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움과 당황, 황당함과 삶에 대한 미련이 적절히 배합된 표정을 하며 차갑게 식어있는 위트를 등 뒤로 하고 난 트리스트럼을 빠져나오려고 했다.
‘뭐지?’
내 등 뒤로 무언가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격렬한 공기의 파동으로 보아 움직이는 물체는 상당히 기민하게 움직이며 내 주위를 포위하는 듯 하였다. 그것들의 거친 숨소리를 가만히 들어보니 목에서 나오는 공기의 울림이 인간과는 약간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어느 새 그것들은 나를 원형으로 둥글게 포진하고 있었다.
“흠!”
작지만 무서운 불씨를 연상케 하는 붉은 피부와 민첩하게 생긴 작은 몸집들이 내 눈 앞에 들어왔다. 한 손에는 못을 연상케 하는 뿔이 아무렇게나 박혀있는 클럽Club이 들려있었다. 생긴거완 다르게 강력한 파괴력을 지녔는지 그 클럽에서는 강렬하고 진한 피 냄새가 내게 풍겨왔다. 다른 한손에는 역시 성의 없게 다듬어진 판자. 분명 판자라 할 수 있겠지만 이 녀석들 딴에는 방패라고 만든 것일 테지. 하반신에는 사람의 손길을 거친 것이라 판명되는 가죽 옷이 걸쳐져 있었다.
내 기억력과 지식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나에게 덤비는 이것들은 팰런Fallen류類의 몬스터Monster이다. 어느 마을에나 귀찮고 짜증나는 골칫거리가 되고 있는 이 팰런류 몬스터들은 소小무리를 지어 다니며 농민들을 공격하고 식량을 약탈해간다고 한다.
나를 포위하고 있는 팰런 중에서 몸집이 약간 크고 장신구가 조금 더 화려한 녀석이 있었다. 그것은 분명 팰런 샤먼Fallen Shaman. 소 무리를 지어 다니는 팰런들의 우두머리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보통 팰런보다 더욱 강력한 힘을 지녔으며 아주 조금(!) 더 뛰어난 지력을 겸비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팰런 샤먼의 그나마 한 개 존재하는 특징은 팰런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무리를 짓고 개떼로 몰려다니는 팰런류 몬스터들이 있다면 가차없이 팰런 샤먼부터 처리하는 것이 여행이나 사냥의 기본 상식이란다. 팰런들은 생긴 것과 같이 겁이 많아서 자신들의 동료나 우두머리가 죽으면 냅다 튀어버리기 때문에 효과도 만 점이다.
“후후…. 귀여운 놈들….”
남이 들으면 십중팔구 메스꺼워하거나 개소리 취급할 대사가 틀림없었으나 내게는 멋모르고 달려드는 이 녀석들이 정말 귀여워(!)보였다.
[섀도우 디서플린Shadow Discipline - 마인드 블래스트Mind Blast]
나는 어린아이들과 장난을 치듯 짓궂은 동작으로 오른손을 팰런들에게 휘저었다. 그러자 마인드 블래스트의 기운이 회오리로 시각화되어 팰런들의 발밑에 작렬하였다. 무언가 강력한 마법의 타격이 자신들에게 올 줄을 본능적으로 감지한 팰런들은 한껏 몸을 움츠리며 자신들이 쫄았다는 것을 과시하였다. 어떤 녀석은 클럽을 떨어뜨리고 머리를 양손으로 감싸고는 벌벌 떨더라.
캬아악!! 쿠에엑!!
작렬했다 하면 무언가 강력한 힘이 물체를 강타시켜 산산조각 내는 것을 생각하기 쉽지만 아쉽게도 블래스트의 기운은 지면에 스며들기만 할 뿐 흙이 튀거나 땅이 박살나지는 않았다. 물론 팰런들은 자신들이 별 것 아닌 것에 겁먹었다고 생각하고는 정색을 내며 고함을 질렀다. 멍청한 놈들….
그러나 팰런들의 만용도 잠시. 블래스트의 기운이 들이닥친 지면에서 변화가 생겼다.
우우웅! 퍼버벅!
키에엑!
변화는 한 순간. 블래스트의 기운이 땅에 스며들 듯 들어가더니 이번에는 갑자기 튀어나오며 팰런들에게 정말로 작렬하였다. 블래스트는 둥근 원형의 모양을 그리며 팰런의 몸을 감싸듯이 휘저었다.
키이잉!
“뭐야 이거…. 안 죽었냐?”
팰런 중 대다수가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으나, 개중 그나마 강한 녀석들은 두 발을 땅에 디디고 있었다. 하지만 곧 동족 잔상의 비극이라 불러야 할 일을 벌였으니.
