 생각하고 타면 흐르는
물에 있는 것 같다.”고 하였다. 이 고사에서 알아주는 사람을 칭하는 ‘지음(知音)’이라는 말이 생겼다.
(번역과 해제 : 석한남)
▶ 산행일시 : 2023년 11월 5일(일) 비, 바람
▶ 산행코스 : 북한산성 입구,서암문,원효암,원효봉,북문,상운사,대동사,백운대,용암문,일출봉,반룡봉,
시단봉(동장대),대동문,복덕봉,성덕봉,화룡봉,대남문,문수사,문수봉,승가봉,비봉,향로봉,수향봉,
족두리봉,독박골
▶ 산행거리 : 도상 14.8km
▶ 산행시간 : 8시간 5분(07 : 05 ~ 15 : 10)
▶ 교 통 편 : 전철과 버스 이용
07 : 05 – 북한산성 입구, 산행시작
07 : 32 - 서암문
07 : 50 – 원효암
08 : 08 – 원효봉(510m)
08 : 28 – 상운사, 대동사
09 : 00 – 약수암 쉼터, 휴식( ~ 09 : 10)
09 : 42 – 백운대(835.6m)
10 : 22 – 용암문, 일출봉(618m)
10 : 43 – 시단봉(동장대, 601m)
10 : 55 – 대동문, 휴식( ~ 11 : 05)
11 : 15 - ┫자 칼바위 능선 갈림길, 복덕봉(591m)
11 : 27 – 성덕봉(623m)
11 : 40 – 화룡봉(638m)
11 : 56 - 대남문
11 : 59 – 문수사
12 : 15 – 문수봉(727m)
12 : 55 – 승가봉(573m), 휴식( ~ 13 : 05)
13 : 15 – 사모바위
13 : 25 – 비봉(560m)
13 : 50 – 향로봉(535m)
14 : 35 – 족두리봉(367m)
15 : 10 – 독박골, 버스승강장, 산행종료
2. 북한산 지도
3. 산행 그래프
▶ 원효봉(510m)
오늘 산행은 내 놀던 옛 동산인 무등산을 가려고 했는데 비가 온다고 하여 이틀 전에 취소되었다. 무등산 서석대에
서 0.4km 떨어진 인왕봉이 57년 만에 개방되었다고 하여 너도나도 가보려고 했다. 전국에 걸쳐 비가 온다고 하니
어느 산을 물론하고 조망은 무망일 터라 가까운 북한산에 한창일 단풍이나 구경하자 하고 나선다. ‘북한산 단풍’하면
우선 윤석중 작시의 동요 ‘기러기’가 생각난다.
기러기 떼 기럭기럭 어디서 왔니
북쪽에서 날아오다 북한산에 들렸니
북한산 단풍 한창이겠지
이 담엘랑 단풍잎을 입에 물고 오너라
이 동요는 포스터(Stephen Collins Foste, 1826~1864)의 ‘주인은 차디찬 땅속에(Massa's in de Cold, Cold
Ground)’라는 애조 띤 곡조에 윤석중(尹石重, 1911~2003)의 시를 붙였다고 한다. 지금도 어떤 자(者)들은 그때가
살기 괜찮았다고 염장지르지만 대부분의 조선민족이 암울해 하던 일제강점기에 윤석중은 독립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구파발역에서 북한산성 방향인 1번 출구로 나오자 어둠 속에 비가 세차게 내린다. 한참 기다려 34번 버스가 온다.
이 이른 시간에 배낭 맨 등산객은 나 혼자다. 버스는 승강장을 여러 곳 지나지만 타거나 내리는 승객이 없어 교차로
교통신호등에서 잠시 멈출 뿐 북한산성 입구까지 곧장 간다. 북한산성 입구가 썰렁하다. 비 가린 승강장에서 우장
갖추고 나선다. 나는 이곳 주차장에서부터 북한산 연봉을 즐겨 감상한다. 안개는 백운대를 덮쳤지만 용출봉과 의상
봉까지는 당도하지 않았다. 의상봉의 돌올한 모습을 우러르고 그에 발걸음이 힘 받는다.
