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로보는인문학
#르네상스미술
#보티첼리
르네상스 화가 이야기 - 산드로 보티첼리(1)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03.01.~1510.05.17.)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대표적 화가입니다. 1445년 피렌체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 근처에서 제혁업자 마리아노 디 반니(Mariano di Vanni)의 넷째 아들로 태어납니다.
산드로 보티첼리, 「동방박사의 경배(The Adoration of Magi)」, 1475의 일부, 보티첼리의 자화상
산드로란 세례명과 함께 전당포 주인으로 ‘일 보티첼로(맥주통)’라 불린 형의 이름에서 보티첼리란 자신의 이름을 따오게 됩니다. 그이의 원 이름은 알레산드로 디 마리아노 필리페피(Alessandro di Mariano Fillipepi)인데, 워낙 술을 좋아해 이런 별명이 붙었다 하는군요 .
어릴 적부터 워낙 병약해서 제대로 해내는 일이 없었던 보티첼리에게 그 아비는 보석세공사의 집에 일자리를 마련해 줍니다. 그는 아들이 가업을 이어주기를 바랐지만, 보티첼리는 화가의 길을 선택했지요.
르네상스 시기는 중세 때와 달리 길드에서도 뛰어난 세공 기술을 요했던 모양입니다. 당시 세공사들은 보석.장신구는 물론이고 회화와 조각 분야에서 쓰는 기술까지 습득했다고 하네요.
「천국의 문」을 만든 로렌초 기베르티나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같은 이들도 금 세공일을 한 것을 보면 이런 기술들이 나중에 회화에도 많이 도움이 됐던 모양입니다. 보티첼리는 1464년 프라 필리포 리피(Fra Filippo Lippi, 1406?∼1469.10.08.)의 제자가 됩니다.
니콜라스 드 라메신(Nicolas de Larmessin), 「필리포 리피의 반신 초상화」, 동판, 615×904픽셀; 엘제비에(Elzevier) 『과학 및 예술 아카데미(Académie des Sciences et des Arts)』 , 1682에 수록된 그림. ;유려한 선을 사용한 그림, 방탕한 사생활로 악명 높았던 수사.화가인 필리포 리피
‘프라’란 단어에서도 보듯 리피는 수도원의 수사입니다. 원근법을 제시한 화가 마사초(Masaccio, 1401.12. 2~1428)의 유일한 수제자로 알려진 인물이죠.
마사초(Masaccio), 「자화상」, 프레스코, 290×470픽셀, 브랑쿠시 성당, 이탈리아 피렌체, 1420; 르네상스 초기에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필리포 리피는 종교화를 현실감있게 그린 최초의 화가로 당대 유행하던 두발과 의상을 그대로 묘사하는 대담함을 보여줬습니다. 또한 주름잡힌 옷의 표현과 색채의 섬세한 사용으로 널리 알려졌지요.
호색한으로 악명이 자자했던 필리포 리피는 수녀인 루크레치아 부티와 사이에 아들 필리피노 리피(Filippino Lippi, 1457∼1504)를 두었습니다. 그 역시 뛰어난 색채화가였는데, 보티첼리가 그를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성 베드로의 순교에 등장하는 필리피노 리피」, 프레스코, 1,572 × 2,169픽셀, 브랑쿠시 성당, 이탈리아 피렌체, 1481∼1482; 필리포 리피의 아들로 역시 화가인 필리피노 리피의 자화상
보티첼리는 처음에는 스승의 경향을 답습했습니다. 그의 초기작에는 이런 영향이 잘 드러나고 있지요. 보티첼리 그림에 지나친 장식과 힘 있는 선으로 표현한 형상이 스승안 리피의 영향이 작용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보티첼리에게 영향을 미친 인물들에 대해선 아직까지도 학자들 간에 논란이 많습니다.
보티첼리의 스승인 필리피노 리피 역시 피렌체 화파의 위대한 혁신자인 마사초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리피는 스승 마사초의 웅장한 양식에다 자신의 기법을 첨가했습니다. 보티첼리는 이러한 리피의 진전을 배운 것입니다.
