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BT산업 비전과 인천지역 약학대학 역할 토론회’가 지난 10월 26일 오후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인천지역을 대표하는 언론 방송사가 공동 주최하고 인천언론인클럽이 주관한 행사로 시민들의 관심사가 된 현안이었기에 심도있고 중량감 넘쳐 보이는 토론회였다. 하지만 각 대학들의 유치 설명을 듣는 순간 유토피아(이상향)의 별세계에 온 기분이었다. 인천시약사회는 과포화 상태인 기존 약국들의 영업권, 4년제 약대 졸업 회원과 앞으로 배출될 6년제 졸업 회원들 간의 갈등 등 현실적인 문제점이 더 시급한 고민이었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출산을 장려하지만 국민들이 이에 호응하지 않는 이유는 양육과 교육의 책임감 때문이다. 약대 신설과 증원을 두고 정부와 각 대학은 숫자놀음과 자기 대학의 위상을 높이겠다는 욕심만 부리기 앞서 배출될 약사들의 취업에 대해 일말의 책임감을 느껴보았는지 궁금했다.
현재 인천시약사회 회원 중 908개 약국 외 타 직종에 근무하는 회원은 90명에 불과하다. 특히 9개 보건소 중 약사가 근무하는 곳은 6개에 불과하고 270만 인천시민의 건강을 책임져야 할 인천시청 관련부서조차 약사가 한 명도 없다. 준종합병원과 대학병원에서도 근무약사 정원을 채우지 못한 곳이 적지 않다. 앞으로 배출될 약사들에게 포화상태인 병·의원 문전 약국 개설보다 병원 약국, 공직, 연구시설 등에 취업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한 후 약대 설립을 추진해야 한다.
이날 장황하게 설명한 송도 BT 산업 비전은 굳이 약대가 아닌 유전 및 생명공학과, 생물학과, 화학과만으로도 가능한데도 약대 설립을 성사시키기 위해 약학을 연관시켰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어느 대학이 약학대학을 설립하든 4년제 대학 출신자보다 봉급을 훨씬 더 많이 지급해야 할 약사를 배치하겠다는 토론회의 약속을 꼭 지켜주기 바란다. 하지만 정원 50명에 불과한 약대 설립을 위해 수백억 원을 투자할 능력과 교육철학을 가진 대학이 얼마나 있을지도 의문이다. 패널로 참여한 모 신문 경제부장도 ‘인천의 바이오 허브에 맞는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협력체제 등의 노력 없이 대학의 위상을 높일 목적이라면 유치경쟁에서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며 소모적인 논쟁이 아니라 인천 발전이라는 대승적 측면에서 약대 설립을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동안 인천지역의 3개 대학, 각종 언론과 시민단체들은 하나가 돼 연세대학을 성토해 왔기에 이날 토론회에서 시한폭탄성 고성이 오갈 줄 알았는데 막상 연세대학 관계자가 토론장에 나타났음에도 의외로 조용했다. 질의 및 답변 순서에서 객석의 대부분을 메운 인천대 관계자들은 유병윤 주제 발표자가 유타대학을 설명하며 특정대학(인하대) 홍보 역할을 했다며 항의했다. 인하대와 연세대에 슬라이드를 이용토록 함으로써 타 대학과 차등을 주었으며 토론자가 단하로 내려오게 하는 번거로움을 주었다며 진행방식도 지적했다. 또한 대학 간 균형발전을 위해 로스쿨을 가져간 인하대는 약대를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대가 있는 대학에만 약대가 설립돼야 한다는 이론도 억지라고 주장했다.
나는 서울 명륜동에 있던 성균관대 약대가 수원으로 이전할 때 자연과학부 전체가 옮겨가 전철역이 생기는 등 지역 발전에 이바지했다며 ‘인천지역 시민단체와 언론이 가장 궁금히 여기는 연세대의 송도캠퍼스 이전 규모를 밝혀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한균희 연세대학교 생명시스템대학 부학장은 ‘송도캠퍼스에는 기존 학과·학부를 뛰어넘는 ‘의생명과학기술대학’을 신설하는 것으로 최근 결정했다’고 밝혔지만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인천이 연세대 설립의 초석이 된 최초의 선교지여서 관심이 크다는 주장이 사실이라면 연세대 캠퍼스 전체를 인천으로 옮기라는 비아냥도 있었다. 모 신문사 기자는 활발한 토론이 없어 실망했다며 ‘차라리 인천시약사회 회원들이 당면한 현실성과 경제성을 호소한 내용이 가슴에 와 닿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토론회를 마치는 순간, 인간의 고귀한 생명을 다루는 약학대학을 골프장 이권사업 인허가와 동일시하지 않도록 경고하기 위해선 시민단체의 보다 적극적인 관심, 대학 측의 솔직한 자기반성과 구체적인 사업계획이 앞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