북한산성 탐방지원센터 앞 커피자판기에서 따뜻한 (노른자 없는)모닝커피 한 잔 뽑아 마시고 나서 원효봉을 향한다.
그간 가물었는지 북한천 계곡이 말랐다. 다리 건너고 둘레길 목책을 따라가다 철조망 두른 묘지군 지나고 산모퉁이
에서 보는 이 없는데도 얼른 목책을 넘는다. 예전에 원효봉을 오르는 그 서쪽 능선길이다. 나 같은 사람들이 많았는
지 인적이 뚜렷하다. 비는 멎었다. 주위가 점점 밝아온다. 높다란 성벽과 만난다. 성벽 밑을 왼쪽으로 돈다. 엷은
지능선을 넘고 넘는다.
성곽 보수공사 중인 밧줄을 잡고 성 위로 오를 수도 있겠으나 선답의 잘난 인적 쫓는다. 목책 넘어 효자리에서 오는
주등로와 만나고 서암문이다. 서암문(西暗門)은 성내에서 생긴 시신(屍身)을 내보내는 시구문(屍軀門)이라고도
불렀다. 이제 성곽 길을 간다. 원효암 0.8km, 원효봉 1.8km. 가파른 돌길 오르막이다. 조망 트일 데가 있을까 좌우
나뭇가지 사이를 기웃거리며 간다. 여장(女牆)을 통하여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다.
원효암. 암자에 들른다. 좁은 마당이 경점이다. 의상봉과 용출봉이 방금 전에 본 모습과는 판이하다. 의상봉의 흘립
한 북서벽이 후련하다. 원효암 스님은 휴대전화번호를 창문에 걸어놓고 출타하였다. ‘010’으로 시작하는 전화번호
가 어쩐지 스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 이 산중에서 속세를 늘 곁에 두고 있는 게 아닌가 해서다.
이 원효암이 겉으로 보기에는 누추하지만 원효봉을 이름 하게 한 명찰(名刹)이다. ‘元曉庵’ 현판 글씨가 단정하다.
4. 의상봉, 오른쪽 뒤는 용출봉. 북한산성 주차장에서
5. 오른쪽은 노적봉, 가운데는 만경대
6. 멀리 가운데는 고봉산(206m, ?), 그 앞은 현달산(133m, ?). 원효암에서
7. 의상봉, 그 아래 절은 무량사
8. 원효암 현판
9. 용출봉과 의상봉
10. 염초봉(영취봉)
11. 노적봉
12. 염초봉. 대동사에서
원효암을 나와서 왼쪽 사면을 돌아 능선에 올라선다. 흐트러진 돌계단 오르막이다. 사방 둘러 보이는 것이 없으니
퍽 지루하다. 원효봉이 가까워져서야 가파름이 수그러든다. 어느 해 여름날 내가 복숭아 귀신에 홀렸던 길이다.
여름날 소낙비가 막 그치고 땡볕이 내리쬐던 한낮이었다. 오가는 사람이 없이 한적했다. 뒤에서 나를 따라오는 발걸
음 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면 아무도 없었다. 달려보았다. 나를 뒤따라오는 발걸음도 달려왔다. 또 뒤돌아보면
아무도 없고, 모골이 서늘해졌다.
식은땀이 났다. 침착하자 스스로 마음을 다독이며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헛웃음이 나왔다. 배낭 속 플라스틱 통에
든 딱딱이 봉숭아 세 개가 틈이 있어 내 발걸음과 박자 맞춰 서로 부딪치는 소리였다. 귀신은 밖이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숲속 벗어나자 강풍이 분다. 난간 꼭 붙들고 암벽계단 오른다. 원효대. 오종종한 암봉이다. 사방 조망이 트인다.
