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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심판과 은총
창 03장 14절 ~ 24절
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15. 4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20.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22.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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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으며 확신하며 : 하나님의 심판과 은총(창3장14-24)
도스토예프스키는 "자유가 없이는 악을 설명할 수 없다. 악은 자유의 길에 나타난"고 했습니다. 그는 또한 "자유가 없으면 선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선은 자유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선과 악에 대한 설명의 실마리가 "자유"라는 것입니다. 순종과 불순종에 있어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맹목적으로, 기계적으로 순종하라는 것이 아니라, 순종과 불순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허락하셨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가 스스로 생각하며, 결정하며, 행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자유"는 인간의 본질을 말해주는 중요한 단어입니다.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자유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특권입니다.
그러나 특권은 하나님 안에 있을 때만 온전히 누릴 수 있습니다.
헨리 나우웬은 "사람에 대한 의존은 우리를 노예 상태로 만들지만, 하나님에 대한 의존은 우리를 자유로 이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얼마나 하나님을 의존하고 있는가 그 정도에 달려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추호의 의심도 없이 가장 철저하게 의존할 때 참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반면 하나님을 등지고 누리는 자유란 아담처럼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자신의 욕심을 위하여 사용되는 자유에 불과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람이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를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데 사용함으로써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그 죄에 대한 심판을 받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어도 하나님께 용서를 구할 때 하나님은 용서해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용서는 하시지만, 반드시 죄에 대한 심판과 고통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 심판과 고통이 있습니까? 죄의 심각성을 각성시키기 위함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허락하신 자유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 책임을 다하는 삶을 살지 못할 때 자유의 본질을 상실하고 맙니다.
왜 종교개혁이 일어났습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진정한 죄의 고백과 하나님 앞에 응답하는 책임적인 삶이 없이 면죄부 종이 하나로 자신의 죄를 탕감하려는 타락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앵무새처럼 죄를 용서해달라고 고백한다고 벌 없이 죄에서 해방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유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한 삶일 때, 하나님은 반드시 그 책임을 물으십니다. 책임을 다하지 못한 삶에 대하여, 지은 죄에 대하여 심판이 따른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러할 때 하나님의 은혜를 값싸게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I.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3:14-19)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뱀에게 내리신 심판(3:14-15) :
하와를 유혹했던 뱀은 두 가지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 하나는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며 종신토록 흙을 먹을 지니라"(3:14)고 했습니다. '흙을 먹는다'는 말은 '티끌을 핥는다'는 뜻입니다. 극도의 멸시와 수치와 굴욕을 말할 때 사용되는 저주의 말입니다. 실제로 뱀은 흙을 먹고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뱀이 흙을 먹는다는 말은 실제로 뱀이 흙을 먹고산다는 것이 아니라, 하와를 유혹하여 죄에 빠지게 했던 뱀을 가장 비천한 자리까지 낮추는 말입니다. 동시에 뱀은 결코 신적인 존재로 숭배의 대상이 아님을 철저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자와 원수가 되고 여자의 후손과도 원수가 된다"(3:15)고 했습니다.
이 창3:15은 고대 저스틴이나 이레네우스와 같은 교부들에 의해 "원시복음"으로 불렸습니다. 왜 하필 뱀이 여자와 원수가 됩니까? 교부들로부터 내려오는 해석에 의하면 여자의 후손'이란 동정녀의 몸에서 탄생하실 '메시야'를 의미하며, '뱀의 후손'은 사단의 추종세력을 의미합니다.
즉 여자의 후손인 그리스도와 성도들은 뱀의 후손인 사단의 세력과 원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단이 여자를 통해 인류를 망하게 하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여자를 통해 사단의 후손들을 멸망시킬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어서 3장 15절에 "여자의 후손이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며 뱀의 후손이 여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발꿈치란 신체 부위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는 부위를 말합니다. 즉 사단의 후손들이 여자의 후손을 공격하지만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머리는 신체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치명적인 부위입니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것은 메시야를 통해 결정적으로 사단을 패배시킨다는 것을 말합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최후승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구절의 분명한 교훈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영적 싸움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 살아가는 우리는 두려움 없이 날마다 승리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하와에게 내린 심판(3:16) :
하와도 두 가지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여자가 받는 고통은 '어머니로서 받는 고통'과 '아내로서 받는 고통'입니다.
