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650) - 휴식과 일상이 잘 돌아가는 추석 소묘
추석연휴에 맞은 추분(秋分, 9월 23일)이 예년과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추분은 24절기 가운데 열여섯째 절기로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 이날을 기준으로 밤의 길이가 점점 길어지며 가을도 그만큼 깊어진다.
인터넷에서 추분의 의미를 살폈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음은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곳에 덕이 있다는 중용과 맥을 같이 한다는 풀이다. 그런가 하면 추분의 들녘에 서면 벼가 익어가며 구수한 냄새가 나는데 그 냄새를 한자로 '향(香, '벼 화(禾)' 자와 '날 일(日)' 자가 합해진 글자)'이라고 한다. 한여름 뜨거운 해의 기운을 받으며 자란 벼는 그 안에 진한 향기를 잉태한다. 사람도 내면에 치열한 내공을 쌓아갈 때 진한 향기가 스며든다. 또 들판의 익어가는 수수와 조, 벼들은 뜨거운 햇볕과 거센 비바람을 견뎌내며 겸손하게 고개를 숙인다. 이처럼 추분은 중용, 내면의 향기와 겸손을 생각하게 하는 아름다운 절기다. 때에 맞게 부른 찬송가사가 은혜롭다. ‘넓은 들에 익은 곡식 황금물결 뒤치며 어디든지 태양빛에 향기 진동하도다.’

황금물결 뒤치는 고향마을의 들녘, 추석날 낮은 산봉우리에 올라 바라보는 낙조의 풍경이 장관이었다
연휴에 앞서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숨죽이며 지켜본 회담의 성과는 기대 이상, 손님을 맞는 의전에 성심이 느껴지고 회담 내용도 충실한데 백두산을 함께 오른 피날래가 감동을 안겨준다. 성공적인 남북회담을 이끈 대통령은 추석에도 쉬지 않고 미국행, 평화와 번영의 씨앗 뿌리고 열매 거두기 위해 종횡으로 내딛는 발걸음이 믿음직하다. 부디 국리민복의 좋은 성과 쌓으시라.
같은 시기에 빛고을노인건강타운의 점심시간에 배식봉사를 하였다. 하루 1,500명 내외의 회원들이 이용하는 식당의 배식창구는 세군데, 각기 7명의 배식요원이 필요하다. 한 줄로 서서 밥과 국, 반찬을 한 시간 넘게 쉬지 않고 식판에 퍼주는 일이 은근히 뻐근하다. 참여를 통해 10여년 넘게 꾸준히 쉽지 않은 일을 감당한 봉사요원들의 노고를 새긴다. 더불어 수십억 지구촌 식구들의 끼니를 위해 애쓰는 모든 손길들에게도.

빛고을건강타운의 배식봉사
추석을 맞아 주변 생활보호대상자들에게 작은 선물을 나눈 교회에서는 예배 후 윷놀이를 하였다. 삼판양승으로 겨루는 윷놀이는 1 대 1로 맞서 막판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 끝에 극적인 결말로 매듭, 이긴 편은 환호하고 진편은 아쉬움이 남는 명승부를 펼쳤다. 참가자 모두에게 골고루 주어지는 상금은 덤, 나는 말 쓰기 조수로 참여하여 끝내기를 이끄는 행운을 누렸다. 승부는 어디서나 짜릿함을 안기누나.
추석날, 사촌들과 함께 고향을 찾아 성묘하였다. 선영에서 새긴 교훈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하며 정직한 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시편 112편1~2절)’ 가족들의 모임 때마다 가문의 전통인 화목과 우애를 다지며 정직과 공의를 새기는 발걸음이 뜻깊다.
성묫길에 찾은 고향마을이 조용하다. 50여 호의 큰 마을이었는데 지금은 10여 호, 나이든 어른들만 동네를 지킨다. 마을을 벗어나며 황금물결의 들판과 동네를 감싼 풍광을 폰에 담아 출향일가들의 단톡방에 올렸더니 그 어느 관광지 못지않게 아름답고 정겹다며 반가워한다. 꿈엔들 잊힐리야, 그리운 내 고향.
다음 행선지는 고장의 명찰 선운사, 가는 길목의 마을 정자에서 준비해간 도시락을 펼쳤다. 고향방문을 환영한다는 플래카드의 구호가 마음에 든다. 점심 후 선운사에 도착하니 오후 2시, 넓은 주차장에 차량들이 꽉 들어차고 무리를 지은 인파들로 입구부터 북적인다. 이맘때 절정을 이루는 산사 일원의 꽃무릇 화폭이 환상적이고, 산사 한 가운데 활짝 핀 백일홍의 웅자가 눈부시다. 대웅전 앞의 만세루는 방문객들이 차 한 잔 마실 수 있는 큰 마루, 가까스로 빈자리 찾아 마시는 차 맛이 그윽하다. 송편까지 돌리는 푸근한 인심의 고향 사찰이 자랑스럽구나.

환상적인 분위기의 선운사 꽃무릇 물결
선운사를 나서 귀로에 오르니 오후 4시,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상행선 차량들이 거북이걸음이다. 초장부터 막히면 언제쯤 도착할까. 집에 돌아와 풍요로운 들녘, 화려한 꽃무릇의 경관들을 지인들에게 전송하니 여러분에게서 답글이 붙는다. ‘꽃무릇이 화려하고 백일홍도 장관이네요. 하늘색도 기절하게 예쁘고요!’ ‘꽃무릇이 만개했네요. 고향하늘이 아름답습니다!’ ‘꽃무릇은 일본말로 히간바나라고 합니다. 彼岸花. 우리 집에서 본 보름달’
일본의 보름달 사진을 본 후 아파트 창밖으로 두둥실 떠오르는 보름달을 바라보니 하얀 바탕에 옥토끼가 노니는 모습으로 비친다. 인터넷에서는 오늘 뜨는 달이 만월에 더 가깝다니 한 번 더 바라보리.
추석 전날, 아침 산책길에 농산물을 잔뜩 진열한 천막을 지났다. 갈 때는 주인이 안보이더니 오는 길에 만났다. 수더분한 인상의 농부로부터 고구마와 오이를 손에 들만큼 사들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볍다. 추석 지나니 이틀간 쉰 테니스코트가 문을 열고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경비아저씨의 손길이 부산하다. 미국에 간 대통령은 트럼프와 만나는 등 분주하고 출입하는 요양원의 원장과 부원장은 직원들의 휴일근무를 대신하는 등 크고 작은 조직들의 휴식과 일상이 잘 돌아간다. 중용과 향기의 뜻 새기고 풍요와 번영의 발판에 다가선 추석 전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새벽부터 전을 편 농부의 장마당
첫댓글 조용한가운데서도 보람차고 의미있게 그리고 즐겁게 추석절을 보내시는 두분이 부럽기도하고 자랑스럽기도하네요. 근검절약하는 생활속에서도 돕는 일에는 늘 앞장서는 그 아름다운 모습도 배우고 싶고요. 고맙습니다.
올해도 꽃무릇은 여전하군요?
ㅋ대박입니다.
늘 해피해 보이십니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