바람이 워낙 거세게 불어 오목한 데 웅크리고 앉아 금방이라도 염초봉과 노적봉을 삼키려는 운무를 구경한다. 접은
우산은 옆에 놓자마다 바람에 날려 깊은 절벽 아래로 가버렸다.
미끄럽기도 한 암벽계단을 살금살금 내리고 숲속에 잠깐 들어 큰 숨 한 번 몰아쉰 다음 원효봉을 오른다. 원효봉
정상이 너른 암반이지만 오늘은 거센 바람이 이미 가득 선점하여 내가 설 자기가 비좁다. 서성이며 노적봉을 희롱하
는 운무의 유희를 구경하고 내린다. 0.2km 내리면 북문이다. 염초봉 암릉에는 목책을 둘렀고 초소가 있다. 괜히
손맛만 다시고 돌계단을 내린다. 이곳은 바람이 잠잠하다. 역시 북한산은 날이 궂을 때 올 일이다. 한적하여 자적하
기 좋다.
상운사를 들른다. 아직도 공사 중이다. 인부들은 이른 아침부터 열심이다. 나는 뒷짐 지고 절집 둘러본다. “隨緣赴
感靡不周/而恒處此菩提座(인연 따라 두루 응하면서도/언제나 깨달음의 자리에 앉아 계시네)” 대웅전 주련의 일부
다. 상운사를 똑바로 내려 왼쪽의 풀숲 소로를 지나서 얕은 계곡을 건너면 염초봉 아래 대동사다. 조그마한 절이다.
적막하기 절간이다. “法身充滿百億界/體圓正坐寶蓮臺(법신은 온 세계에 두루 나타나시며/본체는 언제나 연화대에
앉아계시네)” 대동사 대웅전 주련의 일부다. 상운사의 그것과 비슷하다.
대동사가 곧 연화대다. 주위가 울긋불긋 화려하다. 이곳에 가을이 몰려 있다. 대동사 내려 주등로와 만나고 대동사
일주문이다. 일주문 밖의 속세는 만상이 만추를 즐기고 있다. 일주문 문설주에는 거룩한 말씀을 금빛으로 새겼다.
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是諸佛敎
나쁜 일은 일체 하지 말고 착한 일을 받들어 행하며,
스스로 마음을 맑게 하는 것 이것이 곧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諸惡莫作 衆善奉行’은 당나라 때 고승인 조과선사(鳥窠禪師, 741~846)가 불법을 묻는 당대 대시인 백거이(白居易,
772~846)에게 답한 말이라고 한다. 일상의 평범 속에 진리가 있다는 뜻을 은유한 것이다. 진실로 행하기 어려운 일
이다.
백운대 암문까지 완만하지만 길고 너덜 같은 돌길이다. 약수암 쉼터에서 배낭 벗어놓고 첫 휴식한다. 독작하는 탁주
가 속을 덥히기는커녕 더 춥게 한다. 오가는 사람들을 드물게 만난다. 반갑다. 발걸음 멈추고 꼬박 수인사 나눈다.
백운대도 오르셨나요?
그럼요. 안개가 자욱하고 바람이 엄청 세게 불더군요.
13. 대동사 아래 가을
16. 노적봉
17. 백운대
18. 염초봉
19. 노적봉
20. 안개 속 풍경
▶ 백운대(835.6m)
이윽고 고도 높여 안개 속에 들고, 백운대를 마음에 붙들었다 놓았다 하기를 반복한다. 오를까, 말까, 망설이는 중에
발걸음은 저절로 만경대 사면 도는 ┣자 갈림길을 직진하여 지난다. 그래, 가자! 이런 날 백운대를 오르기가 그리 흔
하지 않을 것. 데크계단 오르고, 바위 슬랩 오른다. 뭇사람들의 발길에 닳기도 했지만 비에 젖어 미끄럽다. 붙드는
쇠난간이 비에 젖어 차디차다. 오늘은 백운대가 전과는 다른 산이다. 바람이 등 떠밀어 오르기가 한층 수월하다.
