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매립지 두고 갯벌 메워… 1846억 쓰고도 ‘진흙탕 야영장’
[잼버리 준비 부실]
부지 선정부터 실패한 잼버리
배수가 안 돼 물이 차 있는 새만금 잼버리 야영지. 부안=뉴시스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행사장이 열악했던 이유를 추적해 보면 ‘첫 단추’라고 할 수 있는 부지 선정부터 잘못됐다는 결론에 이른다. 새만금 내 기존 매립지 대신 공유수면(갯벌)을 부지로 정한 탓에 매립공사에 3년간 1846억 원을 쏟아붓고도 나무 한 그루 없는 진흙탕에 야영장이 만들어졌다. 9일 취재팀이 분석한 잼버리 관련 회의록에는 정부와 전북도 관계자들이 청소년 참가자들의 안전보다 새만금 개발을 우선시한 정황이 그대로 기록돼 있었다.
● 기존 매립지 두고 ‘갯벌 메워 개최’ 강행
전북 부안군 새만금 3권역 관광레저용지가 잼버리 개최 후보지로 정해진 건 2015년 9월이었다. 송하진 당시 전북도지사가 “백지의 땅에 세계 청년들의 꿈과 희망을 무한대로 그려 넣을 수 있다”며 한국스카우트연맹을 설득한 끝에 새만금이 다른 후보지였던 강원 고성군을 제치고 국내 후보지로 정해졌고, 2017년 8월 세계스카우트연맹이 이를 확정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당시 새만금 내에는 신시∼야미 관광레저지구(6.3㎢) 등 매립한 지 10년 이상 지나 나무가 자랄 정도로 안정화된 부지가 여럿 있었다. 하지만 전북도는 매립되지 않아 갯벌과 다름없는 8.84㎢를 개최지로 밀어붙였다.
새만금 개발 비용이 불어나고 예상보다 진척이 느려지자 매립 비용을 한국농어촌공사의 농지관리기금으로 충당하기 위해서다. 기존 관광레저용지였던 이곳을 농업용지로 바꾸면서까지 이를 강행했다. 매립공사에 투입된 예산 1846억 원은 잼버리 사업비 1171억 원의 1.6배에 달한다. ‘최적의 개최지’를 먼저 정한 게 아니라 새만금 일대 개발을 위해 잼버리를 끌어들였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매립공사는 2020년 1월 착공해 지난해 12월에야 마무리됐다. 부실시공 논란을 빚은 샤워장 등 영지 시설을 올해 3월에야 짓기 시작한 것도 부지가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부지가 농업용지인 탓에 평지로 조성돼 배수가 원활하지 않았다. 바닷물이 완전히 빠지지 않아 나무를 심을 수 없었고, 물을 억지로 퍼낼 간이펌프를 조달하는 데만 2억5000만 원을 더 썼다.
부지 매립을 담당한 한국농어촌공사 측은 “매립 (착수) 당시엔 침수 문제가 이렇게 심각할지 예상하지 못했다. (땅을) 콘크리트로 완전히 메우지 않는 이상 물이 빠지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며 부지의 문제점을 시인하면서도 “간이펌프를 설치해 침수 문제는 상당히 해결했다고 본다”고 해명했다.
● “잼버리 목적은 숙원인 공항, SOC 해결”
정부와 전북도가 성공적인 행사 개최보다 개발을 우선시한 정황은 여러 회의록에서 드러난다. 2017년 12월 6일 제19차 새만금위원회 회의에서 당시 이낙연 국무총리는 잼버리 부지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께서 선거 중에 공공매립을 말씀하셨는데 속도가 나지 않아서 고심했다”며 “농지기금을 써서 부지를 일단 매립하고 그다음에 관광레저지구로 돌린다거나 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용지 변경은 농지관리기금을 타내기 위한 ‘위장’이었던 셈이다. 추가적인 예산 확보가 어려운 공공매립보다 농지관리기금을 활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전북도는 개발 목적을 숨기지도 않았다. 2017년 11월 전북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 회의에서 당시 김대중 도의원은 “잼버리를 하려는 목적은 숙원사업인 공항이나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을 해결하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최병관 전북도 기획조정실장(현 행정안전부 지방재정경제실장)은 잼버리 유치의 목적에 대해 “새만금을 좀 더 속도감 있게 개발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환경단체는 정부와 전북도가 개발 이익을 위해 청소년을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지적했다. 김나희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홍보국장은 “새만금 매립 명분을 얻기 위해 전 세계를 상대로 사기극을 벌였다”라며 “특히 농업용지가 아닌 걸 알면서도 1846억 원의 농지관리기금을 내준 건 그 자체로 배임 범죄다”라고 지적했다.
조건희 기자, 이지운 기자, 부안=박영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