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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사와 T교수-유진오
구분: 단편 소설
저자: 유진오
발표매체: 신동아
발표일: 193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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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만필(金萬弼)을 태운 택시는 웃고 떠들고 하며 기운좋게 교문을 들어가는 학생들 옆을 지나 교정(校庭)을 가로질러 기운차게 큰 커브를 그려 육중한 본관 현관 앞에 우뚝 섰다. 그의 가슴은 벌써 아까부터 두근거리기 시작하였다. 오늘은 그가 일년 반 동안의 룸펜생활을 겨우 벗어나서 이 S전문학교의 독일어 교사로 득의의 취임식에 나가는 날인 것이다. 어른이 다 된 학생들의 모양을 보기만 해도 젊은 김강사의 가슴은 두근두근한다. 저렇게 큰 학생들을 앞에 놓고 내일부터 강의를 시작하는 것이로구나 하고 생각하니 근심과 기쁨에 뒤섞여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것이었다.
세물내온 모닝의 옷깃을 가다듬고 넥타이를 바로잡아 위의를 갖춘 후에 그는 자동차를 내렸다. 초가을 교외의 아침 신선한 공기와 함께 그윽한 나후다링의 값싼 냄새가 코밑에 끼친다. 그는 운전사에게 준 돈을 거스를 필요 없다는 의미로 손짓을 하고 무거운 정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수부(受付)에서 교장실을 묻고 복도를 오른편으로 꺾어 둘째 번 도어 앞에 섰다.
교장은 넓은 방 한가운데다 커다란 테이블을 놓고 듬직한 회전의자 위에 가슴을 내밀고 앉아 있었다. 그 일부러 꾸민 태도는 확실히 김만필을 기다리고 있던 것에 틀림 없었다. 그전에도 김만필은 대여섯 번이나 교장을 관사로 찾아간 일이 있기는 했지만, 그때는 교장의 태도는 몹시 친절한 데다가 두 볼이 푹 패인 얼굴이 위엄이 없어서 제법 만만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렇게 교장실에서 대하는 그는 아주 다른 사람같이 느껴졌다. 교장은 눈을 반짝반짝 날카롭게 빛내며 조그만 머리를 뒤로 젖히고 두 팔을 버틴 품이 금방에 덤벼라도 들것같이 보였다. 그 너무나 굳은 과장된 표정은 자기깐에는 교장으로서의 위엄을 차린 것이겠지만 오랜 동안 속료 생활을 해온 그의 경력을 말하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어- 어서 오시오. 자 이리로-”
교장은 테이블 앞에 있는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면서도 두 볼에 깊이 패인 주름살 하나도 움직이지 않는다. 김만필은 온몸이 오그라지는 것을 느끼며 황송해 의자에 앉았다.
교장은 조금 목소리를 부드럽게 해,
“우리 학교는 처음이죠? 이왕에 오신 일이 있던가요?”
“아뇨, 처음입니다.”
“어때요. 누추한 곳이라서. 도무지 예산이 넉넉지 못하니까.”
“천만에요. 대단히 훌륭합니다.”
김만필은 교장실 창의 반쯤 열어놓은 호화스런 자주빛 커텐으로 눈을 옮기며 대답하였다. 사실 S전문학교의 당당한 철근 콘크리트 삼층 교사는 그 주위의 돼지우리같이 더러운 올망졸망한 집들을 발밑에 짓밟고 있는 것같이 솟아 있는 것이다. 교장실 사치한 품도 김만필의 동경유학시대에는 별로 보지 못한 것만이었다.
교장은 테이블 위에 놓인 종을 서너번 울렸다. 옆방으로 통하는 문이 열리며 모닝을 입은 뚱뚱한 친구가 허리를 굽실굽실하며 들어왔다.
“여보게, 그것 가져오게.”
“핫.”
뚱뚱한 친구는 흘낏 김만필을 보고 체수에 맞지 않게 가볍게 허리를 굽실하고 도로 나갔다. 잠깐 있다가 그는 무슨 종이를 들고 들어와 공손하게 교장에게 내밀었다.
