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로(天路)를 걷는 삶(11/24)
-지체와의 관계에서-
교회생활을 하거나 이웃 교회의 형제 자매들과 알고 지내다 보면 늘상 좋은 관계만 유지할 수가 없다.
나 역시 여러 목회자와 알고 지내고 있지만 항상 좋은 관계만을 유지하지 못하고 가끔은 논쟁도 하면서 때로는 서먹서먹한 관계를 오랫동안 갖고 지낼 때도 있다.
때로는 나의 독하고 악한 자아(自我)가 -나 자신이 잘했든지 못했든지- 형제와의 좋지 않은 관계 가운데서 그대로 끌고 가는 것을 보게 된다.
하나님 앞에서 회개와 간구로 속히 회복되기를 원하지 않고 긴 시간을 불편한 가운데 지내기도 한다.
예수 안에서의 형제·자매는 곧 한 몸이다. 우리의 각 지체는 주의 몸에서 연결된 가지로서 서로 사랑할 대상이다. 서로를 섬기고 봉사하며 협력하여 머리되신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할 사명을 갖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을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성막을 지을 때 모두 ‘하나로 연결’하여 짓게 명하셨으며 그리고 사도 바울은 신령한 교회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몸’으로 설명하면서 가르쳤다.
지체와의 관계가 부자유스러우면 나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게 된다. 그 지체가 어렵거나 힘들 때에 도와주고 협력을 해야 하는데, 서로 관계가 서먹하면 봉사하고 도와주어야 할 때 돕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간적 관계 때문에 돕고 싶은데도 막히는 것이다. 이러면 도와야 할 당사자보다도 먼저 우리의 구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해 드릴 수가 없게 된다.
죄에서 해방되어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성도들은 방종을 해서는 안된다. 내 생각보다 우선인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항상 생각하며 기억하는 것이다.
형제와 자매를 아끼며 봉사 협력하는 것은 곧 성도의 사명이며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다.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고후5:9)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살전2:4)
예수님을 위하여 ‘나’를 버려야 내 형제에게 봉사하며 협력할 수가 있다. 이와 같은 사랑은 선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사명이다. ‘내’가 살면 ‘교회’가 아프고 ‘내’가 죽으면 ‘교회’가 기쁨이 넘친다.
예수 안에서는 모든 것이 ‘하나’이다.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엡4:4~6)
그러므로 ‘하나’가 되려고 하지 않는 것은 곧 주의 몸을 해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버리시고 ‘나’를 구원하셨다. 그 표적이 ‘십자가에서의 죽음’이다.
사도 바울은 한 영혼을 주께로 인도하고자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전9:19)
이와 같은 은혜와 능력이 오늘 하루도 넘치시기를 기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