첫째 해산의 고통입니다.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라"(3:16)고 했습니다. 원래 여인의 잉태와 해산은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
창세기 1장 2절의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처럼 기쁨과 환희였습니다.
그러나 범죄 후 여인은 견디기 힘든 엄청난 해산의 고통을 느껴야만 합니다. 죄로 인한 형벌입니다.
둘째, 아내로서의 고통입니다.
"너는 남편을 사모하며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표준새번역을 보면 "네가 남편을 사모할지라도 남편이 너를 다스릴 것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사모한다"라는 히브리어는 단순한 그리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열망으로 남편을 지배하고 복종시키려는 의도를 말합니다. 아내가 남편을 지배할 만큼 열정을 가지고 사모한다고 할지라도 아내는 남편의 지배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위해 하와를 만드셨을 때는 아담의 가장 중요한 가슴의 갈비뼈로 만드셨고, 슬픔과 기쁨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짝, 즉 돕는 배필로 지으셨습니다. 아담은 이런 하와를 향하여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2:23)고 사랑의 고백을 했습니다.
이것이 원래 부부간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범죄 후 지배받고 지배하는 관계로 전락했습니다. 죄를 짓기 이전에는 여자와 남자는 서로 존중해주며, 서로 기쁨과 슬픔을 나눌 동역자요, 나눌 수 없는 짝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모습이 회복되어야겠습니다. 가정과 직장에서 주도권 싸움을 하지 말아야하고, 서로 존중히 여기며 동역자로 여기는 모습들이 회복될 수 있길 바랍니다.
세 번째 아담에게 내린 심판(3:17-20) :
아담도 두 가지 심판을 받았습니다.
첫째는 노동의 고통입니다.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을 것이라"(3:17)고 했습니다.
인간은 밭의 채소를 먹어야 하는데(3:19), 땅이 아담 때문에 저주를 받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었기(3:18) 때문에 땀을 흘리지 않으면 식물을 얻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하와의 형벌이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존재의 가장 깊은 뿌리에 내려진 것이라면, 아담의 형벌은 생의 깊은 중심, 생계를 위한 노동과, 활동에, 염려의 뿌리를 내렸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노동을 하나님의 저주로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뱀과 땅은 저주하셨지만, 노동은 저주하지 않으셨습니다. 노동은 창조의 질서입니다. 노동은 신성한 것입니다. 노동은 괴로움이나 지겨운 것이 아니라, 사실은 기쁨이요, 즐거움입니다. 노동 그 자체는 하나님의 징벌이나 저주가 아닙니다. 일 때문에 당하는 고달품은 실직의 아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100명 뽑는데 대졸자 1만 5천명 왔다고 합니다.
창세기 2장 15절에 "하나님은 사람을 에덴동산에 두어 다스리며 지키게 하라"고 했습니다. "다스린다"라는 히브리어는 "경작한다"라는 말이며, "지킨다"라는 말은 "보호한다"라는 뜻입니다. 이미 범죄 이전에 아담은 노동의 기쁨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에덴을 경작하고 관리했습니다. 노동은 창조질서에 속하며 인간의 평화로운 삶을 위해 없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노동함으로 수동적인 삶에서 참여하는 사람으로 살며, 자신의 삶을 새롭게 창조하고 보존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 이런 모습을 상실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사귐이 깨어졌듯이, 하나님과 자연 사이에, 인간과 자연 사이에, 인간과 노동 사이에 사귐이 깨어진 것입니다. 인간은 노동한 만큼 산물을 얻지 못하고 얼굴에 땀을 흘리며 더 수고하여 채소를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인간의 죄로 인해 땅이 엉겅퀴와 가시덤불을 내었기 때문입니다.
서로 사이에 관계가 단절되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탐심이 자연을 황폐화시키는가 하면, 노동이 인간보다 우선되어 인간을 소외시키기도 합니다.
마틴 부버의 말처럼 "나와 너"의 관계가 인격적인 관계가 아니라, "나와 그것"의 관계, 즉 수단의 관계로 전락하고 만 것입니다. 섬김이 아니라 서로를 자기 목적의 도구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참된 노동의 의미를 회복해야겠습니다.