“이것이 당신 사령서입니다.”
하고 교장은 그 종이를 받아 김만필에게로 내밀었다.
김만필은 뚱뚱한 친구의 눈짓에 재촉되어 당황해 일어나서 사령서를 받아들고 허리를 굽혔다.
사령서를 전한 교장은,
“인젠 자네도……”
하고 말을 잠깐 끊었다가,
“우리 학교 직원의 한 사람이니까 우리 학교의 특수한 중대 사명을 위해 전력을 다해주어야 되네.”
“녜.”
하고 김만필은 다시 한번 머리를 숙였으나 속으로는 기가 막혔다. 더군다나 ‘자네’라고 특별히 힘을 주어, 귀에 거슬렸다. 스무살 가량이나 나이가 위이고 또 교장으로 앉은 사람에게 ‘자네’ 소리를 듣는 것은 그리 이상할 것이 없지만 금방 아까까지도 일부러 ‘당신’이라고 하던 끝이기 때문에 그 표변하는 품이 너무나 부자연한 것이었다.
교장은 훈시를 계속하였다.
“그리고 특별히 자네한테 주의를 주는 것은 다름아니라 우리 학교로서는 조선 사람을 교원으로 쓰는 것은 자네가 처음이니까 여러가지로 주의를 해야 한단 말일세, 학생들도 내선인이 섞여 있을 뿐 아니라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도 있고 또 당국으로서의 일정한 교육방침이라는 것도 있으니까, 이런 여러 가지 사정을 특별히 주의해 달라는 것일세. 알어 듣겠지.”
“녜.”
김만필은 또 한 번 고개를 꿉벅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별별 생각을 다 하고 있었다. 교장의 말은 으례히 할 소리에 틀림없지만 그것이 자기한테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니 우스웠다. 동시에 그는 지금 자기가 처해 있는 환경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조금 깨달은 것 같이도 생각되었다.
“그리고 저- 김군. 이 사람을 소개하지. 이분은 교무주임의 T군……”
교장은 아까부터 옆에 양수거지하고 섰는 뚱뚱한 친구를 소개하였다.
“T― 올시다. 앞으로 많이 사랑해주십시오.”
T교수는 거리의 장사치같이 허리를 굽히며 김만필에게 절을 했다. 김만필은 그제서야 약간 숨을 내들이고 금방 아까까지 경멸을 느끼던 이 T교수에게 도리어 호감을 느끼며 자기도 공손하게 마주 예를 했다.
“자, 그러면 우리 저 방으로 가십시다. 곧 식이 시작될 테니까. 교련의 A소좌도 와 계십니다.”
T교수는 앞서서 김강사를 그 옆방―-교수실로 안내했다. T교수의 설명에 의하면 A소좌는 먼저 있던 M소좌의 뒤에 이번에 새로 S전문학교로 배속이 되었기 때문에 오늘 김과 함께 취임식에 나간다는 것이었다. 김만필은 A소좌와 나란히 앉아 자기의 환경 변화가 너무나 심해 어째 꿈나라에나 온 것같이 생각되었다. 그의 과거―는 그만두더라도 아까 그가 아침을 먹고 나온 하숙집 풍경, 그 더러운 뒷골목 속에 허덕거리고 있는 함께 있는 사람들, 하숙료를 못 내고 담배값에 쩔쩔매는 영화감독, 일 년 열두 달 감시를 못 벗어나는 요시찰인, 잡지기자, 아침부터 밤중까지 경상도 사투리로 푸성귀 장수, 밥값 못 낸 손님들을 붙들고 꽥꽥 소리를 지르는 하숙집 마나님……이런 모든 것과 이 당당한 건물, 가슴에 훈장을 빛낸 장교, 모닝의 교수들 새에는 대체 어떠한 연락의 줄이 있는 것일까. 김강사는 이 두 가지 연락 없는 풍경의 중간에서 기적과 같이 연락을 붙여 놓고 있는 자기 자신이 아무리 해도 현실의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 것이었다.
