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0일(16일째) 수요일
아침에 일어나 보니 비가 내리고 있다.
우산을 들고 밖에 나가 바깥 풍경을 보다가 방에 들어와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셨다.
아침은 죽, 빠바(티베트 빵), 삶은 계란이다.
오늘은 종루 미니 설산 트래킹이 있는 날이다.
민박집 남자 주인과 아홉 살짜리 아들을 앞세우고 8시에 숙소를 출발했다.
그런데 가벼운 트래킹 인줄 알고 나선 마을 산이 심한 경사인데다 삶은 계란 먹은 것이 체하여 걷는 내내 땀이 비 오듯 하며 힘이 들었다.
내가 가지고 온 약에, 요셉님이 주신 약을 또 먹고 그래도 안 되서 나중엔 바늘로 손가락을 땄다.
마을이 모이는 전망 좋은 곳에서 쉬기로 한 이숙님과 부산 정선생님을 나중에 모두들 엄청 부러워했는데, 40여분만 더 걸어가면 된다고 하여 간 게 세시간 이상을 걷게 된 데다 경사가 거의 70도에 가까운 곳을 죽을힘을 다해 올라갔지만 막상 정상엔 점심을 먹던 곳 보다 더 좋은 특별한 경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케이씨님을 따라 중도에 포기하고 간 분들 역시 참 잘 했는데, 비가 와서 바위가 젖어 미끄러지는 통에 다친 분들도 있었고, 풀 쐬기 같은 놈이 계속 옷 안의 피부를 찔러 아픈데다 그게 곧 참을 수 없을 정도의 가려움으로 고통을 주었다,
2,100M 숙소에서 시작해서 3,600M 정상까지 올라가는 동안 등산로가 없어 낫으로 우거진 숲을 쳐서 길을 만들어갔는데, 우거진 숲 속을 통과하느라 계속 몸을 숙이고 기다시피해서 걸었다.
하긴 1년에 한번 제사 모시기 위해 정상을 찾는다는 사람들이 무슨 이유로 산길을 만들었겠는가?
그래도 길을 잃을만하면 어느새 나타나는 타르초가 길을 안내한다.
정상에 오르니 타르초와 제사를 모시는 곳이 있어, 우리를 인솔한 주인 남자는 불을 피우고 곡식을 던지며 가족의 안녕과 풍년을 신에게 기원한다.
우리에게도 권해 모두 경건한 마음으로 주인 남자가 한 흉내를 내며 기원을 했다.
내려 오는 길의 바위와 돌이 젖어 우리는 완만한 산등성이를 택해 하산했는데 올라올 때 보다 거리상으로는 아주 긴 길이다.
특별한 전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길이 험하니 극도로 피곤함을 느꼈는데, 극기 훈련 수준이다.
우리는 다칠 까봐 아주 온 정신을 집중하여 조심스럽게 걷는데, 주인 남자와 아이는 버섯 체취에 여념이 없다.
아빠는 한손으로 폰으로 통화하며 유유자적 내려가고 있고, 아들은 심심한지 낫을 휘두르며 죄 없는 나무에 생채기를 내니 그 때 마다 내 몸이 아픈 느낌이다.
지루한 시간을 견딘 끝에 마을이 보여 순간 이 고생도 곧 끝나간다는 기쁨에 젖었지만, 마을을 내려와서도 한참이나 걸어 숙소에 도착했다.
미경샘과 현숙님과 셋이서 아빠가 아닌 아들을 따라 마을길을 걸었는데, 이 꼬마, 우리가 마을 투어를 못 한 걸 알았는지, 자기가 다니는 학교 담벼락까지 끌고 다니며 우리를 거의 미치게 만든다.
미경샘 : “ 자가(저 애가) 저거집 가는 길을 알고 가는 거 맞나?”
심샘 : “ 설마 자기가 매일 다니는 동네를 모르겠어요?”
이 녀석 우리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상한 골목으로 우릴 끌고 가더니 갑자기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뒤 걸음 치며 빨리 도망가잔다.
“아그야! 나는 네 엄마처럼 젊은 30대가 아니란다. 고만 우릴 끌고 다니고 지발 집에 좀 가자.”
어렵게 따라간 골목길을 다시 걸어 나온 우리는 다리를 거의 질질 끌고 꼬마의 뒤꽁무니를 쫓아 마지막 안간힘을 다해 걸었다.
