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 주임 신부로 살면서 자주 듣는 전례 관련 질문 중 하나가 “전에 계셨던 신부님과 왜 전례를 다르게 하세요?”입니다. 이 질문은 가톨릭교회의 전례가 모두 똑같은 방식으로 거행된다는 대전제를 바탕으로 합니다. 물론 교회의 전례가 통일된 것도 사실이지만, 지역-암브로시오 전례, 동방 가톨릭교회 전례 등-이나 수도회-카르투시오회, 도미니코회 등-의 유서 깊고 특별한 거행 방식을 포함한 전례도 교회 안에서 거행됩니다. 그러니 교회의 모든 전례 거행이 공장에서 찍어낸 벽돌처럼 똑같은 모습을 지니고 있다고 여기는 것은 환상에 가깝습니다. 다양성 안에서 일치를 이루는 보편교회는 전례서와 규정 등을 통해서 모든 지역교회가 신앙의 신비를 합당하게 거행하고 하나인 교회의 모습을 드러내도록 노력합니다. 전례와 관련된 규정들의 종류를 살펴보며 전례 거행에서 중요한 점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보편 교회법 안에도 전례와 관련된 법들이 있습니다. 이 법들은 전례를 거행하는 방법에 관한 규정이기보다는 전례가 합법적이고 유효한 거행이 되는 조건을 밝히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전례를 거행하는 집전자와 시간, 장소, 성사를 받는 사람 등에 대해서 규정하는 법입니다. 다음으로 전례에 대한 일반 규정이 있습니다. 보통 전례서의 맨 앞부분에 성사나 준성사의 의미, 집전자와 준비사항 그리고 상황에 따른 사목적 배려 등을 담고 있습니다. 전례서의 이 규정들은 거행되는 전례가 기념하는 신앙의 신비를 더 잘 이해하고 드러내기 위한 규정입니다. 미사성제와 관련해서는 「로마 미사경본 총지침」이 따로 출판되었습니다. 이 지침은 매일 거행하는 미사성제의 각 부분과 그 의미, 봉사자의 역할, 다양한 상황 속 거행 방법 그리고 거행되는 장소와 성물 등에 관한 규정을 담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rubrica”라고 불리는 전례서 안에 있는 붉은 글씨의 규정입니다. 이 규정은 전례를 거행하는 방식과 동작을 직접적으로 지시합니다. 따라서 전례 거행의 통일성은 바로 이 “rubrica”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따르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는 전례학이 거행의 방법과 집전자의 동작을 연구하고 전례서는 모든 동작을 세세히 규정했었습니다. 예를 들면, 미사 때 제대에서 향을 드리는 방식과 숫자, 집전자가 팔을 벌리는 넓이와 손 모양 등도 다 규정했습니다. 하지만 전례 개혁 이후 세세한 동작보다는 거행하는 신비에 중심을 두고 규정들이 정비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향을 드린다, 절을 한다와 같이 문화나 상황에 따라 다양한 방식을 선택할 수 있게 바뀌었습니다. 현재 전례 규정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 하지 말아야 하는 것, 할 수 있는 것과 상황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집전자와 공동체의 상황에 따라서 이런저런 변화나 차이가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전례 거행 방식에 의문이 생긴다면 전임 신부님을 기준으로 가 아니라 보편 교회의 규정을 확인하고 묻는 것이 올바른 것입니다.
5세기 중반 성 대 레오 교황 시절, “Lex orandi, Lex credendi”(기도하는 법이 믿는 법)라는 교회의 격언이 나옵니다. 이는 펠라기우스 이단의 오류를 드러내기 위한 격언이지만 전례와 관련해서 우리가 깊이 헤아려 볼 말입니다. 교회가 거행하는 전례는 우리가 무엇을 믿는 지와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드러내는 장소임을 밝히기 때문입니다. 전례 거행 중에 집전자와 봉사자의 행동이나 소리에 마음을 쓰기보다 교회가 무엇을, 어떻게 기도하고 그 기도를 통해 어떤 믿음을 살아가는지에 더 마음을 쓴다면, 우리의 신앙은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더 깊어질 것입니다. 전례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면서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신앙의 신비를 더 깊이 만나고 살아갈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