김강사와 A소좌의 취임식은 제이학기 개학식에 이어 거행되었다. 식장은 엄숙하다 못해 살기가 뻗친 것 같았다. 교장은 김만필을 동경제대를 졸업한 보기 드문 수재라고 소개하고 이어 이번에 새로 교련을 맡아보게 된 A소좌를 맞이하게 된 것은 실로 분수에 넘치는 영광이라고 말했다. 교장이 단을 내려오자 T교수에게 재촉되어 김만필이 먼저 단위로 올라가고 다음에 A소좌가 따랐다. 단위에 선 김강사는 몹시 흥분되어 얼굴이 창백하였다. 검붉은 햇볕에 탄 얼굴과 강철같은 체격에 나이도 김만필의 존장뻘이나 됨직한 A소좌가 그 옆에 와 나란히 섰다.
“게―렛―!”
깜짝 놀랄 만큼 큰 소리로 체조선생이 호령을 불렀다. 동시에 검은 머리가 일제히 아래로 숙였다.
S전문학교의 신임교원 취임식이 엄숙할 것쯤이야 미리부터 짐작 못한 배 아니었지만 막상 눈앞에 대하고 보니 김만필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학생들이 경례를 하고 있는 동안에, 그것은 짧은 동안이었지만 그는 이상하게도 정신이 찬물같이 맑아지며 끝없이 얼크러진 모순에 찬 자기의 과거와 현재를 분석하고 비판해보는 것이었다. 대학 시대에 문화비판회라는 학생단체의 한 멤버이었던 일, 졸업하자 그때까지 속으로 멸시하고 있던 N교수를 찾아 취직을 부탁하던 일, N교수로부터 경성 어떤 관청의 H과장의 소개장을 받던 일, 서울서는 H과장 집에 자주 드나들면서도 일변으로는 신문 잡지 등속에 독일 좌익문학운동의 소개 또는 평론 같은 것을 쓰던 일, H과장의 소개로 작년 가을 처음으로 이 S전문학교 교장을 찾아갔던 일―이 모든 것은 하나도 모순의 감정 없이는 한꺼번에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생이란 도대체 모순 그것이 아닌가 하고 그는 생각해보았다. 그중에도 지식계급이라는 것은 이 사회에서는 이중 삼중 사중 아니 칠중 팔중 구중의 중첩된 인격을 갖도록 강제되고 있는 것이다. 그 많은 중에서 어떤 것이 정말 자기의 인격인가는 남모르게 저 혼자만 알고 있으면 그만인 것이다. 어떤 사람은 사실 똑똑하게 이것을 의식하고 경우를 따라 인격을 변한다. 그러나 어떤 자는 자기 자신의 그 수많은 인격에 황홀해 끝끝내는 어떤 것이 정말 자기의 인격인지도 모르게 되는 것이다―
아―더러운 노릇이다, 싫은 노릇이다, 라고 김만필은 생각하였다. 그러면 지금 자기는 어떤가? 그 대답은 마음 깊은 속에는 벌써 똑똑하게 나와 있는 것같이 생각되었으나 그것까지는 지금 분석해보기가 싫었다. 그에게는 그 단위에 올라 서 있는 짧은 동안이 지긋지긋하게 지루하게 생각되었다. 어째 눈이 핑핑 돌고 다리가 후둘후둘 떨리는 것같았다.
식이 끝나고 강당을 나올 때 T교수는 김만필―아니 김강사의 옆으로 오며,
“긴상, 몹시 몸이 약하시구먼. 얼굴빛이 대단 좋지 않은데요. 어디 괴로우십니까?”
하고 물었다.
“아뇨. 별로 몸에 고장은 없습니다마는―”
김강사는 등에 식은땀이 흐른 것을 느끼며 대답했다.
