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4. 14. 주일 큐티
다니엘 4:1 ~ 9
두 번째 꿈을 꾸는 느부갓네살
관찰 :
1) 느부갓네살의 두 번째 꿈에 대한 회고
- 1절. “느부갓네살 왕은 천하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언어를 말하는 자들에게 조서를 내리노라 원하노니 너희에게 큰 평강이 있을지어다” => 느부갓네살이 전과 다르게 너그럽게 백성들을 대하고 있습니다. 느부갓네살에게 무엇인가 큰 변화의 체험이 있었음을 알게 되는 표현입니다. 이후에 설명하겠지만, 느부갓네살은 자신의 교만으로 인해서 가장 높은 곳에서 인간이 아닌 야수와 같은 최악의 자리에서 7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러한 권좌의 자리가 자신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주어지는 것임을 알게 되고, 백성들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조서를 내림에 있어서 백성들 모두에게 큰 평강이 있을 것을 선언하며 전과 다르게 살갑게 접근을 하고 있습니다.
- 2절.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이적과 놀라운 일을 내가 알게 하기를 즐겨 하노라” =>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은 아람어로 “엘라하 일라야”라고 부른 이름입니다. 이방인들에게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이 계시되지 못했기에 그들이 부를 수 있는 최상급의 표현입니다. 이방인의 입으로 부른 히브리인들의 하나님에 대한 표현입니다. 이방인들은 여호와의 이름은 몰랐지만,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발견하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멜기세덱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창 14:19), 발람이 그렇게 하나님을 불렀고(민 24:16), 앗수르 왕으로 묘사되는 계명성의 아들이 그렇게 불렀습니다(사 14:14). 사실 느부갓네살은 이미 하나님을 “모든 신의 신”(단 2:47)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우상을 숭배하고, 통치 철학을 위하여 금신상을 세웠으며, 우상 숭배하지 않는 다니엘의 친구들을 핍박하기까지 했었습니다.
- 3절. “참으로 크도다 그의 이적이여, 참으로 능하도다 그의 놀라운 일이여,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요 그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 느부갓네살이 비로소 깨닫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묘사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고, 하나님의 통치는 영원한 것임을 느부갓네살은 야수에서의 7년 이후에 비로소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다루심으로 말미암은 결정적인 고백입니다.
2) 꿈을 해석하고자 하는 느부갓네살의 노력
- 4절. “나 느부갓네살이 내 집에 편히 있으며 내 궁에서 평강할 때에” => 이 때는 느부갓네살이 대적을 모두 처치하고 이미 온 땅을 제패하여 평화가 임한 때였습니다. 자신이 가장 높아져있던 때이고, 그 누구도 느부갓네살 자신에게 대적할 자가 없다고 생각하던 때였습니다.
- 5절. “한 꿈을 꾸고 그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였으니 곧 내 침상에서 생각하는 것과 머리 속으로 받은 환상으로 말미암아 번민하였었노라” => 느부갓네살은 꿈꾸는 자였습니다. 자신의 제국에 대한 꿈을 꾸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갈대아 술사들과 기타 지방에서 끌어 모은 박사들 등으로 이루어진 꿈 해몽에 능한 자들을 대거 기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꿈의 내용으로 말미암아 번민하고, 그 꿈을 누구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는 일이 연이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느부갓네살에게 일하고 계심을 그가 알 수밖에 없는 일들이었습니다.
- 6절 ~ 7절. “이러므로 내가 명령을 내려 바벨론의 모든 지혜자들을 내 앞으로 불러다가 그 꿈의 해석을 내게 알게 하라 하였더라 그 때에 박수와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쟁이가 들어왔으므로 내가 그 꿈을 그들에게 말하였으나 그들이 그 해석을 내게 알려 주지 못하였느니라” => 느부갓네살의 꿈은 다른 여느 꿈들과 다른 구석이 많이 있었습니다. 바벨론의 모든 지혜자들, 박수와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쟁이들이 꿈을 해석한 것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도대체 해석할 수 없는 꿈이 바로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된 꿈이었습니다. 이 꿈은 꿈을 해석할 어떤 패턴도 없고, 오직 그 꿈을 주신 분을 통해서만 깨달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이 사기꾼이 아니었기에 자신들의 능력이 아님을 솔직히 고백했고, 그렇기 때문에 느부갓네살은 다시금 다니엘을 찾게 되었습니다.
