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지쳐 4년 여 끝에 이혼
기간제 근로직으로 5남매 보살펴
병원·생활비 이중고, 머물곳 없어
가을이 뒤태를 보이며 얼마 남지 않은 잎사귀를 붙들고 바람과 씨름하던 날, 4년여 실랑이 끝에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은 효경 씨는 헤어짐과 동시에 남편을 기억에서 지웠다. 술주정뱅이에 가정 폭력이 심했던 남편은 늘 목소리가 컸으며 잡히는 대로 살림을 부수는 터에 효경 씨와 아이들은 무방비 상태로 맞고는 쫓겨나기 일쑤였다. 20년의 결혼생활 내내 효경 씨는 그의 경제적인 무능력함과 무책임함에 지쳐버렸고 그렇게 텅 비워진 아버지의 자리에도 5남매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며 어찌 그리 모질고 포악했었는지 모르겠다고,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했다.
▲ 가정폭력에 쓴맛으로 가득 찬 20년
멀리 경기도에서 울산으로 시집와 누구보다 단란했던 가족의 모습을 꿈꿨던 효경(43)씨였다. 하지만 그렇게 이룬 가정을 파국으로 몰아간 것은 남편의 터무니없는 거짓말이었다. 도박과 술에 빠진 남편은 월급을 받아도 이리저리 둘러대기 바빴다. 어쩌다 효경 씨가 생활비를 요구할라 치면 도리어 남편에게 상습적으로 폭행과 폭언이 부메랑처럼 돌아왔다.
“매정한 남편은 가족을 돌볼 생각조차 안 했어요. 그저 술로 허송세월만 보낼 뿐이었지, 큰 아이 어릴적 배가 곯아 보채는 아이 분유값이라도 벌어올테니 아이를 봐달라 애원하고 또 애원해도 남편은 냉정하게 뿌리칠 뿐이었으니까….” 5남매의 엄마 효경 씨는 긴 한숨부터 내뱉었다. 20년 결혼생활 동안 남편이 술을 마시고 온 날에는 어김없이 갖은 폭력이 가해졌다. 더욱이 도박으로 4년 동안 1억원을 잃은 남편의 화풀이 대상은 매번 가족으로 향했다. 막내에게 리모컨을 던지는 바람에 발가락 뼈가 부러지기도 했고, 근래엔 큰 아이 아르바이트 급여도 내놓으라고 호통을 치는 등 고된 나날이 일상인 듯 이어졌다. 그래도 그때마다 아이들 아버지라 이혼만은 안 된다고 눈물을 꾹꾹 눌러 담으며 효경 씨는 강해지려고 발버둥 쳤다. 자신이라도 5남매의 방패막이가 돼야 한다고 아이들을 한 방에다 숨기고 문 앞에서 쪼그려 잠든 적도, 그러다 남편의 이유 없는 구타를 혼자 감당했던 것도 수 날이다. 아직도 그 때를 생각하면 불안함에 몸이 떨린다는 효경 씨의 말에 가슴이 아려왔다.
▲ 모진 시집살이, 눈물로 지새운 세월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래, 어떤 며느리든 시집살이를 겪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만 돌이켜보면 효경 씨에겐 그 시간이 유독 힘든 시절이었다고 했다. 시부모 두 분을 모시며 살겠다고 결심했지만 결혼 한지 4일 만에 “친정에서 돈 해와”, “계집년이 시부모가 시키면 해야 할 것 아니냐”며 돈을 요구해댔다. 억지스러운 요구에 몇 번, 자식 된 도리로 몇 번, 효경 씨 주머니에서 그때그때 뜯어간 돈으로 여유가 생길 때면 그 길로 서울에 올라가 명품으로 치장하며 사치를 부렸다. 아무리 남편 복 없다 셈 쳤지만 시부모의 모진 시집살이까지 겪은 뒤 효경 씨는 마음의 병으로 얼굴에 늘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 있었고, 화가 쌓여 미움이 되고 원망만 커져갔다. 그때마다 외면하고 회피하는 남편을 보면서 가정의 불화는 더욱 심해졌고, 설상가상으로 다섯 이종사촌들과 시누이의 미움까지 사 더 이상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마음의 상처를 갖게 됐다.