[2]
김만필은 생전 처음 서는 교단이라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그날 밤은 늦도록 공부를 했다. 전에 있던 선생이 병으로 일학기를 거의 전부 빼먹었기 때문에 학생들의 독일어는 아―베―체―부터 가르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무슨 실수가 있을까 봐 아―베―체―, 아―베―체―하고 알파벳 발음 연습까지 해보았다. 그의 수업 시간은 바로 개학식 다음날에 끼여 있는 것이었다.
이튿날 아침, 김강사는 전날의 취임식 광경 같은 것을 생각해가며 그래도 얼마쯤 마음 가볍게 학교를 갔다. 교원실에 들어가니까 먼저 와 있던 교수가 두서너 사람 떠들고 있다가 잠깐 말을 멈추고 김만필의 인사에 대답하고 도로 떠들기 시작하였다. 시간강사인 김만필에게는 아직 책상이 돌아오지 않았으므로 그는 하는 수 없이 창 앞으로 가서 담뱃불을 붙였다. 교수들은 김만필이 있는 것을 잊어버린 듯이 자기들끼리만 떠들고 있는데 이야기는 아마도 엊저녁의 여자에 관한 것인 듯싶었다. 교수가 하나 늘고 둘 더 옴에 따라 교원실의 소동도 점점 더 커갔다. 그들은 그 여름이 몹시 더웠던 이야기, 비리야드, 해수욕, 등산, 갑자원, 야구, 긴부라(은좌 통신보) 스텍기 걸 등등 갖은 종류의 무의미한 화제에 대해 시골 공직자같이 굵은 소리를 내서 한없이 떠들어대었다.
이러한 교원실의 공기는 김강사에게는 극단으로 천하게 생각되었다. 전문학교의 교수라고 하면 좀 더 학자적 근신과 학문적 향기를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마치 보험회사 외교원이나 길거리의 약장수같이 떠드는 것은 무슨 꼴인가. 그러다가 생각하니 그 떠들고 있는 여러 사람 중에 김강사와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이었다. 김강사는 자기가 일부러 돌림뱅이가 된 것 같아서 몹시 고독을 느꼈다. 그러나 그렇지도 않다. 다른 사람들은 김강사의 존재를 무시하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그를 모욕하는 것이다. 허지만 아니다, 이것은 자기가 ‘신출’이기 때문이다, 용기를 내서 그들 틈에 한몫 끼어보리라고 돌이켜 생각도 해본다. 그러나 무어니무어니 해도 그는 아직 책상물림이라 그렇게 뻔뻔한 배짱은 없었다.
김강사는 이내 교원실을 나와, 옆에 있는 신문실로 들어갔다. 신문실에는 외국서 온 신문 잡지 등속이 겉봉도 뜯지 않은 채로 책상 위에 흩어져 있었다. 새로 온 독일의 그림 신문을 펴들고 있노라니 문이 열리더니 T교수의 벙글벙글하는 친절한 얼굴이 나타났다.
“어―이런 데 와 계셨습니까. 신진 학자는 다르시군.”
김강사는 의미없이 얼굴을 붉히며 일어나 아침 인사를 했다. T교수는 어슬렁어슬렁 옆으로 오며,
“바로 이번 첫째 시간이 당신 시간이지요?”
“녜.”
“그거 대단 잘됐습니다. 처녀 강의를 새학기 첫 시간에 하시게 됐으니.”
“녜, 무어.”
T교수는 빙글빙글 웃으며 걸상에 앉아서,
“허…… 무어, 어련허실 것은 아니지만 교장도 걱정을 하고 계시기에 또 말씀하는 것입니다만”
하고는,
“그건 다름아니라 당신은 교단에 서시는 것이 처음이시라니까 학생 조정술 같은 데 대해 안즉 생각해보신 일이 없으실 줄 아는데요. 어쨌든 이 선생장사라는 것은 남이 보기에는 신성한지 몰라도 결국은 말하자면 일종 인기 장사니까요. 선생이 오면 학생 놈들의 버릇이 으례히 찧고 까불고 괴롭게 굽니다. 말하자면 이것도 시험이라 헐까요. 이 시험에 급제를 하면 관계찮지만 만일 떨어지는 날이면 탈이 납니다. 나도 그전에는 이 시험을 당했습니다. 허…… 그리고 또 이건 당신과 나 사이니까 말씀하는 것이지만.”
