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필라델피아 소리모리와 청년마당집이 함께 한가위축제에 당시 전운이 감돌던 조국의 평화안전을 기원하는 고사를 지낸다며 고사상을 어떻게 차려야 하고 축문과 위패는 어떻게 쓰며 고사상에는 올릴 돼지머리를 어디서 살 수 있는지를 문의해왔습니다.
돼지머리는 남부필라델피아의 이태리시장에서 살 수 있답니다.
아무거나 주는 대로 가져오면 하나에 오십불이고, 웃는 모양으로 잘 생긴 머리는 하나에 백불을 줘야 한다는군요.
웃는 모양의 잘생긴 머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삶으면서 계속 쓰다듬고 껍질을 이리저리 당겨 주름이 없이 팽팽하게 유지시켜줘야 하기 때문에 뜨거운 김을 쏘여가며 손을 데어가며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백불도 싸다는 게 이해가 되지만 그냥 삶은 돼지머리도 오십불이라니 바가지도 대단한 바가지요금이다 싶군요.
돼지머리 뿐만 아니라 소꼬리도 그렇고 사골도 십여년 전만해도 정육점에서 그냥 얻을 수 있었던 것들인데 요즈음은 이런 뼈다귀들이 살코기 값보다 더 비싸진 것입니다.
모두 아시아인들이 즐겨 찾는, 그러니까 수요가 급증하게 된 반사작용으로 값이 그리 오르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돼지머리는 유독 한인들이 고사용으로 사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군요.
고사를 왜 지내는가, 고사상에는 왜 돼지머리를 올려야 하는가?
그 해에 한가위축제를 준비하던 청년들의 절반쯤은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토착세대이고 절반쯤은 어려서 부모를 따라 이민 와서 한국말을 쉬운 단어 몇 마디만 떠듬거릴 수 있는 정착세대였기 때문에 이들이 어버이의 나라 한국문화를 배우고 조국의 평화를 위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 너무 대견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이들에게 올바른 우리 문화와 민족정신을 전달해주어야 할 의무와 사명이 이민세대인 우리들에게 지워진 과제이지요.
나는 어떻게 이들에게 우리의 아름다운 문화와 풍속을 가르쳐주고 숭고한 민족정기를 전승해 줄 것인지 오랫동안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 나 자신이 우리 문화와 정신을 보여주고 전승해 줄 자격도 자신도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고사를 지내는 문제와 같은 구체적인 사례를 모두 설명하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며칠 동안 고심하고 여러 선배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한 나머지 내가 내린 결론은 문화의 형식을 전승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형식 속에 담기고 우러나는 내용을 전승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청년들에게 이렇게 설명해줬습니다.
<고사는 우리 민족이 함께 어울려 사는 삶을 제사의 형식으로 치루는 의식이다.
어떤 어려움이 있을 때 어려움을 당한 당사자뿐만 아니라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그 어려움을 이겨나갈 방도를 모색하고 도움을 기원하는 의식으로 고사를 지냈고, 누가 새로운 일을 벌였을 때 온 마을 사람들이 그 일이 크게 성취하도록 함께 마음을 모아 빌어주는 의식을 지냈다. 이것이 고사다. 고사를 지낼 때는 마을 사람들이 만들 수 있는 모든 음식을 다 만들어 상에 차려놓게 되는데 이것은 마을 사람들의 정성을 모두 한곳에 모은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고사를 지내고 나면 상에 차린 음식을 마을 사람 모두가 나누어 먹었다. 적으면 적은대로 많으면 많은대로 마을 사람 전체가 공평하게 나누어 먹었다. 이것은 우리 민족의 나눔의 정신이 고사를 통해 표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고사에 숨어있는 정신은 '대동정신'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이국땅에 이민 와서 우리의 전통을 이어받아 고사를 지낸다 함은 바로 이 대동정신을 고사라는 형식을 빌려 새롭게 깨우치고 재 다짐하자는 것이다. 때문에 고사상을 어떻게 차려야 하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돼지머리를 올려야 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다. 옛사람들이 사과는 어디, 배는 어디 하고 그 놓는 자리까지 엄격하게 규정했다 하여 오늘 우리가 그 형식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옛사람들이 고사상에는 꼭 돼지머리를 올렸다고 해서 오늘 우리도 똑 돼지머리를 올려야 고사를 지내는 것은 아니다. 돼지머리의 의미를 찾는 것도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는 소고기에 붙이든 양고기에 붙이든 닭고기에 붙이든 상관없다. 그것은 그 시대 사람들이 붙여준 의미이고 우리는 우리의 의미를 새롭게 찾아야 한다. 바로 우리가 배워야 할, 잊어서는 안 될 고사정신, 고사의 의미는 '함께 모으고 함께 이루고 함께 나누는 대동정신'이다. 이 대동정신은 그냥 말로 떠들어서 이루어지기보다는 무엇이 됐건 어떤 형식적 놀이를 통해 쉽게 이루어가고 전승해 갈 수 있다. 고사는 그래서 우리가 이어받아야 할 중요한 전통이요 문화의 하나다. 그렇다면 상을 어떻게 차리느냐를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을 것이고 돼지머리를 사기 위해 백불이라는 큰돈을 쓸 필요도 없을 것이다.>
청년들은 내 의견을 받아들여 그날 고사상에는 쉽게 구할 수 있는 과일이며 과자를 회원들 각자가 맡아 이것저것 사다가 쌓아두고 돼지머리 대신 갈비찜에 튀김닭을 올려놓았습디다.