백운대. 이때는 나 말고 아무도 없다. 태극기가 요란스레 펄럭인다. 혹시 바람이 안개 쓸어내어 뜻밖의 기경을 목도
하게 되지는 않을까 내심 기대했는데 그런 일은 없다.
尋花不惜命 꽃 찾아 목숨을 아끼지 않고
愛雪常忍凍 눈 좋아 항상 얼어 지낸다네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의 글이라고 한다. 나는 꽃과 눈 대신에 ‘조망’을 넣고 싶다. 만천만지한 안개
다.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한다.
거센 바람에 흩뿌리는 빗발을 얼굴에 맞으니 따갑다. 가까스로 쇠난간 붙들어 몸을 지탱하는 판국이라 배낭 속에 든
비옷을 꺼내어 입을 겨를이 없다. 종종걸음 하여 내릴 수밖에.
백운대 암문(위문). 사나운 폭풍우 속을 탈출했다. 이제 당분간 그런 험로는 없다. 안개 속 풍경을 감상하며 걷는다.
잠깐 얼굴 내민 염초봉, 백운대, 노적봉이 새롭게 보인다. 노적봉 직전 안부를 지나고 등로 주변의 안개 속 풍경은
산꾼에게는 고혹적이다.
용암문 지나고 일출봉을 오른다. 올 때마다 현란하던 만경대 동벽과 용암봉 병풍바위를 볼 수 있을까 해서다. 안개
로 캄캄 가렸다. 일출봉을 길게 내리다 멈칫한 봉우리를 반룡봉(기룡봉, 589m)이라고도 하는가 보다. 동장대를 넘
다보니 지난봄날에 이쯤 성곽 틈에서 본 알록제비꽃의 귀엽던 모습이 기억에 생생하다. 대동문. 네댓 명 등산객들이
비 피하느라 문에서 서성이고 있다. 나도 거기 비집고 간이의자 꺼내어 앉아서 휴식할 겸사로 점심밥 먹는다.
이다음 봉우리는 복덕봉(580m)이라고 한다. ┫자 칼바위능선 갈림길이다. 지척인 칼바위도 보이지 않는다. 잰걸음
한다. 약간 내렸다가 공사 중인 보국문 지나고 가파르고 길게 오른 623m봉을 성덕봉이라고 한다. 맑은 날이면 빼어
난 경점이다. 보현봉은 물론 형제봉, 백악산, 인왕산, 안산 등이 소백산의 구봉팔문처럼 보이는데 오늘은 무망이다.
성덕봉을 잠깐 내렸다가 오른 638m봉은 화룡봉이라고도 한다. 그 아래가 대성문이다. 문루 평상에 걸터앉아 숨 고
르고 나서 693m봉을 오른다.
돌계단 길 세 피치로 오른다. ┫자 능선 갈림길 왼쪽 장릉(보현봉, 형제봉 넘어 인왕산, 안산까지 이어진다)의 보현
봉 가는 길은 막았다. 돌계단 내려 대남문이다. 문수사가 150m 떨어져 있다 하니 들른다. 문수봉 왼쪽 사면을 돈다.
문수사. 고려 예종 4년(1109)에 개산하였다고 하나 그 유명세는 이승만 대통령이 자당의 이곳 기도로 얻어졌다고 하
는 데서 비롯된다. 후일에 이승만 대통령은 82세 고령에 이곳에 등정하여 사액(寺額)을 남겼다고 한다. 다음은 오백
나한을 모신 천연문수동굴의 주련이다.