마인드 블래스트의 요지는 적에게 육체적인 고통을 주기보다는 정신적 고통을 주는 것에 있었다. 마인드 블래스트의 시전자가 직접 적의 정신을 조종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시적인 정신적 충격을 주어 피아彼我와 아군我軍을 구분 못하게 하는 것 까지는 가능하기 때문에 적이 많이 모여 있을 때에 재빨리 탈출하기 위해서란 이점도 가지고 있기에 살수殺手들에게 널리 애용되고 있다.
팰런들은 팀킬TeamKill이라 불리는 동족 살해의 죄악을 서슴없이 저지르고 어떤 놈은 자해自害를 하고 있었기에 혹자가 보았다면 정말 보기에 질리지 않는 광경이라고 찬사를 보낼만하였다.
털썩! 투둑.
챙그렁!
“히히…. 의외의 수입이군. 주제에 매직 롱소드Magic Long Sword?”
팰런들이 자기네끼리 물고 뜯는 광경을 재미있게 구경한 후 팰런들의 몸을 뒤지며 내가 내뱉은 말이었다. 직역하자면 긴 칼. 간역해도 긴 칼. 전체 길이는 1m 안팎. 보통 한 손으로 사용하며 검신의 두께는 브로드소드Broad Sword보다 약간 얇고, 길이는 비슷하며, 2~4kg의 무게를 기본으로 하는 검이 롱소드에 대한 기본 정보이다. 모험자나 전사들에게 있어서는 기본적인 무기이지만 그것은 노멀Normal의 성향을 띤 롱소드에 제한한 것이다. 현재 내 소유의 롱소드는―팰런 소유가 절대 아니다―매직의 성향을 띤 롱소드인 것이라 값비싸고 쓸만한 물건 축에 끼는 것이다. 물론 임무의 수행 중 얻게 되는 수확물의 소유권은 우선적으로 얻는 사람에게 있었으니….
매직의 성향은 아무 무기에나 무턱대고 갖다 붙일 수 있는게 아니다. 언뜻 강의 시간에 주워들은 바에 의하면 매직 웨폰Weapon류는 공포의 군주Lord of Terror가 인간 세계에 처음 군림했을 때에 등장했다고 한다. 공포의 군주가 인간 세계를 넘보기 시작하면서 지옥의 문은 열리고 세상은 공포와 불신으로 물들어 갔더랬다. 그 때 장인들과 마법사가 손을 잡아 악의 세력들을 물리칠 강력한 무기를 만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장인은 마법사의 인챈트Enchant의 주문을 견딜 수 있는 강도 높은 고급의 무기를 제작하고 마법사는 장인이 만든 무기에 인챈트 주문을 건 조드룬의 룬어를 새기면 그 무기는 매직 웨폰이라 하여 매직 성향을 띤 무기가 되는 것이다. 그 때부터 만들어진―현재는 인챈트 주문을 영구적으로 지속해 주는 조드Jod의 룬Rune어가 새겨진 룬을 다룰 줄 아는 마법사가 극소수일뿐더러, 영구 인챈트를 견딜 수 있는 무기를 만들 수 있는 장인의 수도 희박하여 매직 웨폰의 생산량이 아주 미미하다.―매직 웨폰은 아직까지도 다수가 건재하고 있으나 무기 자체에 걸린 특수한 마법 때문에 꽤나 비싼 값에 거래되고 있다. 그런데 나는 매직 성향의 무기를 아주 손쉽게(!) 천박하고 천하고 미천하고 비천하고 우매하고 무지하며 하찮은 존재인 팰런류 몬스터에게서 얻어낸 것이다. 나는 롱소드를 조심스레 품속에 집어넣으며 갈 길을 재촉하였다. 여기서 중대한 실수를 하였다는 것은 훗날 내 완벽한 인생에 치명적 오점을 남기게 된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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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Club : 길이는 대개 70~100cm정도 되며 생김새는 무식하게 생긴 몽둥이를 생각하면 쉽게 연상된다. 때려 잡는다의 성격이 강한 이 무기는 지능이 낮은 몬스터들이 애용한다. 물론 인간이 쓰지 않는 것은 아니다. 클럽에 뾰족한 쇠붙이를 박거나 클럽 자체를 철로 만든다던지 하는 형태로 쓰기도 한다.