하고 T교수는 목소리를 낮추어,
“어제 교장선생도 잠깐 말씀하셨지만 여기는 내선공학 아닙니까. 그러니까 당신한테 대해서도 내지인 학생들이 어떤 태도를 가질는지 이것이 걱정이 됩니다. 쓸데없는 일로 학생들 새에 무슨 재미없는 일이 있더라도 안됐고…… 허기는 다 어련하시겠습니까마는 허”
T교수의 말을 듣고 있는 동안에 김강사는 그의 말을 깊이 생각해볼 여유도 없이 그저 그에게 감사하는 생각뿐이었다. 금방 아까까지 그는 고독을 느끼고 있던 끝이라 상관이며 또 경험 많은 선배인 T교수로부터 이런 솔직한 의견을 듣는 것은 정말 고맙게 생각되었다.
T교수는 몇 마디 잡담을 더하고 일어나 나갔다. 뚱뚱한 몸을 흔들흔들하며 나가는 뒷모양이 김강사에게는 몹시 믿음직해 보였다. 사실을 말하면 김강사는 N교수― H과장―S교장― 이렇게 학벌 동향 관계 등의 썩어진 인연을 더듬어 이것을 교묘하게 이용해 차례로 그들을 꼼짝 못할 곤경으로 몰아 넣어가지고 억지로 이 S전문학교에 비비고 들어온 것이므로― 거기다가 자기는 조선사람이라는 자격지심도 있었고― 이곳의 교원들에게 이상스런 눈초리로 뵈어지는 것을 처음부터 염려했던 것이다.
그 염려가 어째 헛것이 아니었던 것같이 생각되어가는 이 때에 T교수가 나타난 것이다. 그만큼 그의 친절한 말은 그야말로 빈 골짜기의 발자국소리 같이 생각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첫째 시간의 처녀강의는 의외로 평온하게 지났다. 그를 괴롭게 하기는커녕 학생들은 도리어 이 새로 온 색다른 선생의 말을 흥미있게 듣고들 있었다. 김강사는 T교수의 주의도 있고 해서 머리를 길게 늘인 국수파 방카라 학생들에게 특별히 경계를 하였으나 그들도 의외로 얌전하게 그의 강의를 듣고 있었다. 단위에 올라서서 말하는 동안에 차차로 마음이 가라앉아서 어깨를 으쓱하고 눈살을 찌푸리고 앉은 그들 방카라 학생들의 꼴이 도리어 어리게도 보였다.
시간을 끝내고 교원실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노라니 T교수가 또 와서 처음 교단에 선 감상이 어떠냐고 빙글빙글 웃으며 물었다.
“아무 감상도 없었습니다마는 생각던이 보다도 학생들은 얌전하더구만요.”
김강사는 약간 득의의 어조로 대답하였다.
“그렇습니까. 그것 잘됐습니다. 허지만요, 아직 방심해선 안 됩니다. 학생들 중에는 별별 고약한 놈이 다 있으니까요.예 별놈이 다 있습니다.”
하고 T교수는 학교 수첩― 학생들이 엠마쬬라고 부르는 것―을 꺼내면서,
“당신은 아직 처음이시라 모르실 테니까 미리 말씀해드립니다마는(하고 수첩을 펴 연필 끝으로 죽 훑어내려가면서) 우선 이 스스끼란 놈만 해도 웬 고약한 놈입니다. 학교는 결석만 하면서 어쩌다 나오면 선생한테 시비 걸기가 일쑤고, 이런 놈은 졸업은 안 시킬 텝니다. 그리고 또 이 야마다라는 놈, 이놈도 건방진 놈입니다. 그리고 이 김홍규란 놈, 또 가도오란 놈, 그리고 주형식, 이누이 다까하시, 최, 박, 마쓰모도…… 나쁜놈들 뿐입니다. 바보같은 놈들. 도대체 이 반은 급장부터가 건방져서…….”