노동을 괴로움으로 알아서는 안되겠습니다. 또한 자연을 우상시해서도 안되며, 일을 사람보다 더 귀하게 여겨서도 안되겠습니다. 효율적인 경영은 일 중심의 경영보다 사람 중심의 경영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타락하기 이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노동의 기쁨을 회복해야겠습니다. 일하는 것을 괴롭게 여기고 나태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기쁨을 가지고 일함으로써 우리의 삶의 터를 에덴의 환희가 넘치도록 해야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복을 받은 내가 다시 또한 이웃에게 복의 근원이 되어 살아가는 모습인 것입니다. 이런 기쁨을 가진 노동 속에 창조적인 삶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둘째, 반드시 죽는다는 것입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3:19)고 했습니다.
3장 17절에 "종신토록"이라는 말은 "육신이 다 할 때까지"라는 말입니다. 죄와는 상관없이 인간이 수명에 한계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3장 22절에 하나님이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어 하나님과 같이 되었고, 이제 생명의 나무의 실과를 따먹어서 영생할까봐 에덴동산에서 추방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즉 에덴동산에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따먹지 말라는 금지가 있었지만, 생명나무를 먹지 말라는 말이 없었기 때문에 인간은 죽지 않을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2장 17절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했습니다. 인간이 죽지 않을 가능성이 있었지만, 이제는 죄를 지음으로 반드시 죽게 되었습니다.
죽음은 인간의 죄로 인해 주어진 형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사망과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고전15:16)라고 했습니다.
죽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한계적인 존재요, 죄인임을 말해줍니다. 전도서에는 "해 아래 새것이 없다"(전1:9)고 하였고, 로마서에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3;10)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한 걸음씩 죽음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죽음을 직시할 때마다 죄인임을 깨달아야겠습니다.
또한 바울은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생각할 때마다 예수님이 죄된 우리를 단지 믿음으로 의롭게 하셨다는 그 은혜를 생각해야겠습니다.
Ⅱ. 은총을 베푸시는 하나님(21-24)
하나님은 비록 범죄한 인간에게 벌을 내리셨지만, 아직도 인간을 사랑하여 은총을 베푸셨습니다.
21절에서 24절에 하나님은 사람에게 세 가지의 은총을 베푸셨습니다.
첫째, 가족 옷을 지어주셨습니다.
21절에 "하나님은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다"고 했습니다. 금방 말라버릴 무화과나무의 치마를 벗겨 내고, 든든한 가죽옷을 지어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이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짐승이 대신 죽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주시는 큰 희생을 통해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죄는 미워하시데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인간이 죄로 인한 수치감을 자신들이 가린다고 하지만, 이것은 일시적입니다. 인간이 자신이 지은 죄를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파괴된 하나님과 인간 관계는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만 회복될 수 있습니다. 죄로부터 구원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시작됩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주어지고 그분의 한량없는 사람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둘째, 죽음의 유예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당장 죽일 수 도 있지만, 아담을 당장 죽이지 않았습니다. 930까지 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23절에 "에덴에서 좇아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셨다"는 이 말은 표준 새 번역에 보면 "그가 흙에서 나왔으므로 흙을 갈게 하셨다"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동산에서 멀지 않는 곳에 땅을 경작하며 살게 하셨습니다.
셋째, 인간이 영원히 살지 않도록 하시며, 인간에게 죽음을 주신 것입니다.
인간이 영원히 살지 않고 죽는 것이 은혜입니다. 왜 죽음이 은혜입니까?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의 쫓겨났습니다. 24절에 "하나님이 그 사람을 좇아내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을 쫓아내신 후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를 지키게 하셨습니다."(3:24)
왜 생명나무를 지킵니까?
아담이 이 나무의 열매를 먹을까 해서입니다.
22절에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으면 영생할 수 있었습니다. 즉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 살면서 생명의 나무 실과를 먹고 영생할까봐 내어 좇고, 천사를 두어 그 나무를 지키게 하였습니다. 왜 사람이 영원히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없애버렸습니까? 죄 때문입니다. 영·육간에 온갖 질고를 가진 병든 몸으로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면 얼마나 큰 고통이겠습니까?