그로 인해 효경 씨는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렸다. 늘 불안했고, 초조했으며 하루하루가 견디기 힘든 나날이었다. 인내하고 마음을 다스려 보려고 했지만 그럴 때마다 내 아픈 상처만 더 크게 보일 뿐, 인생을 매일같이 비관했다.
▲ 엄마와 5남매 ‘정신·신체장애’ 그늘
‘하늘도 무심하다’는 표현이 맞을까. 남편의 폭력에서 아이들을 떼놓겠다고 결국 이혼을 결정한 엄마 효경 씨지만 5남매 역시 가난과 가정불화로 힘들었던 과거는 공통분모였다. 즉, 정서적으로 짙어진 그늘은 효경 씨 혼자만의 고통이 아니었다. “남편의 술버릇, 손버릇을 버텨보려고 한 게 깊은 상처만 남겼고, 제가 올해 들어서야 이혼을 마무리 지은 게 너무 늦은 건 아닌지… 자식들한테 몹쓸 병을 물려준 것 같아요”라며 희경 씨는 내리 가슴을 쳤다.
첫째 승현(21)이는 정신장애 3급에 사춘기 시절 학원 선생님의 폭력으로 양극성 장애인 조울증, 우울증, 자폐증 등 무려 9개 병명의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당시 겪었던 막연한 두려움으로 자살을 기도했던 적도 있어 효경 씨의 마음을 쓰리게 만들었다. 대학 입학을 앞두고 집과 학교 밖에 모르는 둘째 수현(19)이도 전교 10등까지 할 정도로 똑똑한 아이었지만 중학교 다닐 적 원인 모를 이유로 왕따를 당해 사교성이 부족하다. 남매들 중 가장 책임감 있는 셋째 정현(17)이는 태권도에 재능을 보이고 있지만 한 쪽 다리의 골수염을 지니고 있다. 넷째 승범(12)이와 다섯째인 막내 수정(10)이는 장애학교에 나란히 다닌다. 승범이는 난독증과 학습장애를, 지능이 4살에 머물러 있는 수정이는 청각장애 5급, 지적장애 2급으로 한 쪽 눈까지 보이질 않는 상태다.
▲ 힘들거란 지레짐작” 벗고 희망의 끈을
아이들은 효경 씨의 희망이자 기쁨이다. 그래서 이혼 후 자립하기 위해 기간제 근로자로 억척스럽게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지만 이마저도 계약이 만료돼 재계약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신세다. 효경 씨의 불안전한 근로수입과 기타 공공부조로는 5남매의 병원비, 학비, 생활비로 턱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또 얼마 전 허리디스크까지 발병한 효경 씨는 녹록치 않은 현실에 무엇보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지난날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아이들에게 또 다른 상처가 생길까봐 걱정이 앞선다. 무엇보다 친권과 양육권 모두를 포기한 아이들의 아버지 또한 신용불량자 신분으로 월급이 차압당하는 중이면서도 부양자로 잡혀 효경 씨네 가족이 기초생활 수급도 어려운 실정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년이면 살던 집도 내줘야 하는 처지에 놓여 이사를 가야 하지만 보증금이 부족해 당장 여섯 식구가 머물 곳도 마땅치 않다. 점점 가족을 옥죄는 현실에 효경 씨는 말한다. “현재를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을래요, 단지 지금보다는 좀 더 수월하고 평범하게 도란도란 살아가는 꿈. 받은 만큼 돌려주며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 모든 것도 자식에 대한 모성애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아온 5남매의 구심점, 엄마인 자신의 몫이라고.
글=신유리 기자
사진=김종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