T교수의 목소리는 열을 띠어오며 증오의 가시로 듣는 사람의 신경을 쿡쿡 찌르는 듯이 울렸다. 김강사는 너무나 의외의 광경에 놀랐다. 웬일일까, 이 온후해 보이던 T교수가. 대체 교육자의 태도라는 것이 이래도 좋은 것인가.
“허지만…….”
하고 김강사는 T교수의 안색을 들여다보며 말을 끼웠다.
“이편에서 성심으로 전력을 다해도 안 될까요.”
“허…….”
T교수는 조금 체면이 안된 듯이,
“그야 물론 그렇지요. 학생들이야 어쨌든 이편만 잘하면 그만이지요. 허지만 그것도 저편에서 이편 뜻을 알어줄 때라야지 않겠습니까. 당신도 인제 좀 치어다보시면 차차 생각이 달라지십니다. 학생이라는 것은 요컨대 선생의 ×입니다. 이편에 조금만 틈이 있으면 그저 용서없이 달려드는 겝니다.”
마침 그때 급사가 찾으러 왔으므로 T교수는 말을 끊고 교무과로 가버렸다. 그러나 그가 간 뒤 김강사는 몹시 우울하였다. 교육이라는 것의 발가벗은 꼴을 눈앞에 본 것 같았다. 그러나 또 그것보다도 그는 오직 하나의 지기로 생각하는 T교수를 삽시간에 잃은 것이 아까왔다. 아― 무서운 사람이다, 라고 그는 생각하였다.
둘째 시간 종이 울렸으나 김강사는 멍하니 듣고 앉았을 뿐이다.
[3]
며칠 지난 후 토요일 밤이었다. 김만필은 오래 찾아보지도 못한 H과장에게 치하의 인사도 할 겸 하숙을 나섰다. H과장은 솔직하고 평민적인 호감을 주는 인물이었다.
H과장의 집은 북악산 밑 관사촌의 북쪽 끝에 있었다. 저녁 후의 고요한 관사촌은 김만필의 발자국소리에 놀라 셰파드인지 무서운 개들의 짖는 소리로 몹시 요란스러웠다. H과장의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을 돌려는 순간 바로 등 뒤에서 분주하게 걸어오는 발자국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바로 등 뒤에까지 온 그 사람의 얼굴과 마주칠 뻔하였다.
“어―”
“어―”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 뒤에 온 것은 T교수였다. 그는 무엇인지 네모진 보퉁이를 끼고 있었다. T교수는 의외로 김강사와 마주쳤기 때문에 잠깐 머뭇머뭇하더니 별안간,
“얏데루나(할 짓은 다 하는구먼).”
하면서 김만필의 어깨를 툭 치며 더러운 비밀을 쥐고 있는 사람끼리만이 주고받는 비열한 미소를 띠었다. 그 미소의 의미는 김만필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별로 그런 것도 아닙니다.”
김만필은 좀 좋지 않아 말했다.
“천만에. 흥, 당신도 나는 책상물림으로만 알았더니 상당하구먼.”
T교수는 여전히 그 미소를 띠고 있었다.
“아니, 정말 무슨 별짓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도 아시겠지만 나는 H과장의 힘으로 이번에 취직이 된 것이니까요.”
김은 변명에 힘을 들였다.
“그건 나도 잘 압니다. 그러기에 당신도 상당하단 말이지. 나는 H과장하고는 고향이 같다우.”
“녜― 그러세요.”
김만필은 더 할 말이 없었다.
T교수는 잠깐 무슨 생각을 하더니,
“잠깐만 거기서 기둘러주시오.”