축문이나 위패 대신 당면문제들과 구호를 적어 고사상 뒤편에 줄줄이 걸었습니다.
상 위엔 우리의 마음을 밝히기 위해 두 자루의 촛불을 밝혔습니다.
회원들은 저마다 제상 앞에 나와서 넙죽 엎드려 절을 하기도 하고 두 손 모아 합장을 하기도 했으며 오랜 기독교 전통의 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고개 숙여 기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는 둥근 보름달 아래서 풍물을 치며 손에 손잡고 빙글빙글 돌면서 신명나는 춤을 추며 우리의 소원들을 빌었고 우리의 의지를 다졌고 우리의 정성을 함께 모아 노래했습니다.
우리보다 더 좋아한 것은 방문 온 십여 명의 외국인 친구들이었어요.
그들에게는 너무나도 생소한 축제였지만 그것은 그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한 '한국정서, 한국민족정기'를 느끼게 한 문화행사였습니다.
그들은 우리들과 같이 나와 꺼진 촛불을 다시 밝히고 넙죽 절을 하기도 하며 함께 손잡고 깡쭝깡쭝 뛰기도 하며 즐거운 하룻밤을 세웠습니다.
고사라는 우리 전통을 형식도 무시하고 그 의미와 정신도 무시하고 오로지 그것을 통해 표현하던 기복 한 가지만 극성스럽게 전승하고 있는 구릅이 있습니다.
바로 기독교입니다.
새로 장사를 시작하는 기독교인들은 이른바 '개업예배'라는 것을 드립니다.
그 개업예배에는 장사를 시켜줄 마을 사람들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장사와 아무 상관이 없는 지역에 사는 교인들입니다.
목사의 설교는 그 사업이 마을사람들의 정성이 모여 이루어지고 마을 사람들에게 혜택을 나누어 주는 대동정신을 이루어 가는 사업체가 되어 번영하기를 기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신의 보호로 안전하게 그들의 신의 지원으로 형통하게 큰 성공을 거두기를 축복합니다.
나는 삼십여년을 미국에 살면서 백인들의 이런 개업예배를 한 번도 구경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신앙이 한국인보다 못해서일까요? 기독교 신앙은 그들이 한국에 전해주었는데.
그것은 기독교전통에 의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우리의 전통에 기인한 기형적인 고사입니다.
기독교에 부닥치면 이처럼 우리의 민족문화 민족정기 민족전통이 이그러져 버립디다.
첫댓글기독교인들이 우리 기복 신앙을 잘 전수하고 있지요. 문제는 지들 멋대로 그 안에 든 내용이 뭔지 생각도 없이 그저 야훼란 이름만 대면 된다는 건데요... 그런데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심방의 기원이 우째되는 건가요? 목사들이 대접 (음식이나 몸으로) 받기 위해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리...
첫댓글 기독교인들이 우리 기복 신앙을 잘 전수하고 있지요. 문제는 지들 멋대로 그 안에 든 내용이 뭔지 생각도 없이 그저 야훼란 이름만 대면 된다는 건데요... 그런데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심방의 기원이 우째되는 건가요? 목사들이 대접 (음식이나 몸으로) 받기 위해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리...
목사 심방에 관해서 자칭 자유주의 신학자라고 하는 류목사한테 물어 봐야겠군요...ㅋㅋㅋ
요즘 류목사 보니깐 자유주의 라기 보다는 "자위"주의가 된것 같다는.....
심방의 기원에 대해서는 삼신할미님께 여쭤봐야 할듯... 내 어렸을 적, 당골래(무당, 점쟁이가 아님)가 일년에 한(두)차례 담당마을 집집마다 돌면서 쌀을 걷워가기도 하고 그런 걸 기억함. 아마도 그런 행사(의식)가 심방으로 전승되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