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이런저런 좌충우돌 인생을 살며 지방대 전기전자전공을 하다 나이 서른에 어느 자동차부품회사 품질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전공이 전기전자였고 관심은 가는 부분은 연구개발쪽이었지만 1여 년 동안 면접에서 죽을 쓰며 석사들한테 밀리고 딱히 내세울 만한 점은 영어 쪼매 한다는 거 하나뿐인지라 늦게라도 대학원을 고민해보다가 우연히 회사에서 컨택이 와서 다니게 된 곳이었습니다. 딱히 전공이랑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니고 조건이 썩 훌륭하다거나 그런건 아니었지만 뭔가를 할 기회가 생겼다는 것만으로 충분했고 원래 호기심도 많은 편이라 무슨 일은 하든 재미었습니다. 좋은 분들을 만난 운도 꽤 있었던 것 같지만요.
1여 년동안 이것저것 많은 걸 배우며 지내다 집 근처에 위치한 지사에서 제의를 받고 또 다른 1여 년을 근무했습니다. 처음 1년 정도는 일단 부딪히고 겪어보자는 생각으로 임했으나 이 길이 제 길이 맞는지에 대한 의구심은 늘 들었고 2년째가 될 무렵 이건 아니라는 느낌이 왔습니다. 외국계 특성이 좀 있는 편인지 업무강도도 그닥 높지 않고 퇴근은 눈치 좀 보는 편이긴 해도 늦어도 8시에는 칼이고 주말엔 특근할라면 눈치봐야 할 정도고.. 페이는 그닥 높지 않아도 제가 선호하는 여가/취미/자기계발을 하기엔 더할 나위없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부서에 지내는 동료선배들을 보며 제 미래를 그려보았고 이건 좀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자동차품질이 3D라는 것도 영향은 없지 않았겠지만 무엇보다 전기전자랑은 거의 전혀 관계가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업무에 적응이 되고 단순반복 업무가 많아져서 딱히 힘들 것이 없었지만 흥미가 떨어져가면서 일에 대한 재미도 줄어들었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겪어간 상황이 아닐까 싶네요.
아무튼 올초 들어서면서 멘탈이 피곤해질 정도로 진지하게 더 생각을 하다 마침내 부모님께 얘기를 꺼내고 회사에도 어렵게 얘기를 드리고 잘 마무리 한 뒤 대학원 준비모드로 들어가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퇴사를 할 무렵 헤드헌팅 한 곳에서 외국계 메이저 정유회사 제의가 들어왔고, 고민하다 회사는 정말 괜찮다는 얘기들이 많아 일단 면접보기로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면접은 안됐지만.. 머.. 준비도 제대로 안했었지만.. 만약 됐다면 아마 들어갔을 것 같습니다. 여전히 전기전자랑은 관련이 없는 곳인데 말이죠.. 역시 이래서 사람마음이 참 간사한가 봅니다. 대학원 고민을 하면서 나이는 이제 크게 상관이 없다고 여겼는데 시간이 좀 지나고 나니 현실감각이 다시 콕콕 찌르기 시작하네요. 내년 초에 시작한다쳐도 석사2년이면 35.. 박사는 다시 생각해보니 진짜 좀 미친 짓 같고... 결혼도 몬했고 -_-;;
제가 좋아하는 걸 하고 배울 수 있는 곳이면 조건/여건 크게 개의치 않을 것 같은데 그게 사실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단순히 전기전자 분야의 연구개발이라고만 막연히 생각했지만 세부분야만 해도 크게 통신, 제어, 신호처리, RF, VSLI, IC, PLC, PCB 그리고 디지털, 아날로그,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등등 너무 많은데 당췌 제가 진정 뭘 찍어야 할지 감이 안옵니다. 회사에 있을 때 옆 부서 부장님이 회사 다니면서 야간대학원 다니고 거기서 업체 사장님들 같은 인맥 많이 만들고 하면 맞는 분야의 회사를 발견할 수 있을거라고 하시며 지금 대학원 그냥 돌진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좀 아닌것 같다고 하셨는데 이제 그 말의 진의가 좀 더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이왕 할 거면 과기대 같은 곳에서 제대로 하자 싶어서 야간 대학원 따윈 염두에 두지도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원을 수단으로 이용해서 그럴듯한 곳에서 제가 원하는 분야의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크지 않았나 싶네요.
유니스트 2차모집이 2주 남은 상황에서 잘 안되면 하반기껄 준비해볼 요량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꼭 대학원이 아니더라도 제 관심분야의 일이 주어진다면 기꺼이 할 생각으로 80%정도 바뀐듯 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제 관심분야를 꼬집어 정하진 못하겠지만요 -_-;;; 대학때 수업은 생각없이 전기쪽이 취업하기 더 넓고 수월하대서 그 쪽 수업을 많이 들었으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관심은 전자쪽에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제어도 조금...
그나저나 첫 단추나 왜 그리 중요하다고 하는지 이제 좀 알 것 같네요. 영어 점수가 좀 있어선지 모르겠지만 꽤 괜찮은 제의나 간간히 들어오는데 역시나 죄다 품질쪽이더군요..
비슷한 경험들 갖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고견들 좀 부탁드려도 될런지..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길에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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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3.06.14 16:25
첫댓글 사람이 어떻게 자기가 하고싶은것만하며 살수있겠습니까...먹고살고 돈떄문에 어쩔수없이하는거지요...32이시면 이젠 자리를 잡아서 결혼도하고 집도 전세로라도 구하려면 부지런히 모으셔야겠네요...집이잘살면 상관없지만요....
그러게 말입니다 ㅎㅎ;; 사실 나름 어렵게 모으면서 살다 이제 좀 먹고 살만해지니까 배가 불러서 이지롤을 하나 싶기도 합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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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님도 화이팅요 ㅎ!~
힘내세요~많이 돌아돌아 가고 계신거같은데..
자기가 하고싶은게 분명히 있다면 그것을 선택해도 무방하지만
그런게 아니라면 괜찮은 곳에서 자리를 잡고 그 안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만들어나가는게 필요할거같아요!
감사합니다~ 근본적 고민을 찝으신 듯 하네요 ㅎ~
본인이 하고 싶은걸 적어보고 관련 사항을 충분히 검토한 뒤에 직장을 잡으시던지 진학을 하시던지 하셔야 할 거예요.
저도 뭘 하고 싶은지 모르고 일을 시작했더니 억지로 사는 삶이 되어 버렸습니다.
네.. 그렇군요.. 근데 아무리 생각하고 알아봐도 확신을 갖고 선택을 하게될런지는 의문이네요 ㅎ;;
결국엔 냅따 지르는 쪽이 되지 않을지 ㄷㄷ
어차피 상반기 대학원지원은 물건너 갔으니 연락오는곳 면접이나 보고 하면서 정리해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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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게요 ㅡ.ㅜ
정말 저랑 비슷한 아니 너무나도 똑같은 고민을 하시는 분이 계시네요 제나이는 30살입니다. 전공학과 배제하고 취업하시는분들의 고민이라고 생각하고 특히나 이공계.. 같이 힘내시죠!!!화이팅
은근히 꽤 있으시더라고요 ㅎ;; 님 나이를 보니 다니던 회사 축구부장님이 '서른만 되도 내가 이렇게 안말린다'라고 하신게 생각이 나네요ㅋ 님도 화이팅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