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첫째 주 그룹큐티나눔 - 듣지 않아 흘리는 눈물
사사기 2:1-10
1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으로 올라와 말하되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여 내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였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와 함께 한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2 너희는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며 그들의 제단들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3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4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이 말씀을 이르매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운지라
5 그러므로 그 곳을 이름하여 보김이라 하고 그들이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더라
6 ○전에 여호수아가 백성을 보내매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그들의 기업으로 가서 땅을 차지하였고
7 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8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으매
9 무리가 그의 기업의 경내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 산 북쪽 딤낫 헤레스에 장사하였고
10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
- 마음 열고, 찬양과 나눔
•어려운 일 당할 때(찬송 543장, 구 342장)
•지난 한 주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의 근황을 나눠 봅시다.
| 1980년대 범죄의 온상이던 뉴욕 지하철이 평화를 되찾은 비결은 거창한 소탕 작전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지하철의 낙서를 지우고 쓰레기를 치우는 등, 작은 질서를 바로잡은 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작은 변화로 불과 석 달 만에 경범죄가 줄어들었고, 수년 만에 강력범죄까지 급감했습니다. 사소한 무질서를 방치하면 공동체 전체가 무너진다는 ‘깨진 유리창 법칙’은 신앙생활에도 동일하게 작용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주민과 언약을 맺고 이방 제단을 조금 남겨 둔 일을 고작 몇 가지 약속을 어긴 ‘작은 틈’이라고 여겼을 테지만 하나님은 그 사소한 타협이 결국 공동체의 거룩함을 송두리째 붕괴시키는 치명적인 균열이 될 것임을 엄히 경고하셨습니다. |
- 마음 다해, 말씀과 나눔
1.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책망 앞에 뒤늦은 후회의 눈물을 흘립니다(1-5절).
1) 하나님이 가나안 땅의 주민과 관련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리신 두 가지 명령은 무엇입니까?(2절)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며, 그들의 제단들을 헐라 하셨다.
고대 근동에서 다른 민족과 언약을 맺는다는 것은 단순한 정치·경제적 동맹을 넘어, 서로가 믿는 신을 동등하게 인정하고 수용한다는 종교적 결합을 내포했다. 모든 신을 포용하는 다신교 가치관의 가나안 족속에게 여호와는 ‘수많은 신 중 하나’로 쉽게 흡수될 수 있었지만, 오직 유일신만을 섬겨야 하는 이스라엘에게 이러한 타협은 신앙의 근간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치명적인 독약이었다. 세상과 적당히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려는 이 작은 타협의 틈새는, 결국 훗날 이스라엘 민족이 ‘혼합종교’의 늪에 빠져 하나님을 떠나게 만드는 비극적인 영적 부패의 씨앗이 되었다. 제단을 헐어 버리지 않은 방관이 결국 전체를 무너뜨리는 도화선이 된 것이다.
2) 하나님의 책망과 경고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은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4-5절)
소리 높여 울면서 그곳의 이름을 ‘보김’(우는 자들)이라 하였으며, 거기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하나님의 준엄한 책망 앞에 이스라엘 백성은 깊은 두려움을 느끼며 소리 높여 울었다. 온 회중이 통곡하며 그곳을 ‘보김’(우는 자들)이라 부르고 제사까지 드린 이 장면은 얼핏 철저한 영적 각성과 회개의 순간처럼 보인다. 그 순간 그들이 흘린 눈물과 지난날의 불순종에 대한 후회만큼은 결코 거짓이 없는 진실한 감정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사사기의 역사 속에서 곧바로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다른 세대’가 출현하는 비극을 목도할 때, 우리는 이 눈물의 실체를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감정적인 눈물과 일시적인 종교 행위는 그 자체로 미래를 뒤바꾸는 동력이 되지 못한다. 참된 회개는 북받쳤던 감정이 가라앉은 후, 삶의 자리로 돌아가 어제와 다른 선택을 내리며 하루하루를 돌이키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완성된다. 보김의 통곡은 뜨거웠으나 일상의 순종으로 이어지지 못한 감정적 후회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 준다.
나눔 1 삶의 철저한 돌이킴이 결여된 후회와 눈물로는 영적인 무너짐을 막지 못합니다. 내 삶에서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지 못해 뒤늦은 후회를 남긴 ‘나만의 보김’은 무엇이었는지 나눠 봅시다. |
2. 이전의 세대와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다른 세대’가 일어납니다(6-10절).
1) 이스라엘 백성은 언제까지 하나님을 온전히 섬겼습니까?(7절)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이다.
보김에서의 눈물이 아무리 진심이었을지라도, 축적된 불순종의 결과를 되돌리지는 못했다. 결국 여호수아와 그 시대에 하나님의 크신 일을 목도했던 거목 같은 장로들이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지자, 이스라엘의 영적 울타리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 같은 영적 세대교체의 실패는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부모의 탁월한 영성과 헌신적인 신앙의 삶이 자녀의 구원과 신앙을 자동으로 보장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신앙은 혈통이나 환경으로 물려받는 자산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과 각 개인 사이에 일어나는 일대일의 인격적 만남에서 출발한다. 부모 세대가 자녀를 위해 안락하고 풍요로운 삶의 터전을 닦아 주는 데만 치중할 때, 역설적으로 그 풍요는 하나님을 가리는 장막이 되기 쉽다. 역경 없는 안일함은 자녀들을 하나님을 단지 자신의 성공 도구로 이용하려는 기복신앙의 늪에 빠뜨리며, 결국 영적 감각을 마비시키는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늘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2) 여호수아의 세대가 지나고 나타난 새로운 세대의 비극적인 실상은 무엇입니까?(10절)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했다.
"여호와를 알지 못했다"고 할 때, ‘알다’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야다’이다. 이 단어는 단순히 머리로 정보를 이해하는 지식적 습득을 넘어, 관계 속에서 직접 겪고 부딪치며 체화하는 ‘경험적 앎’을 뜻한다. 즉, 새로운 세대가 하나님을 몰랐다는 것은 여호와라는 신에 대한 종교적 정보나 역사적 사실을 전혀 듣지 못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들은 ‘조상들의 하나님’이라는 지식적 데이터는 가지고 있었으나, 정작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대면한 ‘자기만의 경험’이 없었던 것이다. 사람은 인생의 중대한 선택이나 위기에 직면했을 때, 머리로 아는 지식보다 가슴으로 겪어 낸 경험적 확신에 의존해 결정을 내린다. 새로운 세대에게는 이 직접적인 경험이 없었기에, 삶의 작은 흔들림 앞에서도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눈앞에 보이는 가나안의 풍요와 가치관에 쉽게 휩쓸려 가고 말았다. 지식이 신앙으로 도약하지 못한 자리에 남은 것은 결국 비극적인 영적 표류다.
나눔 2 타인의 신앙에 의존하는 ‘빌려 온 믿음’은 영적 지도자가 사라지거나 환경이 바뀌면 쉽게 흔들립니다. 다른 사람의 열심에 편승하지 않고 주님과 나만의 인격적인 사귐을 누리는 경건의 자리는 어디인지 나눠 봅시다.
나눔 3 부모 세대가 신앙 전수를 멈출 때 우리의 소중한 자녀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다른 세대’로 변할 수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주님을 직접 만나 믿음의 세대로 굳건히 서도록, 오늘 내가 보여 주어야 할 모범은 무엇인지 나눠 봅시다. |
- 마음 모아, 함꼐 기도
삶 - 가볍게 여긴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되새기며, 매 순간 순종하게 하소서.
공동체 -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말씀으로 믿음의 세대를 키우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