보티첼리는 마사초가 명암을 처리한 방법을 스승 리피에게서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이는 세부묘사에도 큰 관심을 보여 섬세하고 부드러운 감정을 드러내는 기법을 썼습니다. 이밖에도 보티첼리의 초기 그림을 보면, 또 다른 스승인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Andrea del Verrocchio, 1436~1488)의 영향도 드러납니다.
니콜라스 드 라메신(Nicolas de Larmessin),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의 반신 초상화」, 동판, 616×891픽셀; 엘제비에(Elzevier) 『과학 및 예술 아카데미(Académie des Sciences et des Arts)』 , 1682에 수록된 그림.
안토니오 폴라이올로의 일러스트: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 『Le Vite』, 1568.; 동생 피에로와 함께 형제 화가로 유명했던 폴라이올로.
보티첼리는 스승 필리포 리피가 스폴레토(Spoleto)로 떠난 후, 안토니오 폴라이올로(Antonio del Pollaiuolo, 1432~1498),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에게 배우게 됩니다. 두 화가는 인물의 형상이나 인체의 근육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화풍을 가지고 있었지요. 보티첼리는 두 사람의 그러한 능력에 매료됐습니다.
보티첼리는 1470년 이전에 독립해 피렌체에 자신의 공방을 세우게 됩니다. 이때 완성한 것이 길드조합의 첫 의뢰작인 「불굴의 정신(Fortitude), 1470」, 「베툴리아로 돌아오는 유딧(he Return of Judith to Bethulia), 1470」, 「성 세바스찬(St Sebastian), 1474」등입니다.
산드로 보티첼리, 「불굴의 정신」, 나무에 템페라, 167 x 87cm, 우피치 미술관
이 「불굴의 정신」은 예전에 자주 있었던, 관념을 의인화한 그림에 속합니다. 보티첼리의 또 다른 그림 「아펠레스의 변명」도 이에 속하는 작품이지요. 이런 류의 그림은 기회를 봐서 다른 때에 다루어볼까 합니다.
산드로 보티첼리, 「홀로페르네스의 살인자의 발견(The Discovery of the Murder of Holofernes)」, 나무에 템페라, 31 x 25 cm, 우피치미술관, 이탈리아 피렌체, 1470–1472.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베툴리아로 돌아오는 유딧(The Return of Judith to Bethulia)」, 패널에 템페라, 29.2 x 21.6 cm, 신시내티 미술관,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1469-1470.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베툴리아로 돌아오는 유딧(The Return of Judith to Bethulia)」, 패널에 유채, 31 x 24 cm, 릭스박물관, 네델란드 암스테르담. 1470–1472.
산드로 보티첼리, 「성 세바스찬」, 포플러나무에 유채, 195 x 75cm, 게말데 미술관
이 시기부터 보티첼리의 그림은 점차 독자적 성격을 드러내게 됩니다. 그이는 부드러운 명암을 이용해 형태를 3차원적 개념에 맞춰 표현하려 했지요. 밝은 빛을 받은 형태를 물 흐르는 듯한 선으로 윤곽을 잡은 평부조같은 표현양식을 발전시켰습니다.
유딧을 그린 그림들도 처음 것보다는 그 다음 작품이 우아한 선의 사용, 개선된 화면 분할, 디테일을 잘 살려낸 배경 등에서 돋보입니다. 보티첼리는. 이처럼 미묘한 곡선을 사용해 감상적인 분위기를 드러내고 있지요. 「성 세바스찬」은 이런 경향의 초기 단계를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
오토리노 레스피기(Ottorino Respighi)가 보티첼리의 그림에서 감동을 받아 「비너스의 탄생」, 「봄」, 「동방박사의 경배」를 주제로 1927년에 쓴 곡 「보티첼리의 세 그림(Trittico botticelliano)」입니다.
https://youtu.be/WnYxFqK5wXE
첫댓글
험담은 세 사람을 죽인다.
험담을 한 자,
험담을 들은 자,
험담의 대상자 등을 모두 죽일 수 있다.
유대인의 지혜가 집약된 탈무드에 있는 말입니다.
따라서 말을 하기에 앞서 늘 3가지 체에 걸러봐야 합니다
마음 편안한 하루길 되시기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