廓周沙界聖伽藍 모래 같은 세계를 에워 성스러운 가람 삼아
萬目文殊接話談 눈길 닿는 곳마다 문수보살 말씀 나눴네
言下不知開活眼 그 말씀마다 눈이 열림을 헤아리지 못하고
回頭只見舊山庵 머리 돌리니 사방엔 오직 옛 산 암자만 보이네
21. 안개 속 풍경
23. 먼지버섯
24. 앞에서부터 통천문, 승가봉, 비봉
25. 멀리 왼쪽은 청계산, 오른쪽은 관악산, 앞은 백악산, 인왕산, 안산, 왼쪽 가운데는 남산
26. 사모바위
27. 비봉 진흥왕순수비, 모조품이다.
28. 향로봉 릿지
▶ 문수봉(727m), 비봉(560m), 족두리봉(367m)
문수사에서 곧바로 문수봉으로 오르는 길은 없다. 대남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문수봉을 오른다. 문수봉 정상 노릇은
그 앞 암봉이 대신한다. 정상은 목책 둘러 막았기도 했지만 안개가 자욱하여 아무 볼 것이 없으므로 안개 덕으로
발품 던다. 실로 오랜만에 문수봉 암릉을 간다. 옛날 그대로일까. 가슴이 설렌다. 두꺼비 앉은 모양인 바위는 그대로
다. 나이 늘어 덩달아 느는 게 겁이다. 예전에 손맛 보며 오르내렸던 가파른 슬랩이 오늘은 오버행으로 보인다. 돌아
간다.
반침니는 그 오른쪽으로 쇠줄 난간을 만들어 내리도록 했다. 이어 슬랩과 직벽은 철주 박은 쇠줄 난간과 철계단으로
덮어버렸다. 세월이 흐르면 나만 변하는 줄 알았는데 산도 변했다. 서운하다. 아무런 감흥 없이 문수봉을 내린다.
아울러 안개 속을 벗어난다. 멀리 족두리봉과 비봉, 승가봉이 보인다. 어서 가자하고 발걸음 재촉한다. 길게 내려
통천문 슬랩을 오르고 통천문을 지난다. 봉마다 경점이다. 통천문 위에 올라 바라보는 의상능선의 나한봉, 나월봉,
증취봉, 용혈봉, 용출봉, 의상봉이 수려하다.
이다음은 승가봉이다. 승가봉 암벽에 기대 바람 피하며 의상능선과 그 너머 백운대와 노적봉을 휘감는 운무를 감상
한다. 탁주 맛이 각별하다. 그리고 한달음에 내려서 ┣자 응봉능선 갈림길인 사모바위다. 응봉능선 쪽에서 멀찍이
떨어져 바라보아야 영락없는 사모(紗帽)의 모습이다.
헬기장 지나고 ┫자 갈림길 왼쪽이 승가사를 오간다. 승가사도 들를까 몇 번이나 망설였지만 거기까지 내리막
0.7km를 갔다 오기에는 너무 멀다. 거기가 조망 좋은 산봉우리이라면 몰라도 말이다. 그냥 간다.
사뭇 부드러운 산길이다. 비봉이 금방이다. 비봉을 오른다. 여기는 인공시설물을 설치하지 않았다. 예전 그대로다.
비는 아까 멎었지만 바람은 아직도 기세가 등등하다. 납작 엎드리고 달달 기어서 슬랩을 오른다. 비봉. 서울을 내려
다본다. 백악산, 인왕산, 안산, 남산, 관악산, 청계산이 약간 도드라진 언덕에 불과하다.
이제는 비봉 서벽의 크랙을 내리기가 겁난다. 들여다보고 뒤돌아간다. 의기소침한 내 스스로가 부끄럽다.
오늘 당초 산행계획은 비봉 남릉을 타고 로보트바위(380m)와 입술바위(330m)를 넘어 구기동 이북5도청 쪽으로 가
려고 했는데, 목책 둘러서 막았고 그 너머로 인적 또한 희미하다. 그리고 이대로 하산하기는 너무 이르다. 족두리봉
으로 가자하고 방향 튼다. 오후 들어 삼삼오오 등산객들을 자주 만난다. 향로봉 직전 ╋자 갈림길 안부에서 향로봉
을 들른다. 바람은 여전히 심하게 불어댄다. 일단의 등산객들이 의상능선 배경하여 인증사진 찍느라 분주하다.