하고 저벅저벅 골목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더니 또 무슨 생각을 했는지 도로 나와서 김만필의 어깨를 또 한 번 툭 치며,
“허…… 왜 그렇게 멍하고 계슈. 세상이란 다 이런 게 아니우.”
하고 들었던 보퉁이를 김만필의 눈앞에 번쩍 들어보이고 다시 골목속으로 들어가 H과장집 부엌 쪽으로 사라졌다.
하녀하곤지 컴컴한 속에서 잠깐 쑤군쑤군하더니 T교수는 곧 나왔다. 이번에는 아까와는 달리 평상때의 침착한 태도를 회복하고 성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 들어갑시다.”
그리고 그는 잠자코 H과장집 정면 현관의 초인종을 눌렀다.
두 사람이 H과장 집을 나온 때는 아직 초저녁이었다. T교수는 어디로 잠깐 차라도 마시러 가자고 졸랐다. 김만필은 그에게 대해 차차로 말할 수 없는 불쾌를 느끼고는 있었으나 어쨌든 같이 가기로 했다.
두 사람이 간 곳은 ‘세르팡’이라는 술집이었다. 쑥 빠진 동경여자라는 모던 여성이 카운타에 서 있는 깨끗한 집이었다. 여자는 둘이 들어서자,
“아라 T―상.”
하고 환영하였으나 T교수는 쉬―하고 입술에 손가락을 대 침묵을 명하고 구석 테이블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자주 오십니까, 이 집에?”
김만필은 캉캉하게 생긴 여자와 뚱뚱한 T교수를 번갈아보며 물었다.
“녜, 가끔 옵니다. 당신은?”
“나도 두세 번 온 일은 있습니다만.”
T교수는 여급에게 레몬 티 두 잔을 주문하고,
“긴상 어떠시우, 이건?”
하고 왼손으로 술먹는 시늉을 해보였다.
“아주 못 먹습니다.”
“이거 왜 이러슈. 난 벌써 소문 다 듣고 앉았는데, 허허허……”
하고 너털웃음을 웃고 나서,
“긴상, 긴상 일은 무엇이든지 내 다 잘 알고 있답니다.”
하고 이번에는 음침하게 눈을 가늘게 했다.
“긴상은 모르시겠지만 당신 일로 H과장과 우리 학교 교장 새에서 연락을 붙인 것은 사실은 이 나랍니다.”
T교수의 말은 김만필로서는 처음 듣는 소리였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T교수의 지금 지위로 보아서 당연히 믿음직도 한 노릇이다.
“그럼, 교장하구두 한 고향이십니까?”
“그렇구 말구요. 안 그렇습니까.”
T교수는 뜨거운 차를 후―후 불며 대답했다. 차를 단번에 마시고 나서 이번에는 위스키를 주문했다. 위스키를 연달아 두서너 잔 먹고 나서 T교수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말을 꺼냈다.
“실상은 나는 전부터 당신을 알고 있었답니다. 우리 학교로 오시기 전부터.”
T교수의 싱글싱글 웃는 얼굴에는 네 비밀은 내가 환하게 알고 앉았다는 의미의 표정이 나타나 있었다. 김만필은 슬그머니 겁이 났으나 잠자코 있노라니 T교수는 기운이 나서 떠들었다.
“나는 작년부터 조선말을 배우기 시작했는데요. 그 때문에 언문 신문을 조선 학생에게 통역해 달라며 읽고 있었는데(김만필은 가슴이 뜨끔했다) 그런 관계로 작년 가을이던가 당신이 쓰신 ‘독일 좌익작가군상’이라는 논문을 읽었에요. 그 논문에는 정말 탄복했습니다. 독일문학에 대해 당신만큼 연구가 깊은 이는 내지에도 적을 것입니다. 참 탄복했습니다. 그래 나는 H과장한테 맨 처음 당신 말씀을 들었을 때 그런 이는 우리 편에서 초빙해도 좋다고, 이래봬도 나도 힘을 썼답니다. 조선사람 중에도 차차 당신같이 훌륭한 사람이 나오게 됐다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앞으로도 많이 힘써주십시오.”