도착하니 양선생님이 제일 먼저 와 있고 비송님과 지영샘, 그리고 이선생님은 아직 안 보인다.
우리가 걱정되었는지, 먼저 내려간 분들이 마당에서 기다리다 격려의 박수를 보내 주신다.
땀범벅이라 씻어야 하는데 네 사람 쓰는 방에 욕실이 하나라 마리아님 방 욕실을 빌려서 샤워를 하였다.
거의 열시간 가까이 길도 없는 길을 걸었더니 너무 피곤해서 입맛을 잃어 비송님과 지영샘은 저녁을 굶었는데, 지영샘은 산에서 몇 번이나 넘어져 다리를 많이 다쳐서 걱정이다.
나도 입맛이 없어 안 먹으려 했는데 이숙님이 일부러 우리 방에 저녁을 먹이려고 오시는 바람에 내려갔다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야외테이블에서 막 삶은 돼지수육과 신선한 쌈으로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양선생님을 보내는 밤이다.(양선생님 학교의 개학이 바로 코 앞이라 내일 먼저 귀국함.)
아쉬운 마음에 맥주잔 기울이며 많은 분들이 자리에 남았지만 너무 피곤해서 일찍 들어와 잤다.
8월 11일(17일째) 목요일
오늘은 아침 일찍 조루에 올라갔다.
올라가는 계단이 가파르고 위험해 보였지만 쉽게 올라갈 수 있었다.
이 고택은 160년 정도 되었지만 조루는 당송 시대에 지어졌다고 하니 800년은 넘었을 것이다.
생긴 것 도, 크기도 제 각각인 돌을 이용하여 어쩌면 이렇게 견고하게 이토록 높은 조루를 쌓을 수 있었단 말인가.
마을의 집들 거의가 조루를 가지고 있었는데 윈래는 군사적 목적으로 지어졌다고 하는데 나중에는 자신의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높이 세웠다고 한다.
비송님, 미경샘과 같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마을의 전경을 바라보다가 쇼스타코비치의 왈츠곡에 맞춰 한참 동안 왈츠를 추었다.
800년 된 탑에서의 왈츠라니, 이 얼마나 낭만적인가!
내려와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여덟시 반에 쓰구냥산을 향해 출발.
이틀 동안 정이 들었던 이 집 가족들과도 이별이다.
부지런한 가장과 딴빠여자답게 아름답던 그의 아내, 그리고 착한 아이들과 가족들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던 할머니...부디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협곡 사이로 큰 강이 시원하게 흐르고 그 강을 따라 차는 달린다.
출발한지 한시간 반 쯤 지나 차가 멈춰 차에 문제가 생긴 줄 알았는데 케이씨님이 은행에 돈을 찾으러 간거란다.
한참을 뒷좌석에 앉아 있으니 오늘따라 다리가 아픈데 어제 산을 오래 타서 그런 것 같다.
다시 차가 출발하니 잠이 쏟아진다.
티베트 와서 보니 인도에서처럼 남자들은 우리 같은 옷인데 여자들은 대부분 전통복장이다.
전통을 지키려는 것은 좋으나, 그 의무가 여자들에게만 주어진다면 그 역시도 생각해 볼 문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 역시 결혼식 날 신날과 신부의 아버지는 양복을 입고, 양가의 어머니들만 한복을 입으니 할 말이 없다.
심지어 숙모들에게까지도 한복 입을 것을 요구하지 않는가!
남편에게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니 “여자들 옷이 예쁘니 그렇지.”라고 한마디로 일축해버린다. (ㅠ.ㅠ)
일룽의 장평촌.
쓰찬 대지진 때 피해가 큰 지역으로 현재 도로 복구 작업으로 어수선하기 짝이 없다.
숙소에서 맛있게 국수를 먹고 나오니 이 동네는 볼거리가 없다.
공사장의 먼지와 차량의 매연 때문에 동네 구경을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왔는데, 오늘은 이동 외에 딱히 한게 없다.
숙소 시설도 안 좋고 전망이라곤 공사 중 인 건물만 보이고 주변에 산책 할 곳도 없어 지금까지의 숙소 중 최악이다.
거기다 화장실은 악취가 심해 호흡곤란으로 쓰러지기 직전이다.
첫댓글 ㅎㅎ 아마 종루 뒷산 산행은 평생 잊지 못하겠지요? 그래도 숙소 주변의 경치는 참 아름다웠다우!
모두 씨급 묵었지요...ㅎㅎㅎ용용