- 8절. “그 후에 다니엘이 내 앞에 들어왔으니 그는 내 신의 이름을 따라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자요 그의 안에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자라 내가 그에게 꿈을 말하여 이르되” => 누구도 해석할 수 없는 꿈의 해석을 다니엘은 할 수 있을 것이라 느부갓네살도 다른 지혜자들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니엘도 하지 못하면 그 누구도 할 수 없다는 일종의 동의가 있었던 것입니다. 다니엘은 총리로 재직을 하였지만 그 어떤 지혜자, 갈대아의 술사, 술객, 박수 등 모든 이들로부터 인정받고 존경받는 지혜자였습니다. 그가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느부갓네살이 고백하듯이 다니엘의 안에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느부갓네살 왕은 기대감을 가지고 다니엘에게 자신의 꿈을 토로하게 된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이 강력하고 존귀한 자였지만 영에 관한 일에 대해서는 어리 아이와 같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 9절. “박수장 벨드사살아 네 안에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은즉 어떤 은밀한 것이라도 네게는 어려울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아노니 내 꿈에 본 환상의 해석을 내게 말하라” => 느부갓네살은 어떤 은밀한 일도 다니엘에게는 열리게 될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꾼 꿈을 말하지도 않았음에도 다니엘이 해몽한 전례가 있기 때문에, 그리고 다니엘이 정무를 처리함에 있어서 얼마나 지혜롭게 일을 처리하는 가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의 이름은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솔로몬과 같이 지혜자로 종종 등장 하곤합니다. 거기서도 모든 악한 영들마저도 그의 지혜에 굴복하는 것으로 묘사되어집니다. 바벨론에서 다니엘의 존재는 황제도 인정하리만치 지혜롭고 현명한 존재였습니다.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기에 그 어떤 은밀한 것이라 할지라도 다 해석되어짐을 느부갓네살도, 왕궁의 모든 술객과 술사와 박수들이 다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바였던 것입니다. 심지어 그렇기에 다니엘은 느부갓네살로부터 박수장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박수장”(아람어로 라브 칼툼마야)입니다. 이 말은 다니엘이 다른 박수들과 이방신을 섬기는 일에 함께 복무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다니엘은 다른 박수들과 함께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항상 구별되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뜻을 정하고, 시간을 정하여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렇기에 다니엘은 박수들과 같은 취급을 받는 그들의 수장을 넘어서는 의미로서의 “박수장”이었습니다. 여기서의 “라브”는 ‘신적인’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박수들로부터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가르침 :
1) 느부갓네살은 또 다시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그 꿈은 용감한 자 느부갓네살을 두렵게하고 마음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제국의 통치자로 하여금 마음을 어렵게 한 꿈. 그 꿈을 해석하기 위해 제국의 난다 긴다하는 지혜자들이 모였을 것이라는 것은 자명합니다. 그러나 그 꿈을 누구도 해석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 꿈이 천지를 지으신 가장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을 아직 인정하지 못했던 느부갓네살은 다른 방법을 강구해 보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다시 다니엘을 부르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박수장으로서 일반 박수가 아닌, 박수들 중의 우두머리가 아닌 박수들의 신으로 불리우고 있었습니다.
2) 느부갓네살은 이러한 기록을 시간이 지난 다음에 회고하는 형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특별한 경험으로 변화되었고, 변화된 마음과 생각을 그의 표현속에 남기고 있습니다. 교만한 자가 하나님의 다스리심으로 백성의 평안을 구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3) 변화는 스스로에게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일어나는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의 다루심으로 그 인생이 바뀌게 되고 변화를 체험했습니다. 오늘날도 진정한 변화라는 것은 하나님의 다루심이 전제되어야 가능한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적용 :
1) 느부갓네살을 다루시는 하나님이 오늘날도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루십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제국의 황제를, 열방의 왕들을 다루십니다. 즉, 모든 백성을, 모든 사람들을 다 다루시는 분이십니다. 느부갓네살에게는 꿈을 통하여 다루신 하나님은 오늘날 각 사람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다양하게 다루십니다. 하나님의 다루심을 아는 것이 지혜이고, 그 다루심에 순종하는 것이 또한 지혜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다루심은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고, 하나님의 다루심에 바르게 반응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2) 변화는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나는 것이 거의 아닙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변화가 가장 확실한 변화입니다. 하나님의 다루심으로 내가 변화되고 새로워지게 될 것을 기대하게 됩니다. 한없이 부족한 나라는 존재가 날바닥에 패대기쳐진다 할지라도 이제는 좀 덤덤해지고 있습니다. 광야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께서 변화시키시는 과정을 통과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변화라 생각합니다. 내가 의존해야 할 분이 오직 한 분이심이 선명해 질수록 더욱 주님의 은혜의 소중함을 깨닫게 됩니다.
3) 기도하고 간구하던 것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럴지라도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은 찬양받으시기에 언제나 합당하신 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