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9일(15일째) 화요일
창문을 여니 시원한 계곡물 소리와 신선한 공기가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오늘은 열시 출발이라 느긋하게 아침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밀린 글도 쓰고 딸이랑 보이스톡도 하며...
여행 와서 처음으로 향긋한 드립커피를 내려서 커피 맛을 음미하며 달달한 시간을 보냈다.
지영샘은 아침 산책을 나가셔서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맘껏 누렸다.
숙소 근처의 시장 구경에 나섰다가 우연히 마주진 멋진 벽화 앞에서 사진도 찍고 KCF(KFC의 아류인 듯. ㅋ)에서 8위안짜리 치킨 버거를 먹었다.
햄버거 안에 들어 간 치킨은 기대 이상이었으나 양상추가 달랑 한 장이어서, 부지런한 미경샘의 활약으로 양상추를 더 얻고 토마토케첩을 듬뿍 넣어 우리 입맛에 맞게 만들어 맛있게 먹었다.
이틀 동안 먹을 사과를 사서 차에 올랐다.
이번 여행은 오지 중 오지 여행이다.
더친에서 야딩으로 갈 때 12시간을 온갖 도로의 난관과 마주치며 왔지만 오지 여행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그 힘듦마저도 즐겼다.
야칭스 갈 때도 낭떠러지에 트럭이 두 대나 굴러 떨어져 있는걸 보면서도 두려움 없이 꾸벅 꾸벅 졸며 옆사람의 어깨에 여러 번 부딪쳤다.
그러나 야칭스에서 돌아올 때는 마음이 너무 복잡해서 잠이 달아 난데다 안개까지 끼니 순간 두려움이 생겨 똑 같은 길을 불편하게 갔으니 모든 게 사람 마음에 달렸단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중국의 8대 향촌이라는 갑거장채를 둘러보고 중루 장족 마을의 민가에서 숙박을 한다.
갑거장채는 딴빠에서 7킬로 거리다.
출발해서 얼마 안가니 숴포다.
숴포에 대해 조사한 것은 다음과 같다.
- 단바에서 남쪽으로 2-3km에 있는 마을로 티베트 사람들의 독특한 전통 건축 가운데 하나인 조루(雕镂, 댜오러우)가 많은 곳이다.
뭔가 굴뚝 비슷한 것이 곳곳에 많으며 이것을 댜오러우라고 하는데, 높이가 약 40-50미터 정도이며, 숴포는 이 댜오러우가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런 건축물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티베트 마을의 하나이다.
이 마을에는 이런 댜오러우가 175개 남아 있는데, 청나라 시절에는 3천 개가 넘었다고 한다.
과거에 이 댜오러우는 군사용으로 시작됐지만, 창고로도 쓰이고 일반 거주용으로도 쓰였다한다. -
차를 타고 조금 더 가니 갑거장채인데 입구에서 50위안을 내야 입장 가능하다.
이때 눈에 번쩍 띄는 늘씬한 티베트인 미인이 있어 함께 사진을 찍었는데 소문대로 역시 딴바에는 미인이 많은가보다.
딴빠에는 징기스칸에 의해 멸망한 서하왕조(1038~1227)의 후예로 추정되는 길융장족이 살고 있으며, 최고의 장족마을로 갑거장채와 여인국으로 알려 진 동녀국의 역사적 무대인 사파촌이 있다.
서하왕국이 망할 때 왕국의 궁녀들이 몰래 피신해 와서 형성한 마을이라 장족의 여인들은 미인이 많다고 한다.
다시 고개를 넘어 하늘 아래 마을로 가서 잠시 차를 세웠는데 입장료가 있는 줄 모르고 그냥 올라 온 양선생님 때문이었다.
덕분에 전망대에서 여유롭게 풍경을 보며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높은 산 위의 십여 채의 가구들이 그림처럼 숲 속에 콕 콕 박혀있다.
본격적으로 갑거장채 탐방에 나섰다.
갑거에는 쟈룽(嘉绒) 장족들이 집거하는데, 뵌교를 신앙하는 쟈룽 장족은 세상만물에 신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고 한다.
쟈룽 장족은 다른 장족과 달리 해발고도가 그렇게 높지 않는 곳에 집거함으로 이곳저곳 다니는 유목민이 아니라 건물을 짓고 터를 잡고 살아간다.
갑거란 장족어로 백가구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그런지 갑거에는 백여가구가 살아간다.
갑거의 건물은 장족가옥의 전통색상인 검정과 빨강, 하얀 색 등, 세가지 색상으로 되어 있는데, 병풍처럼 둘러 싼 산들과 깊은 계곡과 어울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멋진 풍광을 만들어 낸다.
전망대로 한참 올라가서 마을 전체를 조망하다 흰 탑이 있는 곳으로 가보았는데, 보로와 백탑이라 불리는 이곳에서 마을 사람들이 매년 음력 4월 15일에 신산을 향해 제사를 지내고 남녀노소가 성장을 차려있고 노래와 춤을 추며 축제를 벌였다고 한다.
내려오다 산책길로 가지 않고 민가로 가는 길로 빠져서 마을 구경을 했다.
골목길을 가다 고개를 들어 보니 아주머니 한분이 나와 계셔서 인사를 했다.
눈 인사를 나눈 덕분으로 집의 외관만 보다가 안으로 들어가 차 한잔 씩 얻어 마시며 집안을 구경할 수 있었다.
간쯔 마을과 마찬가지로 외관만 화려할 뿐 지나치게 소박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는데, 남편은 야크 다리인 듯 한 것을 불에 그을리고 있고 사내아이는 그런 아빠 곁에 딱 붙어 있다.
한잔 더 하고 가라는 걸 시간 때문에 감사의 인사를 하고 헤어졌는데, 이집 안주인 역시 자세히 보니 대단한 미인이다.