향로봉 릿지도 막았다. 그 끄트머리 슬랩 아래에는 국공초소가 있다. 거기를 오가는 이도 없다. 안부로 뒤돌아 와서
향로봉 남쪽 사면의 돌길을 돌아간다. 능선에 올라 완만한 바윗길 길게 내리다 잠깐 주춤한 숲속 357m봉은 수향봉
이라고 한다. 족두리봉에 다가간다. 멀리서는 쉽게 보였는데 대단히 위압적인 암봉이다. 예전에는 그 동벽을 고정
쇠줄을 잡고 오르내렸다. 정상 근처 트래버스 구간은 짧지만 짜릿했다. 지금은 막았고 오른쪽 암벽 자락을 빙 돌아
서쪽에서 올라야 한다.
완만한 슬랩에 쇠난간 설치한 재미없는 길이다. 족두리봉도 바람이 거세다. 납작 엎드려 기어오른다. 사방 막힘이
없는 경점이다. 문수봉과 보현봉, 비봉, 향로봉은 어디서 보나 아름다운 모습이다. 하산. 족도리봉 남릉을 내린다.
대슬랩을 살금살금 내리다 왼쪽에서 오는 용화공원지킴터 가는 잘난 길과 만난다. 그러나 능선 길을 계속 붙들었더
니 구기터널 앞 도로에 떨어지고, 도로 따라 좀 더 내려 독박골 버스승강장이다. 모든 버스가 한 정거장인 불광역을
간다.
오늘은 날이 궂었지만 그 덕분에 한가로운 산행이었다. 오룩스 맵을 들여다보며 지나온 발길을 살피는 것도 즐겁다.
여러 봉우리를 넘었다. 원효봉,백운대,일출봉,반룡봉,시단봉,복덕봉,성덕봉,화룡봉,문수봉,승가봉,비봉,향로봉,수향
봉,족두리봉.
29. 앞은 백악산, 인왕산, 안산, 왼쪽 가운데는 남산. 비봉에서
30. 앞은 응봉능선, 그 뒤는 의상능선, 오른쪽 멀리는 백운대
33. 향로봉 북서능선 진관봉(477m)
34. 왼쪽 멀리는 안산, 오른쪽 앞은 족두리봉
35. 앞은 백악산, 인왕산, 안산, 가운데는 뒤는 남산. 족두리봉에서
36. 왼쪽부터 향로봉, 비봉, 문수봉, 보현봉
37. 맨 왼쪽 뒤는 계명산(622m), 그 앞은 노고산(496m). 족두리봉에서
첫댓글 사진 감상 잘 했습니다..
비봉 남쪽 입술 바위는 족두리 바위 쪽의 입술 바위와 달라 분홍색이 아니라 까만게 골초의 입술
그런가요.
별 걸 다 아십니다.
저는 유심히 보지 않아서.ㅋㅋ
가을 북한산은 언제봐도 아름답습니다.
구경 잘 했습니다.
북한산은 사철 갈 때마다 아름답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사철 가지 못해 안타깝지만요.^^
비바람 불어대는 산길을 길게도 걸으셨습니다. 아직 단풍이 남아있었군요. 암벽 슬랩이 오버행으로 느껴질만한 날씨였네요.ㅎㅎ
나이 들어 느는 게 겁인지라, 옛날 슬랩은 오버행으로 보이더군요.^^
언제 보아도 멋진 산입니다. 우리들의 자랑이지요...
갈 때마다 새롭습니다.^^
역시 궁닙공원이 명불허전 입니다
확실히 덕순이는 없습디다. 내 눈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