T교수는 웅변이 되어 김만필을 칭찬하였으나 김만필은 상처나 다친 듯이 속이 뜨끔하였다. 대체 T교수는 어째서 이런 말을 꺼내는 것인지 그 내심을 알 수가 없었다. ‘독일 좌익작가군상’이라는 논문은 작년 가을에 몇 푼 안되는 원고료를 목표로 총총히 쓴 것에 지나지 않았으며 더구나 그 내용은 S전문학교의 직원의 한 사람인 김만필로서는 절대로 비밀에 붙여야 할 것이었다. 김만필은 그것을 익명으로 하지 않았던 경솔을 새삼스레 후회했다. 그리고보니 그는 익명으로 쓴 그 외의 몇 가지 논문이 생각났다. 그것들은 제법 좌익평론가인 체하고 꽤 흰소리를 뽑은 것이기 때문에 만일 그런 것이 탄로가 나면 모든 것은 다 낭패가 되는 것이다. T교수는 그것들까지도 알고 있는 것일까. 김만필은 의심을 품은 눈초리로 T교수의 얼굴을 더듬었으나 그는 여전히 싱글싱글 웃고 있을 뿐이었다. 김강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서운 압박을 느꼈다.
‘세르팡’을 나오자 김만필은 잠시라도 빨리 T교수의 옆을 떠나고 싶었으나, T교수는 김만필의 양복 소매를 잔뜩 붙들고 ‘바하트 암 라인’을 콧노래로 부르며 요리집 등속이 늘어선 A정으로 끌고 갔다. 그들이 간 곳은 어느 골목 속 조그만 오뎅집으로 삼십 살 가량 되어보이는 예기 출신인 듯한 여자가 오뎅남비 뒤에 서 있었다.
T교수는 이곳서도 단골손님인 듯 여자와 농담을 주고 받고 하며 술을 먹었다.
두 사람이 오뎅집을 나왔을 때에는 자정이 지나 있었다. 이번에는 김만필도 상당히 취했으나 정신은 도리어 똑똑했다. 삼월백화점 앞에 와서 T교수는 단장을 들어 지나가는 택시를 불렀다. 김만필이 사양하니까, 전차도 끊어졌는데 걸어갈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 집에 갈려면 어차피 자네 집 앞을 지나니까 같이 타자고 억지로 태웠다.
“우리 집을 아십니까?”
김만필은 자동차가 움직이자 물었다. T교수의 훌륭한 문화주택이 김강사의 하숙 근처에 있는 것은 자기도 잘 알고 있었지만 뒷골목 속 더러운 그의 하숙을 T교수가 알고 있는 것은 정말 의외였다.
“아다마다. 문간에 명함 붙여놓지 않었나. 잘 아네.”
“네―”
김만필은 기가 막혔다.
“우리 집도 잘 알지? C상집 바로 옆이야. 인제 가끔 놀러오게.”
“녜, 가지요.”
하고 김만필은 대답했으나 마음속으로는 안 가리라, 절대로 안 가리라고 생각하였다. 무엇 때문에 이 자는 탐정견 모양으로 모르는 게 없단 말인가. 하숙까지 알다니…… 김만필은 으시시 추웠다. 그러다가는 나중에 무슨 소리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것이었다.
자동차가 박석고개를 넘어갈 때 T교수는 김만필의 귀에다 대고,
“인제 차차 김군도 알겠지만 우리 학교 안에도 여러 가지 암류가 있으니 주의하는 게 좋네. 더군다나 S군한테는 주의해야 되네.”
하고 수수께끼 같은 말을 속삭였다. S라는 사람은 전해 봄에 만주 공과대학 학예과로부터 S전문학교로 옮겨온 사람으로 이 봄에 교수가 될 것인데 어떤 사정으로―그 이면에는 T교수 일파의 책동이 있었다―교수가 못되어 그것에 불평을 품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정은 김강사는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 무슨 관계가 있나 하고 생각해보았으나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