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의 차이점이 뭐죠?" "투표할 때 필요한 준비물을 말해주세요."
한 사람의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또 다른 사람의 질문이 이어졌다. 시종일관 웃는 모습으로 질문에 답하던 광주 선관위 고경화씨도 계속되는 질문에 지친 듯 보였다. 하지만 이에 아랑곳없이 이곳저곳에서 다양한 질문들이 터져 나왔다.
4월 22일 오후 2시 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 삼일교회. 부슬비가 내려 약간 쌀쌀한 날씨였지만 교회 내부는 사람들의 열기로 가득했다. 전국 최초로 개최된 '장애인 대상 선거ㆍ투표 관련 설명회(우리이웃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주최)'에 참석하기 위해 60여명의 장애인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이곳에 모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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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명회에 참석한 한 참가자가 관련 자료를 유심히 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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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경모 |
| 성별과 나이, 장애정도는 모두 달랐지만 선거와 투표에 대한 이들의 관심은 한결같이 높았다.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가 불편한 신미희(24·여)씨는 "보통 날씨가 궂은 날은 외출을 하지 않는 편이지만 오늘은 꼭 와야 할 것 같아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왔다"면서 "선거나 투표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모르지만 오늘 많은 것을 배우고 싶다"며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설명회는 선거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으로 시작됐다. 광주 선관위 고경화씨는 약 15분 동안 "장애인들의 입장을 알리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장애인들이 투표하는 것"이라며 투표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장애인 참석자들은 이후 이뤄진 '질의응답' 시간을 통해 그동안의 선거에서 겪었던 어려움을 토로했다. 상당수 장애인들이 호소하고 있는 점은 '이동의 어려움'. 투표를 하고 싶어도 주위의 도움이 없으면 투표장까지 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중증장애인 박은진(35)씨는 "투표장까지 갈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 주지 않고 무조건 투표하러 가라는 것은 '그냥 알아서 하라'는 것과 같은 말"이라면서 "투표 당일만이라도 활동보조인을 제공해주는 등 실질적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장애인들은 투표에 참여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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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 선관위 고경화씨가 선거에 관한 설명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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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경모 |
| 실제로 이날 참석한 장애인 대부분이 지금까지 단 한차례도 투표를 해본 경험이 없었다. 모두 만 19세를 넘은 유권자이지만 이동의 어려움 등 현실적인 여건으로 인해 그동안 선거에서 소외됐던 것이다.
19살 때 교통사고로 척추장애를 입은 정연옥(33)씨 역시 지금껏 투표를 해본 경험이 없다. 그는 "휠체어가 없으면 꼼짝도 할 수 없기 때문에 투표에 참여하는 것은 엄두도 못 냈다"면서 "투표장까지 이동할 수만 있다면 이번 선거에 꼭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뇌병변 장애를 앓고 있는 김애희(29)씨는 지난 2002년 대선에 투표해본 경험이 있지만 이번 지방선거에는 투표를 할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다고 한다. 자신을 투표장까지 옮기기 위해서 당시 그녀의 오빠가 고생하던 장면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이번 선거에도 참여하고 싶지만 오빠에게 부탁하기가 미안해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김씨는 "이번 설명회를 통해 희망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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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명회에 참석한 한 장애인들이 질문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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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경모 |
| 우리이웃 장애인자립생활센터 관계자는 "이번 설명회 이후에도 '모의투표 체험'과 '후보자들과의 만남' 등 좀더 실질적인 프로그램들을 진행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설명회가 진행된 두 시간 동안 이를 지켜보며 꼼꼼히 메모하던 광주 선거관리위원회 김용환 공보계장은 "이번 기회를 통해 장애인들이 처한 어려움들을 자세히 알게 됐다"면서 "이들의 의견이 현실에 적극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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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들은 늘 선거에서 소외돼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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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주숙자 우리이웃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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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이웃 장애인자립센터가 개최한 이번 설명회는 광주시 선관위도 참여해 그동안 소외됐던 '장애인 선거'에 대해 민관이 함께 고민하는 좋은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다음은 주숙자 우리이웃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47)과의 일문일답
- 우리이웃 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어떤 곳인가? "인간은 누구나 장애정도에 상관없이 평범하게 살 권리가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도 가족의 짐으로 인식되거나 죽을 때까지 시설에서 살아야 함을 당연시 여기는 분위기가 있다. 장애인은 지역사회에서 우리이웃으로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점을 자립생활을 통해 실천하고 있다."
- 장애인 자립생활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나? "장애인 자립생활이 일상생활의 모든 일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장애인 스스로 해결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의 도움을 받으며 자신의 생활에 대한 선택과 결정권을 갖고 자립생활에 대한 성공과 실패까지도 스스로 책임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 이번 설명회를 개최한 목적은? "중증장애인 대부분은 지금까지 선거에서 소외됐기 때문에 선거에 대해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이들에게 선거가 무엇이고 선거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는 데 일차 목적이 있다. 선거에 대해 알아야 투표를 반드시 해야 한다는 마음이 생길 것 아닌가?"
- 장애인들이 투표하기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너무 많아서 한 마디로 답할 수 없다. 일단 '이동권 확보'가 가장 문제다. 특히 전동 휠체어를 타는 중증장애인의 경우 승용차로는 이동할 수가 없어 자원봉사자가 있더라도 이동에 어려움이 따른다. 이번 선거에 국한하자면 1인 6표제 등 복잡한 선거절차에 대한 정보도 부족하다."
- 우리 사회에 바라고 싶은 점이 있다면? "우리 사회가 장애인에 대해 크게 오해하고 있는 점이 있다. 바로 장애인들이 도움 받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장애인들은 정말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무엇이든지 스스로 하길 원한다. 선거도 마찬가지다. 장애인 스스로 투표할 수 있는 제반 여건이 갖추어 졌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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