섀도우 디서플린Shadow Discipline : (http://virgo75.mytripod.co.kr/main.htm출처) 어쌔씬들의 기술은 고요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타락의 기운과 패도적 기운을 담고 있다. 그렇기에 적을 상대할 때 실력 있는 전사나 마법사들에게는 그 기운을 금방 감지 당하고는 오히려 역으로 당하기 일쑤였다. 그런 적들에게 이기기 위해서는 기술을 시전 할 때 마나의 기운을 감추거나 기술을 아예 사용하지 말아야 했다. 그러나 기술을 사용하지 않고서 강력한 적들을 이기기란 너무나 어려웠다. 마나의 기운은 주로 캐스팅을 할 때 상대에게 감지된다. 그렇기에 어쌔씬들은 자신들의 기술에서 캐스팅이란 개념을 아예 배제해야 했고, 캐스팅을 배제함으로써 지금까지의 기술을 기초부터 바로잡아야 했다. 그러나 이것은 불가능해보였다. 캐스팅이 없는 마법은 이미 마법이 아닌 손짓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세인들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한 동안 사람들의 비웃음과 비난 섞인 눈초리를 받으면서 잠적해있던 어쌔씬들이 세상에 한 번 모습을 드러냈을 때. 사람들은 경악에 몸을 떨어야 했다. 그들은 캐스팅을 완전하게 배제하고 자신들의 고유 마법들을 시전하는데 성공했고, 어쌔씬들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자신들을 드러내기 꺼려하는 어쌔씬들은 자신들의 성공을 드러내는 것이 아깝기라도 하다는 듯이 다시 잠적해버렸고, 사람들은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어쌔씬의 ‘그’ 기술은 마법이 아니라는 데에 다다랐다. 마법이 아니면 대관절 무엇이냐? 답은 그들이 잠적한 기간동안 초인적인 정신력과 집중력을 길러 자신들만의 고유 기술에 적용하였다는 것이다. 즉, 싸이코 키네시스와 유사한 능력이라는 것이다. 어쌔씬들의 기술을 직접 맞대어 본 실력자들은 전혀 기술의 시기始氣를 느낄 수가 없었다고 전한다. 진실은 어쌔씬이 알 뿐.
매직 웨폰Magic Weapon : 공포의 군주 디아블로의 형제들이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 때 마계와 인간계의 게이트가 열렸다고 한다. 바로 지옥의 문The Gate of Hell이라 불리는 통로. 이 통로를 통해 수많은 몬스터들이 인간계로 쏟아져 들어오게 되고 인간계의 전사와 마법사들은 이에 대해 싸워야 했다. 그러나 이들의 빈약한 무기로는 악의 기운을 듬뿍 머금고 있는 몬스터들의 무기를 이겨내지 못하여 죽거나 다치는 전사가 늘어만 갔다고 한다. 그래서 호라드림의 마법사들이 고안해 낸 것이 무기에 영구적 마법을 걸어 매직 성향을 띠게 하는 마법. 바로 조드Jod의 룬Rune을 사용한 인챈트 매직의 응용이었다. 그러나 보통의 무기는 인챈트 매직을 견뎌내지 못하고 부스러지기 일쑤였다. 호라드림의 마법사들은 이에 좌절하지 않고 각 국가에서 소촌까지 모두 헤집어 뛰어난 장인들을 소환하였다. 장인들도 현세의 심각함을 알고 있다는 듯 흔쾌히 승낙하였다. 장인들은 인챈트 매직을 견딜 수 있는 강도 높은 무기들을 만들어 냈고 마법사들은 그 무기에 인챈트 매직을 건 조드룬의 룬어를 새기는 작업을 하였다. 그리하여 그 당시 대량으로 생산된 매직 웨폰은 전 대륙 전사들과 마법사들에게 배급되었으며 마침내 악의 세력과의 전투에서 일 차적인 승리를 거두었다고 한다. 그 때 사용된 매직 웨폰은 아직까지 효용성과 강도가 인정되어 꽤 많은 수가 전사들에게 쓰인다고 한다.
인챈트Enchant : 어떤 성향이나 마법력을 특정 무기에 일시적으로 불어넣어 주는 마법.
조드의 룬에 대하여 : 조드의 룬은 영구적인, 견고한, 강화의 뜻과 능력을 지니고 있어 특정 무기에 조드 룬을 새기면 그 무기는 더욱 강화되고 내구성이 무한적으로 늘어나 훨씬 값이 비싸지게 된다. 그리고 어떠한 강화 마법을(레지스턴스 업, 인챈트, 텔레포트 등) 조드 룬에 걸면 그 마법효과가 조드 룬에 영구적으로 붙어 지속하게 된다. 조드 룬은 이러한 특성 때문에 전사, 마법사들에게 널리 애용되며 수량은 그렇게 많지 않아 값이 상당히 비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