여긴 외부 관광객들을 위한 숙소들이 몇 곳 있었는데 모두 운치 있고 색감 또한 뛰어나 눈이 호강하는 시간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색상으로 집을 꾸밀 수 있단 말인가.
눈이 시리게 푸른 하늘과 어울리는 티베트의 색감.
2014년을 시작하는 겨울 어느 날, 제주 올레 길을 걷다가 7코스 절벽 위에 있는 카페 뷰크레스트에서 전시하고 있는 번춘방의 사진전 '길에서 지혜를 묻다.'를 감상하게 되었는데 작가의 사진에 담긴 티베트의 색감에 매료되어 그때부터 티베트는 내가 꼭 가야할 곳이 되었다.
그 황홀한 색채에 반해서 이날 무수히도 많은 사진을 찍었다.
이곳은 유난히 길도, 벽도, 돌도 금빛을 내며 반짝여 이 동네는 사금가루로 도배를 했나싶었는데 이유는 나중에 알았다.
마을 구경을 하다 표지판에 '운모왕'이라고 적혀 있는 게 보여 그쪽으로 갔는데, 우리는 농담으로 왕의 열세번째 마누라가 되어 이참에 팔자 한번 고쳐보자고 까지 했다.
그런데 우리가 기대를 품고 찾아 간 운모왕(King of Mica)은 사금인 줄 알았던 이 지역의 반짝이는 광물이었으며 전기설비와 공기절연재 등에 쓰인다고 안내판에 설명되어 있다.
시간이 되어 약속 장소로 내려와 보니 다른 일행들이 보인다.
아이스케키 하나 씩을 입에 물고 더위를 식혔는데, 낮의 딴빠는 햇살이 따가운 여름이다.
불과 어제 아침만 해도 추위의 고통과 싸웠는데, 오늘은 더위와 뜨거운 햇살로 인해 힘들다.
종루 가는 길은 좁고 울퉁불퉁한 산길이었는데. 흙먼지가 심했지만 뜨거운 햇살 때문에 문을 닫을 수 없어 목이 아팠다.
이곳 차들은 에어컨이 없는 모양이다.
차가 가기에 힘든 구간이 있어 한참을 걷는데 타임머신 타고 6,70년대 시골길을 걷는 기분이다.
분홍빛 고운 꽃이 길가에서 반겨주는 길, 길을 잘못 들어 다시 돌아 나왔지만 그래도 좋았던 길.
도착하니 고풍스럽고 아름다운집이 기다리고 있는데 여기가 우리가 이틀 묵을 숙소다.
사과나무, 배나무, 복숭아나무, 포도나무는 모두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많은 열매를 맺고 있어 이 아름답고 고풍스런 집을 더 풍성하게 느끼게 해 준다.
양선생님 말로는 이 집의 조루는 팔백년이 되었고 집은 백육십년이 되었다고 한다.
네명이 이층의 침대 다섯개가 놓여 있는 방에 배정되었다.
색채가 아름다운 분위기 있는 방이다.
햇살이 하도 좋아 모두들 빨래를 하고 빨래 줄에 널었는데 빨래에서 싱그러운 햇살과 바람 냄새가 날 듯 하다.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이 산속 마을 민가에 와이파이가 터져 가족들에게 사진을 보내다가 저녁준비에 돌입하였다.
야외테이블에서 오이와 당근, 마늘 등을 칼로 썰었는데 아주 즐거운 노동이었다.
열심히 채소를 썰고 있는 내 입에 계속 맛있는 음식을 넣어 주시는 마리아님.
평소 때는 잘 마시지 않았던 맥주가 오늘은 신기하게 맛이 있다.
민가에서 준비한 음식과 우리가 만든 음식으로 풍성한 식탁이 차려졌고 싱그러운 바람을 맞으며 모두들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저녁 먹고 마당 끝에 앉아서 어둠이 내리기 직전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이 시간 때의 세상은 더욱 더 차분하고 선명하게 느껴진다.
아름다운 세상이다.
꼬불꼬불 산길을 한참이나 올라 온 깊은 산중에 이렇게 넓은 터가 있고, 그 터에 옥수수를 비롯한 많은 곡식들이 자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하얀 회벽칠을 한 석조 건물과 집집마다 조루를 가진 고풍스런 건물들이 중세 유렵의 성들을 연상시켰다.
비 소리를 들으며 자려고 누웠다가 누군가가 튼 음악에 이끌려 비송님, 미경샘과 함께 옥상에 올라갔다.
케이씨님과 여러 분들이 송이버섯을 구어 술자리를 벌이고 있었는데, 비 소리와 스카이님이 틀어주는 분위기 있는 음악이 어우러져 멋진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어느새 비가 그치고 하늘엔 별이 쏟아진다.
은하수가 눈앞에 그 자태를 드러냈는데, 그 걸 보려고 내 목은 한 없이 하늘을 향해 꺾여 있어 아플 지경이다.
팔백년 된 조루가 있는 고택에서 바라 본 반짝이는 별.
그리고 그 밤을 함께 한 좋은 사람들.
잊지 못할 아름다운 밤이었다.
첫댓글 ㅎㅎ 이날 일찍 자느라고 은하수를 못본 내가 한심 했다우!
종루 뒷산 트래킹 때 청일점으로 끝까지 우리들 챙긴다고 고생한 양선생님께 감사의 말씀 전하고 싶군요.
그날 반바지 입고 오셔서 고생 많이 하시고 새로운 패션으로 우리 눈을 즐겁게 해 주었죠 ^^
티베트미인 돈받는 모델로 오인하여 팁주라고 했다가 무안을....
여기는 중국 다른데 보다는 덜 세속화된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