이것처럼 잔인한 형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 지은 인간에게 죽음이 있다는 것이 은총입니다. 이 죽음은 영벌로 가는 죽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로부터 해방되고 영생으로 가는 길이기에 은총입니다. 심판 후에도 우리를 회복하시는 하나님을 늘 생각해야겠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라"(렘29;11)고 하셨고,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 창상이 중하여 네 상처를 싸맬 약이 없다"(렘30:12)고 할지라도, 내가 이성을 고쳐 낫게 하고 평강과 성실함에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라(렘33:6)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회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은총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은총에 응답하는 삶을 우리 모두가 살아갈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출 처| 이상호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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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며 묵상하며 : 죄는 심판 죄인은 사랑하시는 하나님(3:14-24)
사람들은 무관심과 교만함에 빠져 죄의 심각성에 대해서 올바른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시며 심판 중에도 은혜를 베푸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는 반드시 심판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탄부터 시작해서 아담까지 각자가 지은 죄에 대해서 심판을 하셨습니다. 하늘 높이까지 높아지려고 했던 뱀은 땅 바닥 까지 낮아져서 흙을 먹고 살게 되었고 자기 욕심에 끌려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아담에게까지 선악과를 먹도록 한 여자는 임신하는 고통을 더하셨고 하와를 사탄에게서 지켜주지 못한 아담은 평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게 되었고 결국 흙으로 돌아가는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자기 분수를 지키지 않고 높아지려했 던 사탄은 가장 낮은 자가 되게 하셨고 사탄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는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사람들은 생명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반드시 벌하시되 경우에 따라 벌하셨습니다. 그리고 벌을 통해서 큰 교훈을 얻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죄를 반드시 벌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는 그 모양이라도 버리는 결단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죄인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후손을 멸망시킬 것이라는 예언의 약속을 주셨기 때문에 죄는 반드시 심판하시지만 죄인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만납니다. 죄의 심판을 받고 죽음의 선고를 받은 인간들은 아무런 희망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젠가는 메시야를 통해서 사람을 구원하려는 계획을 세우신 것입니다. 그 약속의 그림자로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추방되는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가죽옷을 만들려면 동물의 희생이 필요한데 그 희생으로 인해 아담과 하와는 가죽옷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장차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으로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아담과 하와같이 죄 가운데 있었더라도 지금 하나님께 나아가면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대신 해서 벌을 받으신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께 용서를 받고 다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는 벌하시지만 사람은 사랑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일용할 양식 2009.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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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 회복의 은총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하루는 유명한 제지공장을 방문하였습니다.
여왕은 공장 안을 시찰하다가 휴지와 걸레 같은 너저분한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방을 보고 놀라서 이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저것은 깨끗하고 질이 좋은 종이가 될 원료들입니다.”
공장장의 설명을 들은 여왕은 더욱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저렇게 더러운 것들이?”
궁전으로 돌아온 여왕은 며칠 후 그 제지공장으로부터 아름답고 깨끗한 편지지 묶음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것은 며칠 전 여왕이 보았던 바로 그 더러운 휴지 조각으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공장장의 편지 끝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쓰여 있었습니다.
“그 걸레 같던 종이들이 아름다운 편지지로 변화되어 지금 여왕 폐하의 궁전에 가 있듯이 완악한 죄인들도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되면 언젠가 주님이 오시는 때에 하나님 나라 궁전에 가있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온 이스라엘을 향해 이같이 회복시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와같은 역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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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며 적용하며
1. 죄를 범한 각자에 대해서 하나님은 무슨 벌을 내리셨습니까(14~19절)?
2. 죄를 범한 인간들을 위해서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20~24절)?
3. 하나님께 나아가서 고백하고 돌이켜야 할 죄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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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하며 간구하며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처럼 입술과 형식으로만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의 위선자는 아닌가요?
현실의 안일하고 풍족한 삶에 영적인 눈과 귀가 어두워 있지는 아니한지요?
하나님! 영적으로 늘 깨어 있는 우리 가족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죄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모르고 경솔하게 행할 때가 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시고 죄를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성경 벌레들 원문보기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