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나의 선한 의도가 거절되고 열심히 해 보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그것이 인정받지 못할 때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교회가 그 일을 나에게 맡겨주지 않고 별로 탐탁지 않은 다른 책임을 맡겨줄 때 그것을 수용해야 하는가? 내 생각에 교회가 잘못된 판단을 하고 분명히 바른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가는 것처럼 보일 때 그때에 우린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우리는 그러한 때에 너무 성급하게 판단을 하고 자신의 생각을 신뢰하여 교회의 결정에 섣불리 도전해서는 안 된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을 때에라도 뒤로 물러가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고 기도하면서 그분의 간섭을 호소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완전하지 않으며 우리의 판단이 늘 맞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윗은 나라가 안정되고 그 자신도 평안하게 되자 평소에 그의 마음에 있던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자 뜻을 밝혔다. 선지자마저 다윗의 선한 뜻에 기쁘게 응답하였고 그것은 당연히 하나님께도 영광이 된다고 의심 없이 믿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달랐다.
(삼하 7:2)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 (삼하 7:3) 나단이 왕께 아뢰되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행하소서 하니라 (삼하 7:4) 그 밤에 여호와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삼하 7:5)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라는 말은 부정을 암시하는 대답이었다. 다른 평행절에서 “너는 나의 거할 집을 건축하지 말라”(대상 17:4)고 같은 말을 표현하였다. 그의 의도도 좋았고 그의 마음에 열심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대답은 “NO”였다. 어쩌면 다윗은 선지자를 내치고 그의 귀에 달콤한 대답을 주는 다른 선지자를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윗은 선지자를 신뢰했고 하나님의 결정에 굴복했다. 사울 같았으면 무슨 변명을 해서라도 자기 뜻을 관철시키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달랐다. 자신의 좋은 계획도 하나님의 재가 없이는 앞으로 밀고 나가려고 하지 않았다.
(삼하 7:20) 주 여호와는 주의 종을 아시오니 다윗이 다시 주께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삼하 7:21) 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주의 뜻대로 이 모든 큰 일을 행하사 주의 종에게 알게 하셨나이다 (삼하 7:22) 그런즉 주 여호와여 주는 위대하시니 이는 우리 귀로 들은 대로는 주와 같은 이가 없고 주 외에는 신이 없음이니이다
다윗의 대답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아시고 그분의 판단이 가장 위대하시다고 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대답 앞에 자신의 원대하고 아름다운 뜻을 내려놓고 그분의 거룩한 명령에 기꺼이 머리를 숙였다. 이것이 교회에서 하나님의 성도들이 기꺼이 취해야 할 태도다.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어야만 직성이 풀리고 자기 판단에 확신을 가지고 교회의 결정마저도 내키지 않으면 뒤집으려고 하는 자세는 하나님의 집에서 반드시 버려야할 태도다. 하나님은 때론 “기다려라, 지금은 아니다, 혹은 다음에”라고 하신다. 그럴 때는 모든 것을 보시는 하나님이 그럴만한 이유를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유한함과 장래를 알지 못하는 연약한 존재인 것을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뜻과 나의 뜻이 충돌될 때 내가 원하는 것과 하나님이 맡기시는 일이 다를 때 나의 선한 의도마저 수용되지 않을 때 그때에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도록 지켜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